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원의 여의도 포커스] 내란 피의자 윤석열과 ‘미시마 유키오’
유권자들 더 이상 비참하게 만들면 안 돼
#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과 고 윤기중 명예교수는 한일 수교 직후 일본 문부성 1호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돼 1966년부터 1968년까지 도쿄도 구니다치시에 있는 히토쓰바시 대학교에서 공부한다.
소년 윤석열도 이때 일본 생활을 함께했다. 그는 2023년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우에노에서 철도를 타고 구니다치역에 내려 아버지 아파트까지 갔다. 지금도 히토쓰바시 대학이 있던 거리가 눈에 선하다.”
어렸던 윤석열은 잘 몰랐겠지만 그 시절 일본은 ‘미일안전보장조약’ 철폐를 주장하는 이른바 ‘안보투쟁’이 10여년 이어진데다 파리에서 시작된 ‘68혁명’ 물결까지 밀어닥친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도쿄대 ‘전공투’는 야스다 강당을 점거, 결사 항전을 벌이다 학생과 기동대 800여 명이 부상당했고 이후 불에 탄 야스다 강당은 23년간이나 폐쇄됐다. 도쿄대 학생들은 전원 유급됐고 이 때문에 그 대학은 69학번이 없다.
1968년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의 호평을 받고 등단한 미시마 유키오도 도쿄대 법학부 출신의 소설가다.
그는 야스다 강당을 점거한 도쿄대 전공투 대표들과 청중 1000여 명 앞에서 2시간 반가량 대담을 진행한다. 극우 천황주의자 미시마 유키오가 좌파 학생들과 소위 ‘맞짱’을 뜬 것이다.
뜻을 같이한 젊은이들과 ‘다테노카이’(방패회)를 결성한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 11월 25일 회원 4명과 함께 신주쿠 인근 이치가야의 자위대 주둔지에 들어간다. 그리고 동부 방면 총감을 일본도로 위협, 인질로 잡은 뒤 저항하던 자위대원 8명을 부상케 한다.
이어 총감 방 발코니로 나가 몰려든 기자들을 향해 미일 안보조약 개정, 헌법 개정, 자위대의 쿠데타를 촉구하는 일장 연설을 했다. 그래도 자위대원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5분 후 할복자살한다. 소년 윤석열이 생활하던 구니다치에서 불과 30여 km 떨어진 곳이었다.
# 박정희 대통령도 5·16 쿠데타 전야, 아끼던 포병 부하 박태준에게 “만약 거사가 실패하고 내가 사형당하면 가족들을 보살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곤 그를 쿠데타 동지 명단에서 지웠다. 박정희 사후, 박태준은 방황하던 박지만 등을 끝까지 챙기는 것으로 약속을 지킨다.
이처럼 나름 ‘큰 뜻’을 품고 한 국가의 합법적 무력인 군대를 비합법적 방법으로 움직이려 할 때는 최소한 자신의 목숨 정도는 걸어야 하는 것이다. 국회에 경고만 한다거나, 아니면 말고 식의 군대 이동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경우는 다르지만 박지만과 중앙고, 육사 동기인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도 세월호 유족을 불법 사찰토록 지시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2018년 12월 7일 서울 송파구 지인 건물에서 투신 자살했다.
그는 자필 유서를 통해 “세월호 사고 시 기무사와 기무부대원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5년 전에 했던 일을 사찰로 단죄하는 게 안타깝다”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죄 핵심 피의자인 윤 대통령이야 ‘부동시’로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 또래의 군에 대한 평균적 인식과 동떨어져 있다고 치자.(물론 몰랐다고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번 불법 계엄에 참여한 고위 장교들은 도대체 그 절체절명 선택의 순간에 왜 그 같은 판단을 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 윤 대통령은 이번 12·3 계엄이 내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럼 속히 재판절차를 거쳐 깨끗이 소명하면 된다. 그러나 이후 언행은 전혀 다르다.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 직전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던 그는 “임기 문제 등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한다”는 담화로 여당의 탄핵 투표 불참을 유도했다.
2차 탄핵 표결을 앞두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 행위”라며 며칠 전 말을 뒤집더니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선 공조수사본부가 대통령실과 한남동 관저에 보낸 출석요구서도, 헌법재판소가 보낸 탄핵소추 의결서도 아예 수령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그는 검찰에 있을 때 한번 물면 절대 그냥 놓아주지 않는 ‘잔인한’ 수사로 유명했다. ‘인디언 기우제’ 지내듯 아무튼 뭔가 나올 때까지, 사돈의 팔촌까지 주변을 100~200명이라도 뒤져 별건으로라도 결국 구속시키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 장본인이 이제 자신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수사와 탄핵 재판을 받게 되니 겁이 나는가? 하긴 ‘나는 수사를 하는 사람이지 수사나 재판받을 사람이 아니다’는 생각으로 반평생을 살았으니 이번 계엄 같은 엄청난 사안도 막무가내 저질렀을 것이다.
최근엔 변호인을 통해 체포의 ‘체’자도 꺼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관련자 증언을 종합하면 ‘국회에 병력 1000명 쯤 투입, 4명이 의원 한 명씩 들고 나오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체포’라는 단어는 없다. 이 상황에서도 그런 말장난이 나오는가? 검찰에서 ‘조서를 꾸민다’고 하는 말도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질서 유지 차원에서 소수의 비무장 병력을 국회에 ‘잠깐’ 투입했단다. 707특임단 등 1500여명의 병력과 각종 화기, 실탄 1만여 발로 누구로부터 어떤 질서를 유지한다는 건가?
윤 대통령 주장이 맞다면 창문을 깨고 국회 본관에 진입했거나 의원들의 출입을 막은 군경 책임자는 국군 통수권자의 뜻을 어긴 내란죄 주범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소 사형이나 무기징역이다.
‘다 내 책임이니 그들은 용서해 달라’는 자세는 기대 안 한다. 최소한 부하들을 사지에 내몰고 혼자 도망치려 한 비겁한 지도자로 역사에 남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 앞으로 윤 대통령은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웬만하면 그런 몰상식한 얘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 여자들 사이에 윤 대통령 인기가 짱이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내 지키겠다고 저렇게 군대까지 동원하는 저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한다더라.”(월간조선 2025년 1월호 홍준표 시장 인터뷰 질문 중)
무모하고 어처구니없는 데다 비겁하기까지 한 지도자 덕에 수치심은 온전히 국민 몫이다.
지난 대선 당시, 평생 처음 민주당 후보를 찍지 않았다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민주당에 실망한 점도 있었겠으나 윤석열 후보에 기대한 측면도 있어서였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도덕적, 인격적 수준은 유지해 줘야 한다.
주변의 온갖 눈총을 받으면서 유독 ‘국민의힘 지지 아닌 윤석열 지지’라고 강변했던 그 유권자들을 여기서 더 초라하거나 비참하게 만들면 안 된다. 정치 도의적으로도 그러면 안 된다.
PS : 선관위를 향한 윤 대통령 인식에 대해선 ‘지구 평면설’이나 ‘아마겟돈 휴거’ 수준의 주장이라 언급 자체가 민망하고 귀찮다.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