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오는 태양처럼 다시 돌아오는 계절처럼
[작은 책방 우리 책들] 그림책 ‘거만한 눈사람’ (2013 분홍고래)
내란 정국이 해를 넘길 모양이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사람들은 점점 지쳐간다. 매 주 거리로 나오는 것이 당연하게 된 것과 별개로 우리는 지친다. 삭신이 쑤신다. 옷 틈새로 새어드는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우리를 아프게 한다.
바람만이 살을 에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말도 살을 엔다. 거리에서 윤석열 퇴진을 외치던 누군가가 ‘건희야 이혼해라’라고 외친다. 아무도 호응하지 않으나 가슴 안쪽에서 싸늘함이 느껴진다. 남태령의 연대에 감사를 표하는 전농의 무지개떡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차별금지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이들은 ‘무지개떡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말한다. 제주항공 2216편 사고에 대해 호남의 국제공항 이름을 붙이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역시 겉멋 들여 개발한 지역공항은 필요 없다’는 몰상식한 발언이 이어진다. 그런 나날들이다. 한 걸음 나가면 두어 걸음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너무 많은 생채기가 나는 듯한 시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말마다 사람들은 광화문에 모이고, 팔레스타인을 위해 기부를 하고, 거통고조선하청지회 단식투쟁에 관심을 가진다. 알기 때문에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하며 모르는 것을 배운다. 서로를 초대하고, 환대하며, 붙잡고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어떻게 우리는 이것을 계속할 수 있을까? 살을 에는 바람의 세상 속에서? 세예드 알리 쇼자에가 글을 쓰고 엘라헤 타헤리얀이 그림을 그린 이란의 그림책 <거만한 눈사람>(2013, 분홍고래)은 우화의 짧은 장면들 속에서, 한 줄의 묘사로 연대의 원리를 읊는다.
옛날 어느 외딴 마을에서 어느 겨울, 이틀 동안 쉬지도 않고 함박눈이 내렸다.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하루 종일 눈덩이를 뭉쳤다. 사다리에 올라가서, 양동이로 눈을 퍼날라서, 점심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몸통을 만들고 머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집에서 제일 좋은 물건을 하나씩 가지고 왔다. 새로 산 목도리, 근사한 모자, 갖가지 장신구, 큰 구슬……. 그것은 물건일 뿐 아니라 마음이기까지 했다. 소중하고 귀한 마음들.
그러나 다음 날 이른 새벽부터, 그 소중하고 귀한 마음들은 ‘자신만’ 소중하고 귀한 눈뭉치가 되어버렸다.
“이놈의 까마귀들! 시끄럽다! 이 몸이 아직 곤히 자고 있는데 감히 깍깍 울어 대? 어느 면전이라고, 썩 꺼져라! 저기 산 너머에 숨어서 울어라!”
대체 누구일까요?
온 마을이 떠나가라 쩌렁쩌렁 소리친 건 바로 눈사람이었어요.
(…)
마을 사람들은 눈사람의 명령을 고분고분 따랐어요. 눈사람이 명령을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죠. 그리고 시킨다고 꼭 따를 필요는 없잖아요. 하지만 아무도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말 이상한 일이죠?
<거만한 눈사람> 중에서.
눈사람은 매일같이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점점 거만해졌다. 사람들은 그 명령을 따랐다. 왜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되었다. 곧 봄이 올때까지도 사람들은 동네 한가운데에 눈사람을 세워놓고 추운 겨울에 머무르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 같았다. 겨울이 끝나가고 있을 때, 해님이 고개를 내밀고 물었는데도 사람들은 똑같았다.
“눈사람 말이 맞아요. 눈사람이 이곳의 왕이에요.”
마을 사람들이 말했어요.
해님이 놀라서 물었어요.
“그럼 앞으로 나를 보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예, 보고 싶지 않아요.”
“그럼 봄이 오는 것도 싫어요?”
“예, 싫어요.”
“푸르고 싱싱한 여름이 기다려지지 않아요?”
“기다려지지 않아요.”
<거만한 눈사람> 중에서.
해님은 너무 놀라고 화가 났는데, 사람들은 해님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그들에게 간청하고, 설득하던 해님은 구름 뒤로 들어간다. “당신들이 봄이 싫다면 나도 어쩔 수 없어요. 잘 있어요.” 그리고 이 마을에는 추위만 계속됐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났더라면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당연히, 우화는 다정하게 따뜻한 마무리를 그려낸다. 그런데, 그 따뜻한 마무리는 갑자기 몇몇 마을 사람들의 회개와 깨달음으로 인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일갈해서 정신을 차린 마을 사람들이 해에게 사과를 한 것도 아니다.
어느 날, 해님은 마을 사람들이 떠올랐어요.
이제 더는 두고 볼 수 없었죠. 해님은 구름을 옆으로 힘껏 밀어 젖혔어요.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찬란하고 따스한 빛을 쏘아 보냈어요. 눈 깜짝할 사이, 눈사람도 녹고, 마을 사람들의 얼어붙은 삶도 스르르 녹아 버렸어요.
<거만한 눈사람> 중에서.
그런 것이다. 거만한 눈사람은 무어라 한 마디 할 시간조차 없이 녹아 없어져버렸다. 그저 해님이 마을 사람들을 떠올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계절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서울 지하철의 전장연 투쟁에 시민들이 참여해 장애인 활동가들이 강제로 퇴거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남태령에 시민들이 모여들어 농민들과 트랙터가 서울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광장에 모인 옆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간에 더는 무시하고 두고 볼 수 없었기에 손을 잡은 것처럼, 계절이 돌아오고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유지된다.
다시 돌아오는 태양처럼, 다시 돌아오는 계절처럼, 얼어붙은 삶이 스르르 녹아버리기까지. 우리는 계속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 옆의 사람들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에. 그 경험은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을 것이다. 어마어마하게 거만하고 사악한 눈사람일지라도.
문의 062-954-9420
호수(동네책방 ‘숨’ 책방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