[문만용 교수, 한국 과학과 과학 한국] 한국 과학기술자와 과학 교과서
한국 과학기술자, 기억에 남는 이름 있습니까?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졸음이 몰려드는 봄날 오후의 강의실에서 전근대 선현에서부터 현대까지 의사를 포함해 기억에 남는 한국 과학기술자 10명의 이름을 대면 강의를 조금 빨리 끝내겠다는 제안을 했다. 학생들은 눈을 번쩍 뜨고 제일 먼저 장영실을 외쳤다. 우장춘이 뒤를 이었고, 드라마 덕분에 허준도 나왔다. 안타깝게도 그 강의 수강생들은 모두 인문사회계열 학생이었고,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검색도 어려웠다. 한참을 더 기다렸지만 얼마 전까지 텔레비전에 자주 나왔던 두 명의 박사 외에는 더 나오지 않았다.
이후 최근까지 대학에서 과학사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곤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10명의 한국 과학기술자 이름이 다 나온 적은 없다. 다만 몇 년 전 한 과학기술 특화 대학에서 학생들이 지도교수, 학과장, 단대 학장, 총장 이름을 연이어 대는 바람에 10명 근처까지 갔던 경우는 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어하는 학생들 앞에서 한국 사회를 이끌어온 과학 기술자에 대해 소개를 하면서 강의를 이어갔지만, 이는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 수업 시간에 다루지 않으니 위인전이나 드라마가 아니면 한국 과학기술자에 대해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중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는 많은 과학자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뉴턴·다윈 등 모두 대단한 과학적 성취를 보인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한국 과학기술자 중 이들에 비견할만한 업적을 낸 인물은 없는가? 그들이 발표한 과학이론이나 법칙 등 연구 성과로만 따지면 긍정적인 답을 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세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당시 한국 사회가 요구했던 시대적 과제를 묵묵히 수행했던 과학기술자들에게 연구 성과만을 따지는 것이 타당할까?
과학자 이원철의 삶
한국 과학기술은 압축적 성장이라는 불릴 정도로 빠른 시간에 높은 수준에 올랐다. 그 과정에 많은 과학기술자들의 역할이 있었다.
예를 들어 한국인으로는 첫 번째 이학박사가 된 이원철이라는 과학자의 삶을 살펴보자. 그는 1919년 연희전문(연세대의 전신) 수물과 1회 졸업생이다. 그의 재능을 높게 산 루퍼스 교수의 후원을 받아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26년 ‘독수리자리 에타별의 대기 운동’이라는 논문으로 미시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학위 취득 후 후학들을 가르치겠다는 교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귀국했다. 미국에서 진행했던 천문학 연구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YMCA에서 대중 강연을 통해 과학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필자가 대학원 때 한 원로 천문학자의 특강을 들었는데, 그는 ‘청소년기에 이원철 박사의 대중 강연을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이때 자신의 진로를 천문학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이원철은 해방 이후 조선총독부 기상대를 관상대(기상청의 전신)로 재조직하고 자신이 초대 대장이 되어 기상 인력을 양성하고, 역서를 편찬하여 배포하는 등 당시 국가적 수요가 컸던 기상 관측 및 행정 체제를 정비했다.
1961년 5월까지 관상대 대장으로 근무했던 그는 전재산을 YMCA에 기부하기도 했다.
1963년 세상을 떠난 이원철이 남긴 연구 성과는 미국 유학 시절 발표한 세 편 논문과 은사인 루퍼스 교수와 함께 쓴 한국의 전통 천문학에 대한 논문 정도가 있다.
그가 박사학위를 받고 곧장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남았다면 더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후대에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남긴 과학자로 기억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몇 편의 전문적 논문보다 식민지를 사는 젊은이에게 과학기술의 가치를 알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또한 자신의 전공은 아니지만 사회적 필요가 컸던 기상 분야에 뛰어들어 기반을 확고하게 다지는 데 매진했다.
이처럼 이원철은 당시 한국 사회가 가장 필요로 했던 과학기술 활동에 헌신했고, 그의 노력으로 한국의 천문학, 기상학은 굳건한 토대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원철에게 연구 업적이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뭐라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
후발국 과학기술자들은 연구 성과만이 아닌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가장 필요한 활동은 무엇이었고, 어떠한 방식으로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비록 학생들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몇명 되지 않지만, 오늘날 한국을 만들어내는 데 많은 과학기술자의 기여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전북대 김근배 교수팀이 펴낸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 과학기술 인물 열전: 자연과학 편’이라는 부제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근현대 한국 과학자들의 삶을 담고 있다.
현재 고등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통합과학’ 교과서에는 다수의 외국 과학자와 함께 이육사의 시나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가 등장한다. 하지만 과학 교과서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과학기술자는 찾아볼 수 없다. 세계적인 연구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기 때문에 우리 학생들은 과학기술은 먼 나라의 성취로, 우리 역사와는 관계없는 학문으로 생각하기 쉽다.
한국 학생들의 과학에 대한 점수는 높은 편이지만 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여전히 과학은 우리의 문화가 아닌, 익혀서 점수를 따야 하는 과목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고등학교 과학 교과서가 한국 과학기술자를 소개하면 어떨까?
세계 최고나 최초라고 호들갑 떨지 않더라도 그들의 땀과 노력이 쌓여 오늘날 한국 과학이 만들어졌음을 알게 된다면 학생들이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당장 과학 교과서에 담기 어렵다면 과학 교사들에게 한국 과학기술자의 삶과 그들의 연구에 대해 알려주는 교사용 지도서라도 제작하면 어떨까 한다.
이제는 우리 과학의 수준에 걸맞은 과학문화를 갖출 때가 되었고, 우리 과학자에 대한 관심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만용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K-학술확산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