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강진·해남 3개의 다원, 3곳의 낙원

[전고필의 터무니를 찾아서] 남도의 성지

2024-12-06     전고필
영암 덕진다원의 풍경.

 겨울이 성큼 다가오는 월출산하. 간만에 후배가 찾아왔다. 물경 1년여 동안 문밖 출입을 자제했던 그가 안거를 해제하고 영암에서 해후의 장을 만든 것이다. 저녁을 털어서 우리는 통음을 했다. 그럼에도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20여년을 단짝처럼 지내다 연락두절의 시간이 1년이라 너무 그리웠던 터이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겨우 일어난 오전, 우리는 영암과 강진과 해남의 차밭을 찾아 나섰다. 이 계절의 차밭은 벌들이 마지막 밀원식물인 차꽃을 취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날아오는 소리를 연출한다. 도갑사를 가진 영암에서는 선방의 스님들이 차를 즐겨 마셨고, 그런 명맥은 월출산 곳곳의 폐사지에 야생 차나무로 남아있다.

수수한 차꽃의 향연.

 이와는 달리 의도적으로 차밭을 일구어 상품화하는 덕진차밭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덕진면 백룡산 산자락에 입지한다. 면적은 크게 넓지 않지만 아기자기한데다 일목요연한 경관을 연출해준다. 특히 산비탈에 있어서 멀리 월출산의 산릉과 뾰족한 봉우리들이 차 밭에서 일망무제로 연결하는 시퀀스는 언제보아도 아름답다. 부지런한 사람들이나 무거운 카메라를 맨 작가들은 이 차밭을 새벽에 무시로 드나든다.

 아름다운 풍경의 월출산

 이유는 차밭 아래로 깔리는 영암읍 시가지에 가득한 운무와 그 위로 드러나는 월출산의 봉우리들이 선경과 같은 모습을 연출해주기 때문이다. 시간이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곳들은 모두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소유한 특별한 곳이다. 관광의 매력물은 이런 싯점과 함께 닿는다.

저 멀리 월출산이 펼쳐진다.

 언젠가 대만의 영화 로빙화에서 보여줬던 장면이 생각났다. 찻잎이 가진 독특한 향취가 차나무에는 벌레나 충해가 입지 않는다고 믿었는데 누에만한 벌레들이 찻잎을 갉아 먹는 것, 그것을 막아내려 집게로 벌레를 잡아야 하는 일 때문에 초등학교를 가지 못하고 좋아하는 그림조차도 그리지 못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한없이 서글펐던 영화가. 누군가에게는 생업인 공간에 우리는 차밭 정수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가서 이런 저런 풍경에 한눈을 팔고 벌써 꽃피운 동백나무도 올려다본다. 동백이 피면 찾아오는 동박새는 다른 계절에는 어떤 꽃의 꿀을 빨고 있을 것인지 물음표를 던져보면서.

 차밭의 주인은 한국제다라고 한다. 장성과 영암, 해남에 다원을 가진 한국제다는 서양원 선생님이 만드셨다고 들었다. 워낙 춘설차가 유명하다 보니 그늘에 가려진 것 같지만 잊혀진 차문화를 다시 일구신 선생님의 공은 모든 차인들이 우러러 본다고 전한다. 그분의 가족이 금남로 예술의 거리에서 찻집을 하셨고 나도 가끔 그 집에 들러 세작이나 작설차를 여러 잔 마시는 날이 많았었다. 이제는 그 시절이 언제였는지 년도도 떠오르지 않지만. 월출산과 동등한 시선의 라인을 담은 차밭곳곳에 프로펠러 같은 바람개비가 돈다. 후배는 왜 저게 거기 있는가를 물었다. 서리와 냉해로부터 안전하게 차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이라고하면서 내가 챗GPT 라며 으시댔다.

월남사지의 변화된 모습.

 풍광 아름다운 강진다원

 다음 코스는 오설록에서 운영하는 강진다원이다. 월출산의 남쪽에 있어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주변으로 무위사와 경포대도 있고, 백제계 탑인 월남사지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가 한데 어우러지는 곳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담로라는 분이 조성한 백운동원림도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의 다원 또한 오래전부터 있었던 우리차나무와 일본에서 가져온 야부카타종 두종을 혼재하여 식재한 차밭이 10만여평 펼쳐진 곳이다.

 월출산의 산사면을 타고 광대하게 펼쳐진 푸르름의 절정체는 그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별유천지를 만들어주는 공간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월남사지터에 들렀다. 과거 고즈넉한 골목을 들어가면 나무잎 사이로 정갈하고 잘 다듬은 탑의 상륜부가 살포시 얼굴을 내밀어 안부를 여쭙던 그런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는 이미 녹슬은 것이 되어 버렸다. 발굴조사를 위해 절터로 보이는 주변부는 모조리 터파기를 진행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들 이를테면 기와장이나 도기류의 파편, 석축의 흔적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가지런한 돌을 보며 여기에도 회랑이 있었다면 가람의 규모는 얼마나 컸을 터인지 미루어 짐작이 갔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맨처음 나무 사이로 황금빛의 탑을 보았을때의 신선함에 여운을 가지고 있다. 새롭게 중창하려는 절집의 규모를 보니 도갑사 못지 않은 큰 규모의 절이 여기 신설될 듯 하다. 제발 등뒤로 월출산과 어우러져야 될 터인데 라는 바람을 가지며 여의주를 문 비희라는 용이 뚜렷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진각국사비를 거쳐 다원으로 향했다.

월출산과 조화로운 차밭과 두 바위.

