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원의 여의도 포커스] 윤석열과 45년 만의 ‘서울의 밤’

‘전두환에 무기 선고 했다’던 尹, 그 뒤를 따른 대가는?

2024-12-05     김대원 기자

 # 1979년 이후 45년 만의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3일 밤. 전 세계는 최정예 제1공수특전여단 등 280여 명의 병력이 헬기와 차량을 이용, 국회의사당에 투입되는 초현실적 광경을 지켜봤다.

 정정이 극도로 불안한 중남미나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장면이 곧 ‘G10’에 포함된다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서울 강서구에 주둔 중인 1공수여단은 1979년 12·12 때도 반란군으로 참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무력 점령했던 부대다. 당시 여단장은 하나회 핵심 인물인 박희도 준장으로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감옥에 다녀왔다.

 수도방위사령부의 제35특수임무대대 소속 대원들도 계엄 사무에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특임대는 서울에서 테러 상황이 발생하면 출동,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다.

 국회 본청 진입 당시 이들 계엄군은 SCAR-L 돌격소총과 특수전 사양으로 현대화된 K1 기관단총, 'GPNVG-18' 4안(眼) 야간투시경, 방탄모와 마스크, 방탄조끼 등으로 완전 무장한 상태였다.

 계엄군은 국회 유리창을 깨고 본청에 진입했고, 집기로 바리케이트를 친 채 소화기를 뿌린 여야 보좌진들과도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계엄군 총구를 손으로 잡고선 “부끄럽지도 않냐”고 소리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에 계엄군은 안 대변인에게 총구를 겨누는 듯한 상황도 벌어졌다.

 SNS엔 “머리가 희끗한 아주머니 한 분이 울부짖으며 특전사 요원을 밀고 손으로 때리는데, 그는 꼼짝 못하고 그저 ‘다치세요, 다치세요’라며 밀리기만 하던데 그 부모가 보면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느냐”는 글도 올라왔다.

 # 사실 야권에선 지난 여름부터 ‘계엄설’이 흘러나왔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지난 8월 윤석열 정부에게 “계엄령 빌드업 불장난을 포기하라”고 촉구했고, 이에 정부 여당은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김 최고의 ‘예언’은 해가 바뀌기 전 현실이 됐고, 당시 ‘계엄이 선포되면 어느 군인이 따르겠느냐’고 호언한 김용현 국방장관은 윤 대통령에게 이번 비상계엄을 건의한 장본인이 됐다.

   그는 지난 9월엔 “계엄을 빙자한 친위 쿠데타를 막겠다“며 자칭 ‘서울의봄 4법’으로 지칭한 계엄 방지법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대통령이 계엄을 선언하기 전후, 국회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이중 장치 마련이 핵심이다.

 민주당 8월 전당대회 도중 최고위원 후보였던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 민주당 김병주 의원도 당시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을 국방장관 후보로 지명한 데 대해 “탄핵과 계엄 대비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첫 최고위에서도 “이러다 탄핵 정국에 접어들면,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무너지지 않고 군을 동원,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국민이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역시 9월 1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의 회담에서 “최근 계엄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며 계엄령 선포설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종전에 만들어졌던 계엄안을 보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막기 위해, 계엄 선포와 동시에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구금 계획을 꾸몄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강조했었다.

 # 이번 비상계엄에 대해선 군·경의 ‘충암고 핫라인’이 배후에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우선 계엄 선포는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인 김용현 국방장관이 건의했다. 야권에선 김 장관이 대통령 경호처장 시절 회동했던 군 인사 3인방도 이번 계엄 실행에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장관은 경호처장이었던 지난해 3월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과 경호처장 공관에서 회동했다. 김 장관은 ‘대통령 경호 목적’이라고 설명했으나 야당은 “출입기록을 남기지 않으려 차량을 갈아타는 꼼수를 이용했다”며 계엄 준비를 위한 극비회동이라고 주장했었다.

 실제 곽종근 사령관이 지휘하는 특전사와 이진우 사령관이 지휘하는 수방사 제35특수임무대대가 이번에 국회에 투입된 것으로 전해진다. 방첩사는 2017년 ‘계엄 대비 문건’을 작성한 조직이다. 역시 충암고 출신인 여인형 사령관이 지휘 중이다.

 또 국회 출입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서울경찰청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는데, 황세영 101경비단장과 대북 특수정보를 다루는 박종선 777사령관도 충암고 출신이다.

 # 국회가 두 시간 반 만에 계엄 해제를 결의한 몇 시간 후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 등 수석 비서관급 이상 참모들이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대부분의 대통령실 참모들은 계엄선포를 사전에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 및 극소수 참모들과의 논의 끝에 윤 대통령이 전격 결정했고, 오후 5시쯤 극비리에 담화 관련 준비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될 때도 국회 앞에는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국회의원의 의사당 진입을 원천 봉쇄했다. 김대중은 전날 밤 연행됐고 김영삼은 가택연금 됐었다.

 이번엔 한동훈 이재명 여야 대표와 190명의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담까지 넘으며 국회에 진입한 이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 개인 유튜브 생방송을 통해 “저도 지금 국회를 향해 가고 있다. 국민 여러분은 국회로 와달라”고 호소했다.

 44년 만에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역량이 그만큼 단단해 진 것으로 이는 상당 부분 5·18 때 스러져간 망월동 영령들의 희생 덕분이다.

 서울대 법대를 다니던 윤 대통령은 광주항쟁 직전인 1980년 5월 12일, 교정에서 열린 12·12 군사반란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바 있다.

 그리곤 대선 후보 시절 당시의 일화를 자랑하듯 내세웠다. “나는 그때 재판장으로, (반란) 수괴로 기소된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실권자였던 전두환을 결석으로 (처리)해가지고 무기징역 선고했다.”

 그는 이어 “5월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이 전국적으로 확대가 됐고 학교에 가보니 장갑차와 총 든 군인들이 지키고 있더라”며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외가가 있던) 강릉으로 피신해 있으라고 해서 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내가 집을 떠나고 난 후 우리 집에도 (계엄군이) 왔었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전두환의 비상계엄 확대 조치 이후 44년 만에 이번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대혼란과 충격에 빠진 국민들은 1980년 광주의 악몽을 떠올렸고 세계는 경악했다. 국회와 헌법재판소 그리고 민심의 법정은 윤 대통령의 이번 계엄 선포에 과연 어떤 선고를 내릴 것인가.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