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속 짐처럼 남아버린 진지함

[임유진의 무대읽기] ‘스위트룸 719’ 닐 사이먼 ‘플라자 스위트’ 한국식 각색

2024-10-16     임유진
스위트룸 719 세 번째 에피소드의 부부.

 ‘제27회 광주 소극장 축제’의 일환으로 지난 5일부터 6일 양일간 극장 ‘통’에서 극단 ‘유피씨어터’가 ‘스위트룸 719’라는 공연을 올렸다. ‘스위트룸 719’는 미국의 극작가 닐 사이먼(1927-2018)의 ‘플라자 스위트(Plaza Suite)’가 원작이다. 뉴욕에 있는 플라자 호텔 스위트룸 719호에서 벌어지는 일을 옴니버스식으로 꾸민 작품인데, 이 작품에는 장소가 같다는 공통점 말고는 관련이 없는 세 가지 에피소드가 병렬 배치된다.

 첫 번째는 결혼 25주년을 맞은 여자가 신혼 첫날밤을 보냈던 호텔 방에서 남편과 근사한 밤을 보내려고 하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어린 시절 친구인 남자와 여자가 호텔 방에서 재회하는 이야기다. 세 번째는 이제 곧 결혼식이 거행되어야 하는데, 신부가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세 가지 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남는다. 남편과 멋진 결혼기념일을 보내려고 했던 여자는 남편이 비서와 외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오늘만은 같이 있어 달라고 애원하는 여자를 두고 남편은 회사에(어쩌면 불륜 상대에게) 가버린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평범한 가정주부인 여자는 성공한 예전 남자친구의 유혹을 뿌리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 딸을 화장실에서 나오게 하려고 갖은 수를 쓰던 부부는 딸이 불행한 결혼 생활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불행한 결혼 생활의 모델은 다름 아닌 바로 자신들이다.

 보통 외국 작품을 공연할 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냥 외국 작품 그대로를 무대에 올리는 경우가 있고, 한국식으로 소화해서, 그러니까 각색을 거쳐서 올리는 경우가 있다. 이번 ‘유피씨어터’의 ‘스위트룸 719’는 두 번째 방식을 택하려고 했던 것 같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신라호텔 같은 고유명사가 지명되면서 뉴욕에 있는 플라자 호텔이 아니고 한국의 어느 호텔인 것처럼 한 것이나,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신부의 어머니가 한복을 입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두 번째 방법으로 외국 작품을 올릴 때는 아주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대사 하나, 지명 하나까지도 철저하게 한국식으로 변경하지 않으면 관객은 작품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이번에 극단 ‘유피씨어터’가 ‘스위트룸 719’라는 제목으로 올린 ‘플라자 스위트’는 우리와 웃음 코드나 무의식적인 문화가 많이 다른, 다른 나라의 작품이다. 거기에 무려 1968년 작품이다. 굳이 각색을 거쳐서 한국식으로 변형한 이유는 세 가지 상황의 보편 타당성에 기대서 관객이 작품의 메시지를 좀 더 쉽게 수용하도록 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차라리 닐 사이먼의 작품 그대로를, 1960년대 말의 뉴욕에 살았던 어떤 이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더라도 관객에게는 와 닿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닐 사이먼은 1960년대 이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성공한 극작가라는 평을 듣는 인물이다. 그는 대부분 미국 중산층 가정의 갈등을 소재로 희극(코미디보다는 소극(笑劇))적인 작품을 여러 편 썼다. 작품이 기본적으로 재미있다는 얘기다. 관객을 웃게 만드는 지점이 작품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번 ‘스위트룸 719’는 재미있고 웃기는 부분 뒤에 있는 진지한 주제에 방점을 찍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대사에서 오는 (사이먼 특유의 말장난식의) 유머와 상황에서 기인하는 웃음 유발 장치는 그대로이면서, 반전이 일어나는 대목에서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이먼의 희곡이 가지는 내포된 진지함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그것이 웃음과 함께 진행되어야 그늘이 빛을 드러내듯이 효과적이었을 텐데 말초적인 웃음은 금세 휘발되어버리고 진지함은 그저 무거운 짐으로 남아버렸다.

 관객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줄 생각으로 희극적 요소가 많은 작품을 선택하고, 또 한편으로는 진지한 주제도 전달하고 싶었다면 둘의 조화가 자연스럽게 어울렸어야 하는데 이번 ‘스위트룸 719’는 불균형했다. 단지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것 같다는 기대만으로 작품을 선정하고 진행하는 것은 관객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작품을 올리는 극단이나 연출가에게는 좀 더 깊은 생각을 요구하는 부분이 아닐까. 극단은 좀 더 정교한 작업을 수행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단은 여러 제반 제작 상황과 여건을 고려하여 작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관객은 번안극의 정교함을 바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극단은, 연극하는 이들은 그 작업을 기본적으로 수행해야만 한다. 그것이 관객에 대한 예의다.

 이런 개인적인 견해와 별도로 이 작품을 재미있게 보고 즐긴 관객이 있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물론 원작 희곡이 가지는 힘이 컸겠지만,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한 배우들 덕도 컸다. ‘극단 유피씨어터’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