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PD의 비하인드캠] (20) 우리가 돈이 없지, 낭만이 없냐?

선수단·팬심 ‘동력’ 소진 막으려면 경영진·구단주 진정성 있는 자구책을

2024-11-11     김태관 PD

‘김피디의 비하인드캠’은 유튜브 ‘광주축구’, 광주FC 다큐 ‘2024 옐로스피릿’ 제작자 김태관 PD가 광주FC에 관한 생생한 현장 소식과 그라운드 너머의 흥미진진 뒷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만국 공통어 ‘축구’가 빚어내는 다채로운 재미와 감동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ACLE 4차전 빗셀 고베전 원정 응원에 나선 광주팬들. 광주FC 제공

 지난 5일, 일본 미사키 공원 경기장. ACLE(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 예선 4차전 비셀 고베 원정 경기를 취재하기 위해 낯선 땅을 밟았다.

 솔직히 말하겠다. 경기 내용과 결과 모두 참담했다. 잇따른 강행군으로 지친 광주FC 선수들은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0 대 2로 완패했다. 유효슈팅 개수 1. 평소보다 유난히 무거워 보이는 발걸음, 소극적이고 자신감 없는 플레이… 올 시즌 40번의 공식 경기 중 40번째로 잘한 경기였다.

 300여 명 일본 원정팬, 더 힘찬 응원 

 ACLE 예선 3연승 후 첫 패배라, 경기가 끝나고도 썩 유쾌하진 않았다.

 멀리 일본까지 원정 온 광주 팬들도 걱정됐다. 웬만한 국내 평일 원정 응원 규모와 비슷한 300여 명이 경기장을 찾았었다. 경기 전, 기대에 부푼 표정들을 봤기에, 혹여 결과에 실망하지 않았을까. 염려됐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김경민, 이희균, 허율, 최경록 등 주요 선수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응원단은 90분 내내 쉴 새 없이 응원전을 펼쳤다. 경기 후에는 홈 팬들마저 떠나버린 텅 빈 경기장에 남아 "남행열차"를 합창했다. 마치 경기에 이긴 팀처럼 열과 성의를 다했다. 노래가 끝나자, 반대편 골문에 자리한 비셀 고베 서포터즈는 따뜻한 박수와 환호로 광주 팬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광주 축구에서만 볼 수 있는 낭만이었다.

 어쩌면 이날 패배는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상대는 지난 시즌 J리그 우승팀이자, 올 시즌 1위 팀으로, J리그에서도 호화 멤버를 자랑하는 명문 구단이다. 반면, 광주는 경기 전에 “55억 빚더미에 앉아 K리그1 퇴출 위기”라는 뉴스가 나온 먹구름이 잔뜩 낀 구단이다. 팬들은 연이은 악재에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며 자조 섞인 반응을 보였고, 가뜩이나 내년 대규모 선수 이동이 불가피한 선수단에는 미묘한 불안감이 감돌았다. 이정효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선수들과 즐겁게 축구를 하고 싶다”는 말로 즉답을 피했지만, 착잡함을 감출 순 없었다.

ACLE 4차전 빗셀고베전에 나선 광주FC 선수단.  광주FC 제공

 ‘불가항력’ 단어 뒤 숨진 않았는지 

 시즌 초로 돌아가 보자. 작년 리그 3위에 오르며 ACLE 진출권을 따낸 광주는 올해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야심만만한 목표를 세우고 대대적인 투자 계획을 세웠다. 이사회 일각에서 과도한 투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올해부터 부쩍 강화된 K리그 연맹의 FFP(‘재정 건전화’ 제도)도 문제로 지적됐다. 하지만, 경영진은 “책임지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으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그렇게 해서 외국인 선수 6명을 포함, 총 39명에 이르는 선수단, 천연 잔디 2면 훈련장 공사비와 ACLE 개최 비용 등이 포함된 역대급 예산이 편성됐다.

 경영진은 추가 스폰서 확보와 선수 이적료 등으로 수입을 충당하겠다고 했지만, 결론적으로 계획에 턱없이 못 미쳤다. 성적까지 하위권에 머물면서 모든 우려가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스포츠 관광 도시, 활력 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시 또한 장밋빛 미래를 그렸지만, 긴축 재정 기조 속에서 실질적인 운영비 지원은 100억 원에 머물렀고, 50억 원대 채무가 발생했지만, 추경 예산 편성은 12월 초에나 가부(可否)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시와 구단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명되지 않는 의문이 더 많다. 만약, 시즌 초 ‘재정건전화’ 제도 시행에 대해 확실히 알고 대응했더라면 어땠을까, 잔디 논란이 일기 전에 월드컵 경기장과 훈련장 시설을 철저히 관리했더라면 또 어땠을까. 불 보듯 뻔했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선수 이적료 수입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팬 후원 마케팅에 절실하게 나섰더라면, 과연 이 지경이 됐을까. 그때마다 ‘불가항력’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방관하진 않았는지, 감독과 선수단에 기대어 ‘안이하게’ 대응하진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구단 정상화’ 더 미뤄선 안돼 

 이제라도 뼈를 깎는 자세로, 자구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전도유망한 선수들을 마구잡이로 팔아넘기는 손쉬우면서도 퇴행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불요불급’한 운영 비용을 줄이고, 구단 수입을 늘릴 혁신안을 마련해야 한다. 시 재정 지원만 바라지 말고 직접 팬들을 찾아 현장 속으로 뛰어들라는 얘기다. 이미 수많은 대책이 나와 있다. 실행만 하면 된다.

 ‘시’에서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구단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올 시즌 책정된 역대급 예산을, 시 승인 없이 세울 수 있었을까? 엎질러진 물을 함께 수습해야 한다. 의회의 설득이 어렵다면, 조건부 지원이라도 좋으니 구단 정상화에 실질적 힘을 보태야 한다.

 이는 합리성의 문제이기에 앞서 의지의 문제다. “축구에 미쳐야 돼”를 외치며, 불과 3년 만에 역대급 성적을 거둔 이정효 감독과 선수들처럼, 일본 팀에 완패한 선수단을 위해 더 큰 목소리로 응원한 팬들처럼, 시와 구단의 행정 하나하나에서, 낭만이라는 이름의, 축구를 향한 본질적인 열정과 진정성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역대 구단주 중 가장 축구를 사랑한다는 강기정 시장. 임기 초 거의 매번 경기장을 찾을 때마다, 팬들이 느꼈던 바로 그 ‘낭만’ 말이다.

 김태관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