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달구벌-빛고을)의 간극, 철도로 잇는다
작년 ‘달빛소나타’ 연재 이어 올해도 ‘시즌2’ 7개월 간 광주~대구 간 10개 지자체 방문 새로운 교통 인프라에 지역 활성화 기대감 “철도 하나 놓는다고 달라지겠나…” 우려도
광주~대구 간 달빛철도법 국회 통과는 영호남이 함께 동서 교류 촉진과 지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목소리를 모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그간 서로를 잇는 교통인프라가 부재했던 영호남의 인적·물적 교류를 촉진해 지역 경제와 관광 교류 활성화를 이끌 역할로서도 기대감을 한껏 부풀어오르게 하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기나긴 시간 쌓여온 두 지역의 거리감은 분명했다. 오랜 지역갈등과 극명히 갈리는 정치적 성향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감을 넘어 때묵은 심리적 거리감으로 자리했다.
이처럼 ‘가깝고도 먼’ 두 지역에 그저 철길 하나를 놓는 것에 그치지 않도록, 본보는 진정한 의미의 동서 간 화합과 교류를 모색하고 이끌고자 했다.
그렇게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약 7개월간 본보의 기자들은 달빛철도가 지나게 될 10개 시·군을 미리 달려 찾아갔다.
대구-광주, 고령-담양, 합천-순창, 거창-남원, 함양-장수 두 지역 씩 묶어 총 5차례 기획 시리즈 ‘달빛소나타’를 연재했다. 기자들이 직접 듣고 전한 서로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바탕으로 올해는 더욱 내밀한 취재에 들어갈 예정이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달빛철도의 시작과 종점에 있는 광주와 대구였다.
두 도시의 시민들은 물리적으로 1시간 이내에 서로를 오갈 수 있다는 설렘과 그동안 쉽게 가보지 못했던 서로에 대한 호기심 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철도 하나로 지역감정을 해소할 순 없다는 냉소도 만만치 않았다.
“대구 2·28-광주 5·18 비슷한 역사”
본보가 만난 대구 주민 정순애(77) 씨는 “대구의 2·28과 광주의 5·18처럼 서로 비슷한 부분이 많이 있다. 기차가 개통할 때가지 건강이 허락되면 꼭 한번 광주부터 순차적으로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전했다. 오태현(39) 씨는 “여행 목적이라면 긍정적인 부분은 있겠지만 지역감정 해소 측면이라면 기차 하나로 풀기에는 너무 먼 강을 돌아온 것 같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광주 주민 조아람(38) 씨는 “대구에 먹을 것도 많고, 볼거리도 많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하지만 막상 그정도 시간대를 운전해서 갈 생각하면 주저하게 돼서 가보지를 못했는데 기차가 생긴다면 무조건 가볼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홍(79) 씨는 “서로 정치적으로 이해관계를 극명하게 달리하는 동네끼리 기찻길 하나 만든다고 변화할 것이란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고 전했다.
이후 찾은 곳은 전남 담양과 경북 고령이었다. 철도가 없다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던 두 지역은 교통 불편 해소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나타났다. 이와 함께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관광객 유입 방안으로서의 기대도 엿볼 수 있었다.
고령 주민 이남철 씨는 “교통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어딘가를 이동할때면 자동차를 이용했는데, 철도가 생긴다면 아내와 기차여행을 떠나보지 않겠냐”고 기대했다. 박지태 씨는 “과거가 어떻든 지금은 지역감정은 무조건 없애야 하는 것. 철도가 생기면서 이런 역할까지 해준다면 대찬성이고 이와 더해 고령의 관광 활성화와 물류 이동이 원활해지는 것도 기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사 어떻든 지역감정은 무조건 없애야”
담양 주민 장희성 씨는 “아무래도 버스만 있는 것보다는 철도가 있으면 영남과의 교류가 더 가까워질 것 같고 양 지역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 경제, 관광 모두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김진열 씨도 “이색 여행이 트렌드인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고령에 가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멀어서 가보기 힘들지만 철도가 생겨나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전했다.
세 번째로 찾은 곳은 전북 순창과 경남 합천, 그 중에서도 합천은 전두환의 고향’이라는 타이틀로 경상도 어떤 지자체보다 호남 지역과는 극명한 거리감을 보이는 곳이기도 했다. 두 지역 모두 의도치 않게(?) 유명한 것들의 이미지가 강하다보니 철도 연결이 새로운 인식을 환기시킬 거라는데 동의하고 있었다.
