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만의 사건 재구성으로 읽은 열정

[임유진의 무대읽기] ‘아라뱃길 살인사건’ 전남대 극문화 연구회, 실제 사건 기반 각색

2024-08-28     임유진
전남대학교 극문화 연구회 ‘아라뱃길 살인사건’. 전대 극회 제공.

 8월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극장 ‘통’에서 전남대학교 극문화 연구회(이하 전대 극회)가 제124회 정기 공연을 올렸다. 제목은 ‘아라뱃길 살인사건’. 2020년 5월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있는 아라뱃길의 수로에서는 훼손된 사람의 신체가 떠올랐다. 연이어 계양산에서도 훼손된 신체 일부가 발견됐다. 이 사건은 아직 미제로 남아 있는데, 극단 ‘배우들’에서 이 사건을 모티브로 연극 작업을 했다. 제목은 ‘어서 와요. 이곳으로’이다. 2020년 제3회 창작극 페스티벌, ‘초연입니다’에서 공연됐다.

 전대 극회는 제목을 바꾸고, 원 희곡에는 남자가 세 명, 여자가 세 명 나오는데 다섯 명의 여자 배우와 한 명의 남자 배우로 무대를 꾸몄다. 살인사건 때문에 마을의 땅값과 집값이 하락하는 것을 우려한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팀을 구성하여 살인범 색출 작업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이 전자담배 가게를 운영하는 일명 ‘홍반장’인데, 중년의 남자 캐릭터를 여자로 바꾸었고 경찰 공무원 시험을 6년째 준비하고 있는 ‘봉봉’이라는 남성 캐릭터도 여성으로 바꾸었다.

 마을 주민들이 홍반장의 지휘 아래 범인 찾는 팀을 꾸리는 것은 이타적인 목적에서는 아니다. 자신들이 사는 곳의 가치가 하락할까 봐, 관광객이 줄어들어 수입에 차질이 빚어질까 봐인데 현실적이지만 그만큼 이기적인 이유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혐의자 4명을 특정하고 추리를 전개해 나가던 그들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마을을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라고는 해도 어떤 휴머니즘이나 정의 구현 같은 이상적인 목적보다는 생존을 위한 계산 속으로 뭉친 탓이었을지 모른다.

전남대학교 극문화 연구회 ‘아라뱃길 살인사건’. 전대 극회 제공.

 슈퍼 주인 ‘오점주’와 다방 종업원 ‘티파니 심’, 보건소 의사 ‘박보건’, 그리고 미용 유투버 ‘마이준’을 포함해 ‘봉봉’과 ‘홍반장’이 나름대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려고 팀을 구성하기까지 극은 인물 설명에 시간을 제법 할애한다. 이 부분은 매우 코믹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중년의 여성(원래는 남성이었던) 캐릭터를 20대 배우가 해야 하는 데다가, 나머지 역들도 아직 경험이 부족한 20대 대학생들이 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지점들이 있었다. 코미디인 건 알겠는데 웃기가 힘들었다. 물론, 전대 극회 단원들은 열정적이었고, 풋풋했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한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지만 말이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극은 초반에서 범인 색출 팀을 꾸리는 주민들의 면면을 보여주고, 4명의 혐의자를 특정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반부에서는 피살자(신문사 기자)와 혐의자 간의 관계와 혐의를 두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역할극을 선보인다. 주민 중 한 명이 살해당한 기자 역을 하면, 다른 주민이 혐의자나 주변 인물을 소화하는 식이다. 이 역할극에서 배우들의 눈빛과 행동이 초반과 달라졌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나이 든 주민 역할을 코믹하게 하려 했을 때는 되지 않았던 몰입이 피살자의 폭력과 추악한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들에서는, 그리고 피살자 때문에 모욕과 멸시를 당하고 수치심을 느끼고 (살인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분노를 가지게 되는 혐의자를 재현하는 장면들에서는 강하게 일어났다. 지나치게 코믹하게 처리됐던 초반부와 달리, 일정 정도의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반부에서 배우들은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 상승 기류를 탔고 그것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초반에는 별로 웃지 않던 관객이 오히려 중반부에서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전남대학교 극문화 연구회 ‘아라뱃길 살인사건’. 전대 극회 제공.

 피살자의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면 때문에 당하는 혐의자들의 수모와 굴욕을 보면서 관객이 웃었다고 하면 몹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은 연극만이 가지는 현장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분명히 보건소 의사였는데 갑자기 아파트 경비원으로 변해 당치 않는 모욕을 당하는 장면에서 나이 든 경비원 역할을 하기 위해 관객의 눈앞에서 의상을 간단히 바꿔 입고 허리를 구부린다든가, 고시생이었는데 피살자 때문에 삶이 망가진 농부 역을 한다든가 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역할 바꾸기 혹은 짧은 역할극이 주는 현장성,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연극 무대만이 줄 수 있는 특성에 웃음을 터뜨렸다고 본다. 배우도 관객도 재미있는 체험을 하는 시간이었다.

 2020년에 발생한 실제 아라뱃길 살인사건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극에서는 범인이 밝혀진다. 배우들의 역할극을 따라가던 관객 중 누가 얼마나 진범을 눈치챘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범인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범인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인데, 지금까지 밀고 내려왔던 추리와 논리와 상관없이 일종의 ‘사이코패스’적 면모 때문에 살인한 것으로 처리된다. ‘그렇구나’ 라는 생각도 들지만, 살인했기에 사이코패스인 건지, 사이코패스여서 살인을 한 건지는 명확하지 않았고 너무 쉽게 결말을 지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해서 썩 개운한 결말은 아니었다.

 오랜 전통과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상관없이 사라져간 대학 동아리들이 많다. 취업과 학점 따기,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대학생들의 각박하고 힘든 생활을 모르는 바 아닌 작금의 세태에서 연극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고마울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제 제125회 정기 공연을 앞두고 있는 전대 극회가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아 과연 또 다른 무대를 보여줄지 관심이 깊다. 공연 중반부에서 보여주었던 학생 배우들의 그 진지하고 빛나는 눈빛은 그들이 더 열정적이고 신선한 작품으로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지만 말이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