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의 일과 만남, 삶의 큰 즐거움”
[드림이 만난 사람] 순회사서 정현화 씨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곳, 아이들 꿈 키우는 공간되길”
작은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리거나 읽는 곳을 넘어 책을 매개로 지역의 문화와 교육을 교류하는 사랑방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작은 도서관들이 운영비 부족과 이용률 저조 등으로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파견되는 작은 도서관 도우미가 ‘순회사서’다.
도서관에 머물며 매일 수많은 책을 정리하고, 어떤 책이 누구에게 필요할 지 고민하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꼭 맞는 책을 건네며 도서관을 찾는 이들에게 안식처를 내어 주는 사서. 정현화(55) 씨도 그중 한 명이다. 현재 광주 서구 작은 도서관 순회사서로 근무 중이다.
‘경력 단절’ 딛고 대학 전공 살려
정 씨는 지난 2018년부터 순회사서로 근무하며 광주의 여러 작은 도서관을 거쳤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도서관문화진흥원에서는 매년 순회사서들을 채용하고 있으며 정 사서도 매년 지원을 통해 광주 각 구 도서관을 돌며 근무했다. 현재는 서구 ‘꿈꾸는 터전 작은 도서관’과 ‘월광교회 작은 도서관’에서 번갈아 근무하고 있다.
그는 “공립 도서관은 지자체의 지원을 받지만 사립으로 운영되는 작은 도서관은 지원금이 많지 않아 운영이 쉽지 않다”면서 “사립 도서관에서 직원을 따로 고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보니 저 같은 순회사서들이 파견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사서는 작은 도서관 순회사서 일을 하기 이전부터 대학 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에서 사서 일을 해왔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책과의 인연이 시작돼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굉장히 좋아했었다. 아버지께서 책을 전집으로 사주셨었고 그래서 자연스레 책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영향으로 대학도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게 됐고 그때부터 도서관에서 일하게 됐다.”
결혼 후 두 자녀를 키우며 일을 손에서 놓아야 하기도 했지만 자녀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서 여유가 생기자 다시금 사서 일을 생각하게 됐다. 상록도서관에서 주말 근무를 시작하며 순회사서라는 일을 알게 됐고 그렇게 꾸준히 매년 지원해 일하고 있다.
정 사서는 “처음엔 순회사서라는게 어떤 일을 하는 건지 잘 몰랐지만 주말 근무가 아닌 주중, 작은 도서관에서 일한다고 하니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됐다”며 “경력단절 여성이었지만 운 좋게 전공했던 일을 하게 돼서 좋고 제 나이에 적성에 딱 맞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 아버지가 어렸을 때 책을 전집으로 사주셨던 게 이런 미래를 보시고 그러셨나 싶다”고 웃음 지었다.
“도서관 활성화, 다채로운 프로그램 중요”
그는 작은 도서관 사서 업무에 많은 흥미와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책 분야에 따라 책장을 정리하고, 도서관 이용자들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어떤 신간을 구입할 지 고민하는 그 모든 일들이 정 사서에겐 매일의 뜻깊은 일들이다.
“작년 한강 작가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많은 분들이 책을 찾으러 오시고 또 읽고 나서 어떠셨는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도 참 좋고 어떤 책을 읽었으면 좋겠냐고 물어보실 때 추천해드리는 것도 재미있다.”
혼자 근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가끔은 곤란할 때도 있지만 작은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며 찾은 즐거움엔 비할 바 아니다. 이러한 일들과 함께 작은 도서관을 채울 프로그램을 고민하는 것도 사서들의 몫이다.
정 사서는 작은 도서관의 활성화를 위해선 다채로운 독서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규모가 있는 도서관들 보다 작은 도서관의 여건이 훨씬 어려운 편이지만 지역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 가고 또 함께 즐길 수 있는 독서문화프로그램이 작은 도서관만이 가지는 무기다.
그는 “순회사서 사업에서 프로그램 운영비를 조금씩 주는데 저는 재료를 구입해 아이들과 만들기 프로그램을 주로 한다. 우산에 그림을 그리고 스티커를 붙이거나, 비누를 이용해 무언가를 만드는 것 등 아이들이 꼼지락꼼지락 간단히 만드는 프로그램을 참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은 도서관은 운영자의 역량에 맡겨지기도 하다 보니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할 지가 늘 고민이다. 또 작은 도서관에 얼마나 많은 인력이 충원돼 있는가, 운영자가 지역사회와 얼마나 연계하는 가도 프로그램 운영에 영향을 준다”며 “주민들부터 사서들까지 많은 분들의 열정적인 재능기부로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그게 도서관 활성화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광주 도서관 400여 곳에 순회사서 10명 남짓
매년 순회사서 사업이 진행되곤 있지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광주에도 400여 개의 작은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지만 10명 남짓한 순회사서들이 근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작은 도서관이라는 공간과 책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너무나도 좋기에, 그는 후에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도 가지고 있다.
정 사서는 “여러 도서관을 돌며 근무하다 보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일의 장점”이라며 “혼자 일해야 할 때도 있지만 마음이 잘 맞는 운영자와 합을 맞춰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도 즐겁고 관련된 사람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 그런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저도 좋은 사람이 돼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끝으로 “몇 년 전에 근무했던 곳에 정말 책을 좋아하던 어린 학생이 있었는데 ‘넌 꿈이 뭐야?’ 하고 물었더니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학원 가는 중간에 잠깐 책 몇 장이라도 읽고 가던 아이여서 기억에 많이 남는데, 작은 도서관은 가까운 곳에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으니 아이들이 언제라도 와서 책을 읽고 꿈을 키워가면 좋겠다”며 “작은 도서관이 아이들과 주민들이 오가는 사랑방으로 활용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유시연 기자 youni@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