합천 주민 조중희 씨는 “순창은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광고 때문인지 순창하면 고추장 밖에 안 떠오른다”며 “철도가 연결된다면 가기 편할 테니 관광하러 다녀와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영호 씨는 “여기서 광주까지 가려면 고속도로 타고 2시간 반이 걸리는데 순창까지 가 볼 생각은 더 못해봤다. 달빛철도가 연결된다면 편하긴 하겠다”고 밝혔다.
순창 주민 노상배(64) 씨는 “이번에 전라도와 경상도 여러 지자체가 하나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 굉장히 기쁘고 철도 연결이 무척 기대된다”고 말했다. 나병호 씨는 “나이가 있어 그런가 합천 하면 전두환이 떠오른다. 외갓집이 영주라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합천을 거쳐가곤 했는데 참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라 생각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네 번째로 찾은 전북의 남원과 경남의 거창은 각각 교통 요충지와 교통 불모지라는 교차점이 있었지만 철도 연결이 가져올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여건임은 같았다. 두 곳의 지역민 모두 지역 발전의 미래를 그리며 소망을 표했다.
“내륙철도 뚫리면 소통도 원활할 것”
거창 주민 김서연(27) 씨는 “차로는 김천까지 대략 70km 떨어져 있는데 차가 없다면 바깥으로 나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양만근 씨는 “거창에서 호남을 가려면 함양으로 넘어가거나 하동으로 내려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거창역이 내륙철도 노선의 환승역이 되면 달빛 철도 노선과 함께 연계돼 어느 곳이든 수월하게 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남원 주민 박은숙 씨는 “전라선 노선의 중간역인 남원역에 광주까지 이어지는 달빛철도도 경유하게 되면 남원은 전라선과 달빛 철도선 모두 중간역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임형우(26)·서유미(23) 씨는 “달빛이란 단어는 처음 들어봤지만 남원에 철도가 생기면 어디를 가든 지금보단 접근성이 좋아지니 어느 누구도 좋아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기획 시리즈의 종착역은 전북 장수와 경남 함양이었다. 달빛철도 노선 가운데서도 인구 소멸 위기를 절실히 느끼고 있던 두 지역은 인근 도시로의 예속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고립된 지방 연결의 단초가 되길 바라는 기대와도 만날 수 있었다.
함양 주민 박영택 씨는 “철도 생기면 대구쪽으로 사람들이 빠져나가 함양 상권도 어려워 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수영 씨는 “장단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대가 크다. 접근성도 좋아지고 유동인구도 많아지면 상권도 형성되고 활기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장수 주민 권영구(81) 씨는 “함양은 문 앞까지밖에 안가봤다. 장수보다는 발달했고, 구경거리도 좋다. 열차가 생기면 교통도 좋아지고 함양도 가볼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또 다른 시민은 “(철도가 생기면) 반절이 없어질지 들어올지 알 수가 없는 것이고. 좋은 일인지 아닌지도 모를 일”이라고 판단했다.
동서 화합·교류 더 내밀한 속내 취재
이같은 기대와 우려 속에 내년 본보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삶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 철도가 이끌어낼 변화에 대한 기대와 바람을 폭넓게 담아낼 예정이다. 동서 간 교류와 화합이라는 시대적 요구 속에 진정한 상호 교감의 발판이 되길 기대해본다.
한편 달빛철도는 대구와 광주를 잇는 고속철도로, 대구·광주의 순우리말 명칭인 ‘달구벌’과 ‘빛고을’ 첫 글자를 따와 이름 지었다. 광주송정역~광주역~전남(담양)~전북(순창·남원·장수)~경남(함양·거창·합천)~경북(고령)~서대구역을 오가며 총연장은 198.8km다.
지난해 1월 헌정 사상 최다인 261명의 여야 의원의 공동발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예타 면제 작업이 마침표를 찍지 못한 상태다. 당초 총 사업비 4조 5158억 원을 투입해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할 계획이었으나 물가인상분에 따라 7조 원까지 넘어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면서 기재부가 난색을 표하고 있어 장기 표류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유시연 기자 youni@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