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PD의 비하인드캠] (17)가와사키 원정에서 얻은 교훈

과정의 중요성 그리고 품격 있는 미래 향하여

2024-10-04     김태관 PD

‘김피디의 비하인드캠’은 유튜브 ‘광주축구’, 광주FC 다큐 ‘2024 옐로스피릿’ 제작자 김태관 PD가 광주FC에 관한 생생한 현장 소식과 그라운드 너머의 흥미진진 뒷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만국 공통어 ‘축구’가 빚어내는 다채로운 재미와 감동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응원단기 승리를 환호하고 있다.

 K리그의 자존심, 가와사키를 꺾다

 광주FC가 구단 역사상 첫 해외 원정에서 값진 승리를 거두었다. 지난 10월 1일 저녁 7시, J리그의 신흥 강호 가와사키 프론탈레의 안방, 도토로키 육상 경기장에서 펼쳐진 ACL 동아시아 그룹 예선 2차전. 2017년부터 네 차례나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지난해 일왕배까지 거머쥔 가와사키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지난 ACLE 예선 1차전에서는 울산 HD를 1-0으로 격파하며 기세등등했다. 반면 광주는 리그 2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파이널 B 그룹으로 추락, 강등권과의 싸움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천 원정 직후 곧바로 가와사키로 이동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경기 전날, 단 1시간의 그라운드 적응 훈련만 소화하고 경기에 임했다.

김진호 파울.

  ‘우리만의 축구’로 만들어낸 기적

 하지만 광주 선수단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원정 경기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드러냈고, 잔디 상태를 확인한 후에는 광주 특유의 빌드업 축구를 펼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내비쳤다. 이정효 감독 역시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오랫동안 우리만의 축구 스타일을 만들어왔고, 부족한 사람들이 뭉쳐 더 성장하기 위해 매일 노력하기 때문에 항상 자신감이 넘친다”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기자회견 직후 일본 기자들은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연신 내뱉었다.

 선수의 카리스마는 경기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보통의 K리그 팀답지 않은 강력한 압박과 유기적인 공간 창출 움직임과 패스 플레이로 가와사키를 압도했다. 아사니의 PK골로 전반전을 1-0으로 리드한 광주는 후반전 가와사키의 파상공세를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값진 승리를 따냈다.

승리의 단체 V샷.

  ‘승리 그 이상의 가치’를 발견하다

 가와사키 원정에서 얻은 것은 승리뿐만이 아니었다. 2만 5000여 관중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100여 명의 광주 팬들은 뜨거운 응원으로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딸과 함께 생애 두 번째 직관을 온 자칭 ‘승리의 여신’ 어머니, 빨갛고 푸르스름한 복장으로 열정적인 응원을 펼친 노라조 리더 조빈 씨, 그리고 수도권, 해남, 심지어 대전에서 해외 원정에 동참해 준 팬들까지…. 광주FC를 향한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번 현장에 가지 못한 서포터즈는 광주 충장로에 모여 수백 명의 시민들과 함께 길거리 응원전을 펼쳤다.

 가와사키 구단과 팬들의 스포츠맨십도 빛났다. 경기에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홈 팬들은 광주 선수들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고, 선수단은 경기 직후 원정석까지 찾아와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또한, 9년째 주전 골키퍼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 대표팀 출신 정성룡 선수의 등신대와 함께한 한복 체험 및 제기차기 이벤트, 이날 경기를 기념하는 한글판 타월 제작 등 원정 팬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가와사키 구단의 세심한 배려는 K리그 구단들이 반드시 참고할 만한 대목이었다.

광주FC가 구단 역사상 첫 해외 원정에서 값진 승리를 거두면서 환호하고 있다.

  그리고, 광주FC의 미래

 이번 가와사키 원정에 나선 광주FC는 단순한 ‘승리’ 그 이상의 가치를 아시아에 전파했다.

 이날 풀타임 출장한 부주장 이민기 선수는 경기 직후 기자회견에서 “우리 팀은 결과보다 좋은 과정을 중시한다. 과정이 좋으면, 설령 결과가 나쁘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좋은 과정을 통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이것이 바로 광주FC가 추구하는 축구 철학이다.

 하지만, 광주FC를 운영하는 방식은 그렇지 못하다. 잔디 관리 소홀로 인해 10월 중순에 열린 ACLE 예선 3차전 조호르전 홈 경기가 ‘경기도 용인’에서 치러질 위기에 처했다. 그 밖에도 수 차례 제기된 경기장 안팎 인프라와 운영 상의 문제들은 선수단이 피땀 흘려 일궈낸 좋은 ‘결과’를 ‘일시적 성과’로 축소하는, 아쉬운 ‘과정’과 ‘체계’들이다.

 광주FC는 140만 광역시의 하나뿐인 연고 축구팀이다. 이제는 도시의 품격에 맞는 구단으로 성장해야 한다. 구단주의 뜨거운 축구 열정이 단순히 정치적 의도로만 오독되는 일이 없도록 더욱 진정성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ACLE 참가가 그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 현재 동아시아 그룹 1위에 올라선 광주FC가 K리그를 넘어 아시아 무대에 우뚝 서는 그날을 기대한다. 가와사키 원정을 통해 증명했듯이, 선수단과 팬들은 이미 준비가 돼 있다.

 김태관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