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백들은 다 어데로 사라졌을까

[광주드림 취재기·뒷얘기] 문화부의 역작 ‘풍경+생각’

2024-08-23     황해윤 기자

올해 창간 20주년 특집 중 하나로 광주드림은 역대 취재기·뒷얘기를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그때’ 광주드림에 실려 지역사회 큰 파장을 일으켰던 기사들이 어떻게 작성됐는지 이면을 알려주는 읽을 거리입니다. 독자들에게 제공된 정제된 기록으로서 기사가 아닌 ‘비사’라 할 수 있는 정황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한 편의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해당 기자들이 감당한 수고의 일단도 느껴볼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취재기자 관점에서 정리한 기록은 2018년 본보가 출간한 ‘호랑이똥은 멧돼지를 쫓았을까-광주드림 취재기’ 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높은 것이 뭐가 무섭당가.

 2007년 뜨거웠던 어느 여름, 문화부 이혜영 기자는 2018년 현재는 사라진 옛 전남도청 별관 2층 창가 앞에 서 있었다.

 철거를 앞둔 옛 도청 건물에서 지역 작가들이 여러 예술 활동을 벌이던 때였다. 어느 작가가 붉은 커튼과 어둠으로 장식해 놓은 방에서 80년 5월 새벽 산화한 그들을 떠올렸다. 80년 5월 새벽 정확히 이 기자가 서 있던 그 공간에서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이름모를 수많은 얼굴들이 최후의 시간을 보냈다. 그 땐 존재했던 그 공간은 이제 여기 없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많다. 그 땐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들. 그 땐 없었으나 지금은 생겨난 것들. 밀려난 것들, 밀려온 것들.

에펠탑과 경운기.

 아시아문화전당도 그랬다. 그 해 여름 이 기자는 아직 전당이 완공되기 전 버스 노선표에 먼저 새겨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보고 설레었다. 늘 보던 건물들이 휑하니 무너지고 황량한 벌판이 된 그 곳에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전당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웠던 만큼 전당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안으로 들어올 것인지 기대가 부풀었다. 그 때는 아무 것도 없는 도청 뒤편 ‘광산동 13번지 일대’를 보며 이 기자는 2010년 이후 어느날 해질녘 ‘빛의숲’ 벤치에 앉아 이웃들의 창작공연을 기다리며 수다를 떨고 있을 풍경을 상상했다.

 “랜드마크 논란 등 문화중심도시와 아시아문화전당을 둘러싼 엄청난 갈등을 취재하면서 응어리진 게 좀 있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 때 지역이 치른 논란만큼 문화전당이 제 기능을 하고 있진 않는 것 같아 아쉽다. 지역의 큰 문화시설로 자리매김하고 있지 못하고 지역과 유리돼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소망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니까. 뜨거웠던 그 때의 그 열정들을 모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버려진 곰인형.

 문화전당을 실물로 앞에 둔 2018년 이 기자의 소회다.

 문화부 기자들이 맡아서 연재했던 ‘풍경+생각’은 각각 기자들이 광주를 돌아다니며 생각을 채집해 풀어놓는 코너였다. ‘돈’과 ‘사업’으로, ‘물량’과 ‘규모’로 말해지는 우리 일상 속 살풍경들도 예민하게 찾아내 풀어냈다.

 이 기자를 비롯해 남신희·황해윤·정상철·이광재·조선 기자 등이 함께 참여했다.

 각각 풍경에 해석을 더한 ‘풍경+생각’의 글들을 쭉 모아놓으면 광주의 다양한 존재를 증명하고 또 부재를 증명한다. 이 도시의 변화상이 보인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결이 켜켜이 쌓인 골목의 역사를 깡그리 밀어내고 지금은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양림동. 30~40년 그곳에서 정붙이고 살았던 원주민들은 지금 어느 곳으로 흩어져 살아가고 있을까.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