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원의 여의도 포커스] ‘위험한’ 군 통수권자, 불안한 대한민국
“다섯 살 짜리 애가 권총 들고 있는 격"
#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지난 3일 23시부로 발표된 이른바 ‘계엄사령부’의 소위 ‘포고문 1호’ 내용이다. ‘내란죄’와 곧바로 연결되는 대목이다.
아무리 계엄을 극소수 측근들과만 논의했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포고문이다. 법률 전문가가 아니라도 전두환 노태우가 ‘처단’된 사건인 12·12 군사반란및 5·17 내란을 경험했거나 단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는 내용이다.
“사령관이 ‘(상부로부터) 의결을 앞둔 국회의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국회에) 진입한 우리 대대장으로부터 ‘대치하는 것은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이라는 말을 들었던 시점이었다. 우리가 정치적 중립성을 잃을 수 있을 것 같아 제가 부대를 뒤로 물렸다.”
육군 특전사 제1공수여단장 이상현 준장의 얘기다. 지난 3일 밤 국회에 진입한 부대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고교 선배인 김용현 전 국방장관은 무슨 생각으로 초헌법적이고 불법적인 내용을 버젓이 포고문에 넣었을까. 특전사 준장도 금방 알아차린 것을.
비장한 표정으로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이 포고문 1호가 내란죄와 맞닿아 있음을 알았어도, 몰랐어도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 계엄은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가장 막강한 권한이다. 일단 선포하면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그래서 객관적 요건을 두고 있는 것이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헌법 제77조 1항).
심지어 전시라도 마음대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엄법상 요건은 헌법보다 더 엄격하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라고 돼 있다.
법제처가 2010년 발간한 ‘헌법주석서’ 제3권은 이렇게 풀이한다. ‘행정만 현저히 수행이 곤란한 경우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못하고… 전시라 해도 행정 및 사법 기능이 정상적으로 수행되는 이상 당연히 비상계엄 요건을 충족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 전시·사변 상황인가?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문에서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와 ‘국회의 정부 예산 삭감’ 등을 계엄 이유로 들었다. 그냥 어이가 없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이나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의 준동’이 예견된다 해도 계엄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가능성만을 토대로 한 ‘예방적 계엄’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게 학계의 통설이다.
그래도 대통령이 일단 계엄을 선포하면 즉시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비상사태 여부’에 관한 판단을 국회가 재차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계엄 선포 후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평소보다 더 확장된다. 평상시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회기 중’ ‘국회의 동의’가 없는 경우에만 보장(헌법 제44조)되나 계엄 시행 중 국회의원은 현행범이 아니라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계엄법 제13조).
이렇게 중요한 국회 기능을 헌법 수호 책무를 지는 대통령이 계엄군을 동원, 방해하려 한 것이다. 나아가 진위는 앞으로 수사로 밝혀질 내용이나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 등을 체포해 과천에 있는 방첩사로 연행하려 했다는 증언까지 나온 상태다.
# 윤 대통령의 고교 후배인 이상민 행안장관은 국회에 나와 “비상계엄 선포는 국가원수의 고도의 통치행위”라며 “내란죄 등의 표현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반박했다.
그의 말대로 계엄은 헌법 절차인 국회 판단을 배제해도 되는가? 그럴 수 없다. 헌법은 초헌법적 결단을 통한 문제 해결을 허용하지 않는다. 비상사태에서 국가공동체가 허용하는 예외적 조치의 한계가 바로 헌법과 법률의 계엄 관련 조항들이다.
계엄 관련 모든 조치는 헌법 제77조에 ‘나와 있는대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 벗어나면 모두 효력이 없고 헌정 문란, 즉 내란으로 ‘처단’된다. 검찰과 경찰이 내란죄 수사를 시작한 이유다.
국민적 저항과 국제사회 압력으로 궁지에 몰린 윤 대통령은 4일 오후 대통령실을 찾은 한덕수 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게 ‘계엄 선포는 민주당에 경고만 하려던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민 장관도 국회에 나와 “국회를 제대로 봉쇄했다면 ‘계엄 해제’ 의결이 가능했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야당 의원들의 항의로 취소했다.
정말 경고만 하려 했을까? 군사 전문가인 김종대 전 의원은 ‘(북한 지도부) 참수 부대’인 707 특수임무단이 국회 장악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로 ‘공군 및 수방사와의 소통 문제’를 들었다.
“(헬기) 항로가 인천에서 출발해 한강을 따라 북상합니다. 그러면 용산 ‘ P73 비행금지구역’을 경유하게 돼 있고 수방사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됩니다. (항로) 관리는 또 공군작전사령부에서 하고요. 이런 절차가 하나도 안 돼 있으니 시간이 자꾸 지체되고 그래서 국회에 도착했을 땐 이미 의원과 보좌관들이 본청에 입장한 상태였죠.”
결국 윤 대통령이 극소수 몇 명하고만 음모를 꾸미다 실패했다는 얘기다.
정리해 보자. 윤 대통령은 군대를 '못'가서 M16 한 방 제대로 쏴 본 적 없을 정도로 군의 작동 원리를 전혀 모른다. 8일 검찰 특수본에 긴급 체포된 김용현 전 국방장관도 이미 군문을 떠난 지 7년이나 지나 군과의 고리가 현저히 약화된데다 과대망상증 환자일 가능성까지 있다.
두 사람 모두 지난 총선 패배가 일부 극우 유튜버가 주장하듯 선거부정 때문이라고 믿을 정도로 기이한 현실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지금은 대통령이나 장관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지시를 해도 합참부터 일선 연대장 대대장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80년 ‘서울의 봄’ 시절도 아니다.
결국 이번 계엄은 그들만의 판타지 세계에서 ‘이재명 한동훈부터 김명수 전 대법관과 전공의들까지 아무튼 평소 기분 나빴던 ○들은 모두 다 잡아 처넣고 대한민국을 정상화시키는’ 내란을 꿈꾸다 실패한 사건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 ‘대통령 탄핵’의 최대 변수였던 한동훈 대표가 윤 대통령의 7일 담화를 고리로 ‘표결 불성립’을 이끌었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윤 대통령의 ‘사실상’ 직무 배제와 ‘질서 있는’ 임기 단축이다.
그러나 대통령제 국가에서 직무배제가 과연 실효성 있느냐는 의문과 함께 그 자체가 반헌법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구치소에 있는 명태균 씨는 지난 10월 한 유튜브 방송에서 “우리 대통령은 다섯 살짜리 애가 권총을 들고 있는 격으로 자기도 죽일 수 있고 부모도 죽일 수 있고 다른 사람도 죽일 수 있다”고 일갈했다. 역시 아무나 대통령 후보 부부를 수시로 만날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다.
7일에는 김 전 국방장관이 북한 오물풍선 원점을 타격, 계엄 명분을 확보하려 했으나 합참의장이 반대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사실이라면 불과 며칠 전 한반도에 '국지전'이 발발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미 국내외에서 ‘위험하다’는 평가가 내려진 군 통수권자가 여전히 현직에 앉아 있는 상황. 대한민국은 언제까지 불안하고 초조한 시간을 버텨야 하나.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