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원의 여의도 포커스] ‘병역면제 정권’의 외교-안보 폭주 후과(後果)

베트남 파병, 러시아 파병 (9 ·끝) ‘가치 외교’

2025-02-21     김대원 기자
사진 = 뉴시스

# 김연철 전 통일부장관은 한반도에서 아직 두 번째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로 서로를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는 남북한 군사력을 들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억지 구조에 세 가지 변화가 발생했다고 우려한다.

첫째, 전시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관리 능력이다. 남북이 ‘제한전쟁’을 벌였던 1968년과 달리 한반도가 미국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는 지적이다.

정전 체제 관리 책임이 있는 유엔사령부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대북 전단과 확성기 방송, 무인기 모두 정전협정 위반이자 유엔사 규정 위반인데 구경만 하고 있다는 것.

둘째, 전통 우파와 소위 ‘뉴라이트’의 차이다. 1968년엔 술 취한 박정희 대통령의 휴전선 돌파 명령을 말렸던 관료가 존재했으나 뉴라이트는 ‘전향의 열등감’ 때문인지 극단적 역사관을 갖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실 6ㆍ25 세대인 전통 우파는 전쟁에 극히 신중했으나 전후 세대인 뉴라이트는 쉽게 ‘전쟁 불사’를 외친다.

셋째, 북-러 관계의 차이다. 1968년 북한의 푸에블로호 나포 당시, 미국은 소련과 북한의 공모로 생각했으나 사실 소련은 몰랐다. 김일성이 1961년 맺은 ‘조-소 우호조약’의 자동 개입 조항을 거론하자 소련은 ‘해당 조약은 방어에 한정된다’고 선을 그었다.

“지금의 북-러 관계는 달라졌다. 북한은 러시아에 포탄, 노동력에 이어 용병을 제공했다. 양국의 군사 협력은 한반도를 신냉전 국면으로 전환시킬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반도가 진영 대결의 공간으로 변할 때, 우린 전쟁의 비극을 겪었다.”

# 1968년은 이념의 시대였다. 그럼에도 최소 피해로 최대 이익을 챙기려는 눈치싸움은 멈춘 적이 없다.

‘공산 침략자들을 무찌르기 위한 자유의 십자군’이나 ‘제국주의에 맞선 결연한 연대 투쟁’ 등은 명분이었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북베트남은 얽히고설킨 국제관계 속에서 자국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다.

김형민 전 SBS PD의 일침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최우선 과제는 국익을 ‘안전하게’ 챙기는 일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도자부터 냉정해야 한다. 60년 전 박정희와 김일성, 그리고 호찌민이 그랬듯.”

북한이 위장 파병된 보병의 핏값으로 군사기술을 얻어 온다면 김정은 입장에선 밑지지 않는 장사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러시아 파병을 통해 남한이 수십 년 전 베트남전 파병을 통해 취했던 경로를 모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전했다.

윤석열 정부는 어땠나. 60년 전 박정희 정권에 비해서도 너무 서투르고 단순했던 것 아닌가. 트럼프 당선 전,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 제공 가능성을 공공연히 피력한 것 등이 대표적 사례다.

그 조치가 앞으로 어떤 파장을 가져올 지 심도 있는 검토는 선행됐는가. 주요 수교국인 러시아를 저렇게 간단히 적으로 돌려도 되는 것인가.

지금은 ‘가치 외교’라는 번드르한 깃발을 흔들 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의 불씨와 파장이 한반도에 옮겨붙지 않도록 다각도의 대비를 해야 할 때 아닐까.

# 전 세계에서 자신 있게 가치 외교를 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이슬람 원리주의로 무장한 이란과 ‘체게바라 신화’ 쿠바도 그렇게는 못한다. 그 미국도 2017년 트럼프 집권 이후론 정파와 관계없이 ‘실리 외교’가 뚜렸하다.

그간 윤석열 정권 내에서도 주로 군 미필자들이 가치 외교를 강변했다는 전언이니 할 말이 없다. 이것이 집권 초 대통령실 1급 이상 군 면제자가 윤 대통령 포함 무려 20%나 되던 ‘병역면제 정권’의 민낯이다.

한소 수교 이후 30년간 소원했던 북-러관계가 군사동맹으로 복원된 배경엔 이들의 무모한 외교 폭주도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봐야한다. 윤 대통령과 변호사들이 헌재에서 언급한 중국 관련 부정선거 음모론도 우리 외교의 큰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가 선명한 가치 외교를 내세우는 동안 극찬을 보내온 미국과 일본. 심지어 그들도 ‘우리야 좋지만 한국 정부, 정말 이렇게까지 해도 괜찮을까’라며 염려했을지 모른다.

집권 후 이른바 ‘힘에 의한 평화’만 외쳐온 윤석열 정권의 외교·군사정책. 냉정한 복기와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 실리 외교의 끝판왕, 트럼프가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당황한 윤 대통령은 골프채를 잡는 등 부산하게 움직이더니 느닷없는 비상계엄 급발진으로 자폭 중이다.

대한민국 외교는 당연히 한미동맹이 근간이나 중, 러와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 남북대화도 우선 대북 전단과 쓰레기 풍선 중단부터 모색해 봐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그게 바로 전문 외교관들의 존재 이유 아닌가.

북한은 어떤 면에선 외교 하나로 근근이 버텨온 나라다. 민주화 이후 노태우 김대중 정부 정도 빼고 우리에게 의미 있는 외교라는 게 있었나.

현재의 국민의힘은 북방외교의 문을 연 노태우, 시진핑과 함께 천안문 망루에 서서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에 참석한 박근혜의 자취도 녹아있는 정당이다. 오히려 윤 대통령 그룹이 갑자기 끼어든 어설픈 변종 세력이다.

문제는 이들이 넋 놓고 있는 사이, 격변 중인 동북아 정세 속에서 우리만 패싱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자칫 김영삼 정부 때처럼 우리가 낸 판돈 위에서 북-미가 마주 앉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호구’(虎口)가 될 수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윤 대통령 측이 쏘아 올린 중국 관련 부정선거 음모론에 선을 긋기는커녕 오히려 ‘CCP(중국공산당) 아웃’ 손팻말이 나부끼는 반중 혐오 집회에 경쟁적으로 참석 중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외교를 희생시키는 집권당 정치인들 눈에는 묵묵히 중·러와의 대화를 이어가는 일본 정부는 보이지 않는 가 보다.

구치소에 있는 명태균 씨는 지난해 10월 “우리 대통령은 정치를 한 적이 없다. 다섯 살짜리 꼬마가 지금 총 들고 있는 격”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윤 대통령에겐 불행한 일이겠으나 그가 직무에서 배제된 것은 대한민국엔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비상계엄 후폭풍이 아무리 심대해도 그가 나머지 임기를 채우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엔 윤 대통령 고교 동문이나 아크로비스타 술친구 말고도 외교 안보 인재가 적지 않다. 급변 중인 국제정세에 대응하기 위해선 윤 대통령 주변에 있던 부류의 무능하고 위험한 자들이 다시 등장하게 해선 안 된다.

한반도에 지정학적 위기가 몰려오고 있다. 이번엔 19세기 말과 해방정국의 과오가 반복되면 안 된다. 최소한 한반도가 우크라이나처럼 강대국이 얽힌 전쟁터가 되게 할 순 없다. 여야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