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드림 취재기·뒷얘기] 서구청은 왜 금요시장 철거에 올인했나
10개월 간 금요일마다 ‘전쟁터’로
올해 창간 20주년 특집 중 하나로 광주드림은 역대 취재기·뒷얘기를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그때’ 광주드림에 실려 지역사회 큰 파장을 일으켰던 기사들이 어떻게 작성됐는지 이면을 알려주는 읽을 거리입니다. 독자들에게 제공된 정제된 기록으로서 기사가 아닌 ‘비사’라 할 수 있는 정황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한 편의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해당 기자들이 감당한 수고의 일단도 느껴볼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취재기자 관점에서 정리한 기록은 2018년 본보가 출간한 ‘호랑이똥은 멧돼지를 쫓았을까-광주드림 취재기’ 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늦겨울 추위가 매섭던 이른 아침 김우리 기자는 다급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광주 상무지구 금요시장 상인들이 ‘당장 시장에서 쫓겨나게 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금요시장은 풍물시장으로서 20년 역사와 전통이 여러 번 기사화 된 바 있다. 그런데 예정에도 없던 갑작스런 철거 소식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문자를 받은 2016년 2월의 어느 날 시작된 김 기자의 취재는 이후 10개월 동안 이어지게 된다. 이날 새벽 기습적으로 행해진 서구청의 단속행정이 수개월 간 지속됐다는 뜻이다. 초반 4~5개월은 치열한 싸움을 보도했고, 이후엔 협의와 해결 국면을 중계했다.
상황이 장기전으로 치닫고 보니 한 번 시작한 취재를 멈출 수는 없었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건 250여 명의 금요시장 상인들. 그리고 불법이란 이유로 노점 철거 조치를 강행한 서구청과의 길고 긴 사투가 시작된 것이다.
초반 상무 금요시장 문제에 대해 여론은 서구청의 논리가 더 타당하다고 여기는 듯 했다. 결국 금요시장은 불법 노점이고, 행정조치는 불가피하는 논리였다. 서구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불법노점 단속 강화’ 방침을 쏟아내고, 일부 언론사는 이를 그대로 보도했다.
“단속 현장에선 상인들이 ‘우리는 인간도 아니냐’며 생존권을 요구했어요. 상인중엔 80대를 훌쩍 넘는 할머니 보따리상도 많았죠. 단속이 휩쓸고 간 현장에서 상인들은 ‘아무도 우리 억울함을 듣지 않는다’고 호소했던 기억이 나요.”
김 기자는 상인들의 억울함을 기사에 실었다. 서구청이 법적 논리만을 앞세워 민생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또한 금요시장 역사 20년 만에 무자비한 단속이 행해진 건 더욱 석연치 않았다. 구청이 배부한 보도자료에는 단속의 배경을 ‘민원’이라고 했지만, 다른 의도는 “구청이 추진하려는 사업과 관련이 있다”는 말들이 떠돌았다.
이는 금요시장 철거를 주장하던 주민대표단 중 한 명에 의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노점 반대편에 있었지만, 항상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임해주는 취재원이기도 했다.
“20년 동안 이용해 온 노점을 철거하는데 찬성 하십니까?”
“마음은 아프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주민들은 시장이 가깝게 형성돼 좋지 않았나요?”
“그렇긴 했죠. 하지만 구청에 민원도 제기됐다고 하고, 구청에서 하는 사업에도 지장이 있고요.”
그에게서 구청이 주민들과 사전에 사업에 대한 간담회를 진행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민대표단이 모인 그 간담회에서 서구청은 사업에 관련 협조를 구했다고 했다.
그 사이 단속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장사를 포기하다시피 싸움에 매달린 상인들의 분노도 커져갔다. 결국 금요시장 자리가 구청이 추진하려던 명품거리 사업지라는 것을 알아냈지만, 구청은 “노점단속과는 상관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채 현상 보도만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성과는 있었다. 10여개월 동안 금요시장 강제 철거 문제를 다룬 기사, 칼럼, 기고문 등 총 42편을 지면과 인터넷에 게재했다. 보도 횟수가 늘어날수록 여론은 지역사회를 넘어 전국 노점상연합회의 연대까지 이끌어냈다. 급기야 전국의 노점상 1000여 명이 당시 임우진 서구청장을 항의 방문하기 위한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전국의 노점상이 모이니 그 규모가 엄청났어요. 함께 구청을 향해 돌진했던 장면은 취재 중 만난 어떤 시위보다 격렬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이미 금요시장 문제가 상인들의 입장에서 많이 다뤄지고 있던 터라 주민들의 응원과 관심도 뜨거웠고요.”
대학생, 정치인, 시민단체가 구청의 강경 대응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상인 편에서 목소리를 함께 내주는 시민들이 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청의 불통행정은 여전했고, 상인들은 단속반을 피해 새벽 2~3시에 출근하고 평일엔 천막농성 생활을 이어갔다.
민심을 의식했는지 서구청이 갈등 4개월 만에 상인과 대화에 나섰다. 인근 시민공원으로 금요시장 이전을 제안한 서구청. 활성화 방안 등을 약속하며 상인과 타협하기에 이른다.
2016년 9월 드디어 금요시장은 시민공원으로 이전했다. 그날도 김 기자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금요시장 상인들을 만나러 갔다. 금요일마다 얼굴을 마주치다 보니 250여 개소 노점 상인들이 김 기자를 알아보았다.
지키고 싶었던 금요시장 자리를 끝내 떠나왔지만, 상인들의 표정은 밝았다. 상인들은 김 기자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어떤 상인은 커피를 타 주고, 또 다른 상인은 팔고 있던 주전부리를 주기도 했다.
“우리 이야길 들어줘서 고맙당께.”
이 10개월간의 보도로 김 기자는 그해 광주·전남민주언론상을 수상했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