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물 부처’, 낙안 벌판 전망대
[김희순의 호남의 명산] 순천 금전산(668m) 벌교 꼬막 식도락, ‘뿌리깊은나무박물관’ 투어까지
금전산(金錢山·668m)은 쇠 금(金), 돈 전(錢) 자를 쓰는 이름값 톡톡히 하는 낙안면(樂安面)의 진산이다. 일제 강점기 때 금을 캐던 연유도 있지만, 의상대와 원효대의 기운이 좋다고 알려지면서 한때 로또 명당이라는 소문까지 났다. 산 이름은 부처의 500 제자 중 한 명인 가난한 약초꾼 금전비구(金錢比丘)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금전산은 거친 바위산이다. 하지만, 까칠해 보이는 산세와 달리 전체적으로 완만하고 능선만 올라서면 조망도 좋다. 최고의 포인트는 암릉이 뭉쳐있는 금강암(金剛庵) 일대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금강암 오른쪽에 위치한 의상대와 왼쪽으로 원효대가 우뚝 솟아있다. 그 주변에는 개바위, 형제바위, 선바위, 햄버거 바위 등 다양한 형태의 바위가 즐비하다. 그래서인지 지정 등산로에 얽매이지 않고 바위와 바위를 넘는 릿지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금둔릿지, 원효릿지가 있다. 기암괴석 너머로 낙안 평야지대를 내려다보는 경치도 압권이다. 신비한 것은 의상대 암반에 있는 물 부처다. 바위에 홈이 파여 이곳에 물이 고여 있는데 부처님 형상이라 ‘물 부처’라 불린다. 사시사철 거의 마르지 않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겨울에 먹는 벌교 참꼬막 별미산행
금전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금둔사(金芚寺)는 산의 무게감을 더해 준다. 9세기 무렵 창건한 백제 고찰로서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보물 제945호)과 외형상 비석 모양의 특이한 석불비상(보물 제946호) 등 문화재를 품고 있다. 700년이 넘는 차나무와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납월홍매도 유명하다. 아래쪽 산기슭에는 수질이 좋다고 알려진 낙안온천이 있어 산행 후 피로를 풀어 준다. 금전산은 바위산이기에 겨울에는 권하지 않는 곳이지만 오히려 겨울에 가면 좋은 이유는 벌교 참꼬막을 맛보기 위함이다. 벌교는 우리나라 꼬막의 70% 가까이 생산하는 주산지다. 벌교 참꼬막은 찬바람 부는 11월부터 이듬해 봄까지가 가장 찰지고 맛이 좋다.
금전산 들머리는 오공재에서 출발하면 완만하기는 하지만 밋밋하다. 반면에 불재에서 시작하면 가파르게 차고 오르지만 볼거리가 더 많다. 불재는 낙안면과 상사면을 잇는 250m 높이에 있는 언덕이다. 법황사 이정표를 따라 시멘트 포장로를 5분 올라가면 차량 차단기가 있다. 이곳에서 시멘트길을 버리고 우측에 있는 황톳길로 접어든다. 약수암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암릉길이 시작된다.
금전산은 계절에 상관없이 전국 각지에서 찾을 정도로 인기 있다. 키 작은 소나무에는 무게를 견디지 못할 만큼 서낭당 깃발처럼 산행표지기가 많이 걸려있다. 구능수는 쌀바위, 처사샘이라고도 불리는 자연 동굴로 커다란 암벽 아래에 있다. 입구는 좁지만 성인 2~3명이 들어앉을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처사가 이 동굴에서 수도를 했는데 석굴 구멍에서 하루 세끼 분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어느 날 손님 접대를 위해 과한 욕심을 부렸더니 그 후로는 쌀은 나오지 않고 쌀뜨물만 흘러 나왔다고 한다.
데크 계단 조망대에 올라서면 조망이 시원하게 터진다. 남쪽으로 오봉산, 호사산 줄기를 비롯해 북쪽으로 우산, 남산 등이 보이는 파노라마 풍경이다. 데크 계단 위에 있는 거대한 암벽은 투구바위다. 멀리서 보면 날카로운 매의 부리를 닮았다.