 무위사로 가는 2차선도로의 호젓함을 즐기며 커다란 바윗돌 두기가 나란히 있는 전망대 즈음에 차를 멈췄다. 가로수로 심은 단풍이 붉게 물들고 한적한 차밭에는 정적속에 바람이 불어온다. 내친김에 우리는 예사롭지 않은 바위돌을 찾아 걸어갔다. 고인돌이 아닌가 싶은 예감이 들었는데 막상 다가가니 바닥으로 손댄 흔적은 안보이고 외려 몸통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다. 성혈이라고 말하는 구멍이지 싶다. 무언가 간절한 염원을 담아 구멍을 파고 그 안에 쌀과 같은 것을 넣으며 기도하는 신앙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뭐 크게 바라지도 않을 나이가 되어버린 우리는 그랬었다는 이야기만 나누며 차밭을 내려왔다.

 이렇게 다시 전망대쪽으로 오니 후배가 궁금해하는 차밭에 관한 안내글이 세세하게 적혀있다. 해방전까지 이곳에서 백운옥판차가 생산되었던 곳에 80년대부터 유기농차를 생산하는 강진다원으로 아모레퍼시픽의 오설록이 들어왔다는 내용이다. 결국 이 차밭의 근원은 차밭 사이에 숨겨져 있는 백운동원림과 닿아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백운동 원림의 만추.

 호남을 대표하는 원림

 우리는 광활하되 산릉 사이로 은닉한 듯한 차밭을 지나 백운동원림으로 스며 들었다. 호남을 대표하는 원림으로 담양의 소쇄원과 보길도의 부용동 원림을 지칭하는데 이곳 강진의 백운동원림까지 세상에 소개되면서 전통정원의 중심지로 더욱 부각됐다.

 나도 2010년 무렵 이곳을 처음 찾았었다. 그야말로 원시림으로 우거진 곳이었고, 월출산의 산자락을 타고 형성된 계곡이 원림 근처에서 솟아나며 시원하게 물줄기를 흘려 보내는 곳이었다. 수백년 먹은 동백과 후박과 해송들이 즐비하여 한낮에도 어둑시근한 이곳에 조선 중기의 민간정원이 있었음을 짐작도 하지 못했었다. 그때 참으로 충격이었다. 남도를 다 다녀온 것 같은 내게 이런 비경이 등장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후 한양대 정민 교수께서 해설하는 책에 17세기 이담로가 조영한 이 공간에 다산 정약용 선생이 출입하시며 12개의 승경을 노래하고 이를 담은 백운첩이라는 그림과 함께 전해오며, 불화 그림을 잘 그렸다는 초의선사의 백운동도도 함께 전해온 것을 기록하고 있다.

 나는 이런 백운동을 보면서 담양 소쇄원의 오마주와 같은 이곳의 내력에 빨려 들었다. 다산의 12경승은 소쇄원에서 하서 김인후의 48영과 유사하고, 백운동도는 소쇄원도와 다르지 않으며, 계류를 끌어와 두개의 연못 상지와 하지를 만들었음과 그 내부에 식재된 나무 한그루 초화류 하나에도 모두 조영자의 의지가 담겨있음을 읽었던 것이다. 이것은 공간안에 선비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잠시 멈춤으로서 다시 세상과 도모하고자 하는 강력한 자장이 은닉되어 있음을 독해하도록 만드는 기법이었다.

해남 설아다원의 풍경.

 생명권 존중해주는 차밭, 설아다원

 그렇게 경내를 둘러보고 이제 우리는 마지막 코스인 해남의 설아다원으로 향했다. 24년전 처음 뵈었던 오근선·마승미 부부가 북일면의 산사면을 최고의 차 산지로 만들기 위해 조성해온 곳이 설아다원이다.

 대흥사가 있는 두륜산을 접근하는 방식이 해남읍에서 가는 길이라 이곳은 그 뒷편인 완도가는 길에 있어 다소 외진 느낌을 가진다. 그런탓에 나도 이번 길이 초행이었다.

 들판을 가로질러 차밭으로 가려하니 포크레인이 다원 입구를 막고 있다. 뭔일인가 싶었지만 차에서 내려 다원 내부로 향했다.

곱게 물든 단풍나무.

 참으로 정갈한 손길을 거쳤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정경이다. 밀식해서 자라는 것이 차나무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너무 빽빽하여 숨쉴틈도 없는 그 찻잎을 따다 먹으며 나에게 쉼을 주고 영혼을 맑게한다는 것은 차나무에게 미안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고랑과 고랑 사이를 넓게 배치하여 바람에게 길을 내어주었고 차나무가 어느 정도 찬 곳에는 단풍나무나 녹나무를 심고 차밭을 지긋이 바라볼 수 있는 쉼터를 배치했다.

 울타리에는 목련나무나 다래덩굴 같은 나무를 심어 계절마다 주변의 숲과 어우러지며 차나무에게는 그들이 드리워지도록 생명권을 존중해주는 차밭같았다.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단풍잎이 길게 가지를 내어주어 서리나 냉해가 오지 못하도록하며 상록수림인 녹나무 후박나무와 어울리는 생명넘치는 차밭의 정경이 거기 있었다. 주인 내외가 외국에 가시고 따님이 차와 조화로운 브랜딩 상품을 만들고 있다하여 깊은 맛을 음미하고 세개의 차밭을 상기해 보았다. 야생같은 영암의 다원, 차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강진다원, 쉼과 치유를 이끌어내기 위해 정원같이 가꾼 설아다원. 이 모두가 소중한 남도의 성지와 같았다.

 글·사진=전고필(여행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