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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 우리 책들] ‘찌르레기의 노래’ (2024 열매하나)

2025-02-03     호수

 내란 정국으로 인해 시작된 연대의 불씨는 1월이 다 가도록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연대하고자 하는 시민들도, 현장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활동가들도 이 열기가 어떻게 해야 계속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어느 누구도 무시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다. 배제와 혐오를 피해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무언가를 금지하거나 멈추는 것보다, 무언가를 더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사실을 종종 잊고, 또 자주 정당화한다. 새로운 것을 하는 것보다 오래된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옥타비 볼터스의 ‘찌르레기의 노래’(2024, 열매하나)는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또 계속해서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찌르레기는 사랑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차 그것을 많은 사람에게 나누고 싶어한다. 아름다운 판화 이미지로 가득찬 책은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둥그런 지구 위로 넓게 펼쳐진 들판을 가로질러 찌르레기가 날아갑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푸른 대지에는 낟알이 가득합니다.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먼 바다에서 잔잔한 바람이 붑니다.

 꽃은 바람에 피어나고, 산에는 눈이 내리고, 사슴의 털은 보드랍습니다.

 하늘도 얼마나 맑은지 모릅니다. 사랑이 찌르레기 안에 차오릅니다.

 ‘찌르레기의 노래’ 중에서.

 찌르레기는 딱따구리, 부엉이, 물총새, 울새, 제비들을 비롯한 새들에게 노래를 들려준다. 그들은 찌르레기에게 기억해야 할 것에 대해 말한다.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말한다. 딱따구리의 나무, 부엉이의 밤, 물총새의 물, 울새의 꽃, 제비의 돌… 찌르레기는 이미 둥그런 지구의 아름다움을 알고 노래하기 시작했지만 세상에는 더욱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난다. 그것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름다워서, 나를 살아있게 해서, 그것이 계속되기를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무언가 그 자리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아름다운 것들에서 어쩌면 아름답지 않을 수 있는 것, 힘겨울 수 있는 것으로 확장된다. 삶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에 대해서.

 “삶에 대해 노래하는 것을 잊지 말아줘.” 엄마 오리는 말합니다.

 “삶은 때때로

 너무 어려워 보이지만

 실은 아주 단순할 수도 있어.

 당신이 꼭 해야 할 일은

 살아 있을 것.

 그걸로 충분하니까.”

 ‘찌르레기의 노래’ 중에서.

 이 모든 부탁들은 찌르레기의 노래에 대한 화답이다. 찌르레기는 곁에 있는 다른 모든 찌르레기들에게도 이 화답으로 함께된 노래를 전한다. 다른 찌르레기들은 대답한다. “우리에 대해 노래하는 걸 잊지 말아줘.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할 수 있어.” 그리고 찌르레기는 노래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나간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너와 나 그리고 우리로 동시에 존재해야 하는 시간들 속에서 계속해서 연대하고 공존할 수 있으려면? “나는 누군지, 우리가 함께할 때 얼마나 온전해질 수 있는지”,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고 “눈길을 주면 보”인다. 자유발언을 하는 시민들, 행진 옆자리에서 함께 걷는 사람, 그들은 모두 각자의 표정, 각자의 걸음걸이, 각자의 목소리가 있고 그것을 말하고 싶어한다. 그 모든 것을 듣는 일은 막중한 의무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좇는 일일 것이다. ‘찌르레기의 노래’는 당신에게도 그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음률을 상상해야 하는 활자의, 그림의 노래로.

 어떤 사람들은 투쟁과 연대야말로 길어질수록 지친다고 한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언제나 우리 곁에 도사린다. 하지만 정말이지, 엄마 오리가 말한 것처럼 “살아있을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살아있으면 옆사람에게 웃어줄 수 있고, 옆사람의 웃음을 들을 수 있고, 서로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다면 우리는 나와 너로 분리된 상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가 되어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찌르레기의 노래가 들리는가?

 문의 062-954-9420

 호수(동네책방 ‘숨’ 책방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