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원의 여의도 포커스] 윤석열의 ‘농성전’과 보수와의 ‘악연’(惡緣)
尹, 2017년 이어 올해도 보수 진영 초토화
# 계엄령이 발동되면 대통령은 ‘즉각’ 국회에 통보하고 의원들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헌법에 그렇게 써있다.
이런 절차를 지켜야 윤석열 대통령이 외쳐온 ‘자유’민주주의가 유지되며 우방들도 민주 진영에 끼워준다. 민주주의는 ‘공산 전체주의 척결’만 외친다고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내란죄 핵심 피의자 윤석열은 통보 대신 헬기에 북파 특수부대를 가득 실어 국회로 보냈다. 그리곤 법 절차에 따르기는 커녕 한남동 벙커에서 '농성전'을 벌이고 있다.
헌재의 탄핵 기각을 유도한 후 대통령직에 복귀, 내란죄 재판마저 유야무야 시킨다는 망상을 하는 것 같다. 아마도 알코올과 극우 유튜브, 그리고 주술 때문일 것이다.
상태가 좀 안 좋은 듯한 윤 대통령이야 논외로 치자. 이해할 수 없는 건 집권당의 언행이다.
여당의 중진들과 그 많은 법조 출신 의원들은 12월 3일 그 긴박했던 시각,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들은 소속 의원들이 초등생처럼 당사로 국회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상황을 단톡방에서 보고만 있었다.
원내대표 지시가 있건 없건 국회의원 개개인은 모두 독자적 헌법기관이다. 당 대표가 본회의장에 모여달라 했음에도 왜 멀거니 보고만 있었을까.
야당 지지자들이 국회를 포위, 못 들어갔다는 판사 출신 여성의원 발언은 웃고 넘어가자. 그 시각 야당 의원들은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 도움으로 국회 담을 넘고 있었다.
심지어 본회의장에 ‘잠입’, 국회의원 숫자를 대통령실에 보고한 분까지 있었다니 말문이 막힌다. 대통령이 당 대표인가, 원내대표인가. 게다가 한동훈 전 대표 아니었으면 ‘계엄 찬성 당’으로 낙인찍힐 뻔 해놓곤 오히려 그를 몰아내기까지 했다.
# 국민의힘은 탄핵안 1차 표결 때 당론반대로 집단 퇴장하더니 가결된 후엔 찬성 의원들에게 부역자라는 주홍 글씨를 새기고 있다. 그리곤 공석인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이대로 시간을 끌다 헌재의 탄핵 심판을 무산시켜 이재명 대표 낙마라는 요행수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입만 열면 나열하는 이 대표의 혐의를 듣다 보면 ‘이재명’은 그야말로 결점 투성이인 최약체 후보다. 그럼에도 민주당에서 다른 후보가 나오길 기대하는 눈치이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헌재 판결을 시급히 종결시켜 정치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해 달라는 여론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대선 승리를 기대하나?
여야를 떠나 국회의원이라면 윤 대통령의 반헌법적 국회 침탈에 분노가 일어나야 정상이다.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의원들 끌어내라’는 검찰 수사 결과까지 나오지 않았나. 이러니 ‘죽어도 이재명만은 안된다’는 여당이 그의 선거운동을 도와준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것 아닐까.
‘나도 이재명은 비호감이나 탄핵을 반대하는 여당이 그렇게도 싫어한다니 국민의힘 보란 듯 그에게 국정을 맡겨보고 싶다’거나 ‘아무렴 내란 공범들만 하겠냐’는 온라인 댓글도 눈에 띈다.
여당 의원들은 ‘핵심 지지층만 보고 가면 만약 대선은 패배하더라도 3년 후 총선 공천은 무난히 받을 것’이라는 계산을 하는 것 같다. 여야에 산재한, 국가나 당의 미래보다 나만 살고 보자는 전형적 ‘정치 자영업자’ 행태다.
# 국민의힘이 이 같은 선택을 하는 근저엔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의 슬픈 잔영인 영호남 ‘지역주의’도 독버섯처럼 얽혀있다.
만약 영남이 여야가 접전을 벌이는 지역이었다면. 그래서 국민의힘 비주류가 지난 총선에서 ‘용산’의 자장을 일부라도 벗어났더라면. 그 결과 여당이 영남권 외에도 어느 정도 당선자를 냈더라면.
아마도 윤 대통령이 불법 계엄을 자행한 순간, 비주류가 즉각 당권을 접수하고 탄핵에 앞장섰을 것이다. 그리고 천막당사 앞에서 바짝 엎드려 대국민 사과부터 했을 것이다. 그 길만이 당의 유일한 위기 탈출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상적 정당이라면 벌써 ‘폐족’이 됐어야 할 세력이 여전히 당을 좌지우지하고, 배신자 운운하며 눈을 부라리는 게 작금의 국민의힘 상황이다.
그래서 천하의 김대중과 김영삼도 당내 비주류를 3~40% 쯤 인정했을 것이다. 그들이 무슨 대단한 아량이 있어서 그랬겠는가. 적어도 양김은 정당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민주주의자’였기 때문이다.
#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당시 이명박-박근혜 정부 인사들을 문자 그대로 ‘초토화’시켰다.
계엄 직전인 지난달 29일, 홍준표 대구시장이 페북에서 한 얘기를 들어보자. “2017년 10월 우리(보수정당)는 문재인 정권에 의해 무고하게 적폐로 몰려 1000여 명이 끌려가고 수백 명이 구속됐으며 5명이 강압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지옥의 밑바닥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홍 시장은 “그때 문재인 정권의 사냥개가 돼 우릴 그렇게 못살게 굴던 그 친구(한동훈 대표)는 그 시절을 자신의 ‘화양연화’라고 했다”며 맹공했다. 그는 언급을 피했으나 한 대표를 지휘한 장본인은 바로 윤 대통령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엔 비상계엄이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국민의힘을 다시 형해화시키고 있다. 윤 대통령 측 최근 언행은 광화문의 소위 ‘태극기 부대’를 격동시켜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과 검경 내란죄 수사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 그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몇 시간이나 울었다는 윤 대통령. 이제 국민들은 그가 극우세력과 손잡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악을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PD와 주사파 운동권 일부가 걸었던 퇴행적 ‘흑화’의 그 길을, 1980년 5월 서울법대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한 열혈 청년 윤석열이 뒤따르는 현실은 씁쓸하고 ‘아스트랄’하다.
그때 전통의 보수정당 국민의힘은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궁금하다. 지금처럼 윤 대통령 같은 내란 피의자 옹위 입장을 고수할 경우, 태극기를 든 아스팔트 세력 비슷한 영남권 극우 정당으로 쪼그라들 수도 있다. 나라를 위해서도 심히 걱정스럽다.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까지 두 번이나 보수진영을 궤멸시키려는 윤 대통령. 그와 대한민국 보수세력 간 질긴 악연이 아닐 수 없다.
PS : ‘태극기 부대’를 이끄는 전광훈 목사는 지금도 ‘2차 계엄’을 촉구하고 있다. 광화문 집회 등에서 “나라가 북한으로 넘어가면 전세방이 어딨냐”며 전세방을 빼서라도 윤 대통령을 돕자고 역설한다.
윤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 총선에서 전 목사가 주도한 자유통일당 비례대표 2번이었다. 전광훈과 석동현, 그리고 내란죄 핵심 피의자 윤석열. 세 사람의 캐미가 잘 맞지 않는가?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