정상은 봉수대가 연상될 정도로 커다란 돌탑이 있다. 잡목들로 인해 시야가 막혀있어 약 20m 거리에 있는 헬기장에서 보는 조망이 더 좋다. 북쪽으로 조계산, 남서쪽으로 백이산, 존제산 등 호남정맥 줄기가 기운차게 지나간다. 남동쪽으로는 고흥 두방산을 비롯해 순천만의 섬들과 앵무산까지도 보인다.
정상에서 금강암으로 내려가는 급경사 하산길은 시야를 가리는 것이 전혀 없기에 멀리 낙안 벌판까지 막힘없는 풍광이다. 낙안 벌판에 둥실 떠 있는 배처럼 보이는 것이 낙안읍성이다. 임경업 장군이 현재의 규모로 쌓았다고 하며 600년 역사를 지녔다. 사적 30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성내에는 실제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낙안읍성 성벽 옆으로 ‘순천 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 보인다. 벌교 출신 한창기는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물’이란 잡지를 창간했고, 판소리와 우리 문화 보급에 앞장선 품격있는 선각자라는 평가다. 그가 평생 모은 6300여 점의 희귀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원효대·의상대 ‘영험한 기운’ 빼어난 조망처
7부 능선에 있는 금강암에 가까워지면 주변 경치가 확연히 달라진다. 기암괴석과 노송들이 어우러진 산수화다. 금강암은 작은 토굴같은 극락전 1채가 전부다. 5세기경 백제 위덕왕 때 검단선사가 창건한 이후 한때는 고승들의 흔적이 많은 관음도량이었지만 현재는 쇠락한 모습이다. 금강암에서 담장처럼 보이는 바위를 돌아가면 의상대다. 의상대는 거대한 암봉 위에 크고 작은 공기돌을 올려놓은 듯한 형상이다.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물부처 형상이 있고, 낙안벌판을 내려다 보고 있는 마애관음좌불상의 표정은 경외감이 들 정도다. 마애관음좌불상은 정으로 쪼은 투박함보다는 현대적인 느낌의 매끈한 조각이다.
왼쪽으로 우뚝 솟은 원효봉은 용의 등줄기처럼 기운차다. 한때 호남 최고의 기도 도량으로 손꼽히던 곳임을 실감케 하는 멋진 경치다. 금강암 아래쪽에 있는 통천문은 금강문이라고 불린다. 갈라진 바위 틈새를 지나는 커다란 석굴이다. 틈새가 커서 성인이 허리를 펴고 걸어도 될 정도다. 비가 오는 날이면 석벽을 타고 내리는 폭포가 장관이다. 하산길이 사납지만 나무계단과 돌계단이 촘촘히 놓여 있다. 뒤돌아보면 형제바위의 우람한 모습도 보인다. 우측 능선에 보이는 암릉들은 금빛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도열해 있는 것 같다. 성북마을 갈림길을 지나면 ‘사랑나무’를 만난다. 작은 소나무지만 보기에 따라 물소뿔처럼 보이기도 한다. 20분 정도면 낙안온천 입구다. 금둔사는 도로를 따라 3분 거리에 있다.
▲산행 길잡이
불재~약수암 갈림길~구능수~매바위~궁글재~정상~금강암~의상대~통천문~성북마을 갈림길~사랑나무~낙안온천 <총 5.6㎞, 3시간 30분 소요>
▲맛집
벌교읍의 대표적인 메뉴는 꼬막정식이다. 30여 곳이 성업중이며 꼬막정식 1인 2만 원~2만 5000원 한다. 벌교 빵지순례 1번지 ‘모리씨 빵가게’는 근대문화의 거리 금융조합 건물 건너편에 있다. 버터, 계란, 우유가 들어가지 않는 천연효모빵을 만드는 건강한 빵집으로 입소문 났다. 여 주인의 별명인 ‘모리’는 힌두어로 ‘새롭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주변 명소
낙악읍성과 붙어 있는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입장료 1000원, 벌교 출신 한창기 선생이 평생 모은 유물 6300여 점이 전시된 곳이다. 한창기는 광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 브리테니커 한국지사를 설립, 1976년 창간한 ‘뿌리깊은나무’는 획기적인 한글전용잡지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의 잡지였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 페간한 뒤, 1984년 ‘샘이깊은물’을 창간했다. 우리것, 우리 문화를 알리고 보급하는데 평생을 바친 시대의 선각자다.
글·사진= 김희순 山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