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현장] 악성민원 폭탄에 시달리는 주민들
“무차별적 신고…구청서 접수하지 말기를” 진제마을 주민들 “동네 사람이 악성 민원…괴로워” 남구청 “내용이 다른 민원은 원천 차단할 수 없어”
광주 남구 진월동 진제마을 소상공인들이 수년간 공익신고를 빙자한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특정 민원인이 제기하는 무차별적인 신고로 매출에 타격을 준다는 것인데, 상인들은 악성 민원에 대응할 방안을 강구해달라며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관할 구청에 수차례 대응책 마련을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본보에 이같은 사실을 제보한 주민 김성옥(가명) 씨는 “고기 원산지 표기부터 불법 건축물 위반까지 특정 민원인 A 씨의 셀 수도 없는 무차별적 신고로 상인들이 고통받고 있다”며 “구청에 해당 민원인 신고를 받지 말기를 수차례 청원했지만, 조치된 게 없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관할 남구청은 “민원인 A 씨의 잦은 신고를 알고 있고, 같은 내용의 신고가 3번 들어올 경우 종결 처리하지만 다른 내용으로 민원이 접수되면 이를 원천 차단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본보는 지난 7일 남구 진월동 진제마을에서 “악성 민원에 불안감”을 토로하는 주민들을 만났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민원인 A 씨는 약 20년 넘게 이곳에 사는 마을 주민이다. 처음에는 건물에 설치된 불법 건축물이나 불법 주정차 등 크고 작은 위반 사례를 적발·신고하며 공익에 일조했다.
하지만 “점차 허위 신고를 섞어서 제보했고, 급기야 대범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게 주민들 주장이다.
실제 A 씨는 지난 2014년에 광주 한 교회와 여성가족부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허위 신고를 했다. 당시 경찰특공대 등 100여 명이 투입돼 건물을 수색하는 소동이 일었다.
경찰은 A 씨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했고, 법원에서도 실형이 선고됐다.
이같은 홍역을 치른 뒤에도 A 씨의 민원 제기는 그치지 않았다.
주민들은 “5년 전부터 영업하는 동네 상권을 겨냥해 악성 민원을 자주 제기했다”고 입을 모은다.
세차장 햇빛가리개 설치부터 식당에 미성년자가 술을 마신다는 허위 신고까지 허위 민원을 제기, 주민들이 시달림을 당하고 있는 주장이다.
주민 김 씨는 “법에 위반된 건이 있다면 고치는 게 맞지만, (A 씨가) 잘못된 게 없는지 밤낮없이 이 잡듯이 동네를 돌아다니니 상인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구청에서 치료를 유도하는 등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문제는 이같은 악성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가 돼도 현행법상 원천 차단하기 어렵다는 제도적 한계다.
남구청은 ‘민원처리법’과 관련 조례에 따라 민원인의 폭언과 폭행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 대비해 녹음장비를 운용하거나 휴대용 보호장비를 쓸 수 있지만, 다발성 민원에 대응하는 별도의 매뉴얼은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위법한 점이 있으면 내부적으로 ‘특이민원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지만, 민원 자체는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구 관계자는 “민원인의 청구 내용에 답변을 연장(최대 3주)하거나 동일한 내용의 신고가 3번 이어지면 종결할 수는 있지만 다른 내용으로 접수되면 당국은 응하고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빈번한 민원에 공무원들도 피로감을 호소하지만, 다발성 민원에 대응할 상위법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광주시는 악성 민원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악성민원 전화대응 시스템’ 구축을 준비 중이다.
본보 확인 결과, 광주시는 오는 2025년부터 유형에 따라 △폭언·욕설 △장시간 통화 △반복 전화로 분류하고, 민원인에게 종료 사유를 문자로 고지하는 내용을 준비하고 있다.
악의적이고 반복되는 악성 민원으로 ‘행정력 낭비’란 지적이 잇따르자, 정치권도 관련 법안을 내놓은 상태다.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최근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 따르면 정보공개 청구가 반복되면 ‘정보공개심의회’를 통해 민원을 종결하고, 정보공개와 무관한 내용은 민원으로 전환해 처리하도록 규정했다.
한편 본보는 반론권 보장을 위해 민원인 A 씨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최문석 기자 mun@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