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에서 성장하기”

[곰돌곰순의 귀촌일기] (104) 가르치고 배우는 일

2025-03-04     백청일, 오숙희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타인의 방. 문학동네.

 “선생님, 지난 주에 했던 ‘타인의 방’ 있잖아요? 제가 수업이 끝난 후에 좀 풀리지 않은 게 있어서, 선생님이 쓰셨다는 ‘백청일의 독서일기’ 들어가서 ‘타인의 방’ 찾아, 읽어 봤거든요?”

 올해 고 1이 되는 희수(가명). 마지막 수업이라 치킨을 시켜 먹으면서 나누는 여러 얘기 중 나온 말에 곰돌이 뿌듯해집니다.

 “그랬어? 어렵지는 않던?”

 “술술 읽히던데요. 궁금했던 게 풀리기도 하고, 잼있기도 하고. 근데, 독서일기를 쓰시는 동기가 뭐에요?”

 오호~, 제법입니다. 희수가 많이 성장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니, 매주 수업을 할 때마다 성장 정도가 눈에 보일 정도였지만, 이렇게 바로 묻기도 합니다.

 경험을 들어가며 이야기를 했는데,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논문처럼 학술적이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주관적인 느낌 중심의 아주 가벼운 글쓰기는 아닌. 달리 풀어보면, 가볍지 않은 대중적 글쓰기이면서, 생각거리가 많은 글쓰기.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독서일기를 쓰고 싶었다는 말에,

 “그게 느껴지던데요. 제가 들어간 김에 쭈욱, 살펴보면서, 여러 편을 읽어 봤거든요. 논문처럼 헤비하지도 않고, 간단한 소감이나 인상적인 장면 정도만 쓰는 여타의 독서일기들과는 많이 다르던데요. 그러면, 성공하신 거 같은데요.”

 ‘곰돌곰순의 귀촌일기’처럼, ‘독서일기’도,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길’을 개척해 보자는 차원의 글쓰기라, 늘 피드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방적인 글쓰기가 아니어야 하기에. 그런데 가르치고 있는 학생에게 피드백을 구체적으로 받는 건 처음이라, 고맙기도 하고, 기분이 좀 묘합니다.

2011년 훈희가 선물해준 ‘좀마삭줄 화분’. 어느새 열다섯 해가 흐르고 있다.

 ‘좀마삭줄 화분’에 얽힌 사연

 2011년 경 한 여대생(훈희, 가명)이 두 손에 ‘좀마삭줄’ 화분을 들고 학원을 방문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성인이 되었는데도 초등학교 시절의 얼굴을 바로 알아볼 수 있어서. 초 2학년 때 만나서 6학년까지 지도한 후, 보지 못했으니 10여 년 만이었습니다.

 미술심리치료 공부를 하고 있는 4학년 졸업반. 경쟁이 치열한 과이지만 전장(장학금)을 받고 다니고 있다고. 고 3 동생 입시 상담 때문에 방문했는데, 그 후 인연이 계속되어, 방학 때면 찾아와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하곤 했습니다.

 졸업하고, 직장을 구할 때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휴가를 얻어 광주 집에 내려올 때도 한 번씩 찾아왔더랬습니다. 잠시 쉬고 있을 때 대학원 진학을 권유했는데, 엄마에게 말씀드렸더니, 대학 장학금 모아놓은 통장을 주셨다며 감동했다고. 찾아올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했답니다.

 그리고 재작년 늦가을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며, 남자친구와 함께 인사드리고 싶다고 찾아와 셋이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식사하고 나오는데 남자친구 하는 말이 재미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훈희가 광주 내려갈 때마다 뵈었다는 얘기를 듣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된다고.

 훈희가 사가지고 온 좀마삭줄 화분이 벌써 열다섯 해가 되어갑니다. 분갈이를 해 주지 않았는데도, 생명력이 강합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줄기 뻗어가는 게 눈에 보이지 않은 곳까지 이릅니다. 뒤늦게 줄기들을 추스르면서 잘라내기도 하고, 다듬기도 하는데, 작지만 푸르른 이파리들을 볼 때마다 훈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가끔, 곰순이에게 말하곤 합니다, 좀마삭줄 화분을 보고 있으면, 훈희가 꼭 그러는 거 같애, 선생님, 잘하세요, 제가 지켜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곰순이 그러지요. 아이구, 진짜로, 그런가~, 훈희가 학생들 잘 가르치는지 감시병을 보냈네, 하면, 또 서로 웃곤 합니다.

 훈희는 알고 있을까요. 찾아올 때마다 곰돌이 얼마나 뿌듯한 마음이었는지. 스승이라며 찾아온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 마음을 소중하게 대하며, 더 발전될 수 있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다른 한편으로 진로와 고민과 사는 얘기들을 하며 웃고 즐기면서도, 곰돌이 자기 스스로를 얼마나 경계했는지. 이제, 세상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는 동등한 인격체들의 만남이기에 제자나 후배로 대하지 않기를. 어른이나 선생이라고 함부로 말하거나 대하지 않기를.

 훈희는 또 알고 있을까요. 이런 만남이 곰돌이에게 얼마나 깊은 성찰의 시간이 되고, 좀더 분발하게 만드는 힘이 되는지를. 당당하면서도, 결코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자고, 심장 아래에서부터 튀는 마음을, 꾹, 꾹, 눌러 다져가는지를.

학원 로비 창쪽에 있던 책꽂이를 연구실로 옮겼다.

 “지식보다 지혜, 성공보다 성장을”

 새봄맞이 학원 정리를 좀 했습니다. 로비에 있던, 학생들이 보는 책이 있는 책꽂이를 연구실로 들였습니다. 상담공간은 넓어 보이고, 연구실은 좀더 짜임이 있어 보입니다. 봄은 봄인가 봅니다. 딱히 설명할 길 없는, 무언가 해 보고 싶은 의욕이, 저 아래쪽에서, 막, 솟아나는 걸 보니.

 흔히 “지식보다 지혜를, 성공보다 성장을 추구하자!”, 라고 말합니다. 평균 수명도 높아진 데다 평생 교육도 중요해진 시대가 되기도 했으니. 어찌 보면, ‘지식’은 ‘지혜’의 밑거름이 되고, ‘성공’은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것도 같습니다.

 곰돌이도 늘 그런 생각을 한답니다. 어느 한순간의 성공이 아닌, 죽음에 이를 때까지, ‘앎’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말자고, 배움에 머뭇거리지 말자고. 그리고 그걸 늘 ‘함께’ 풀어가자고. 그때 비로소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거라고.

 지식은 혼자서도 획득할 수 있지만, 지혜는 ‘함께’ 할 때 얻어지지요. 성장이란, 자기 스스로 혼자만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거 같아도, 함께 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법이기도 하고. ‘함께’란, 관계를 맺을 때 가능하고, 그 관계 속에서 비로소 ‘나’를 알게 되고, ‘남’을 알게 되니, 그때 ‘함께’ 만들어가는 ‘세계’는 커져만 가겠지요.

 그래서 교육에서,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가르친다”, 라고 하는가 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 되기도 하고, 제자가 되기도 하고, 그렇게 모두 배움의 과정을 밟고 있는 거니.

 “배워서, 남 주자”는 말이 그래서 나왔나 봅니다. 배움의 성취가 수많은 사람의 노력의 결실이라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또 수많은 사람의 유무형의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 그 과정에서 각 개인의 처절한 노력과 혼이 깃들인 시간이 빛을 발하게 되고, 그렇게 얻어진 모든 것들이 시냇물이 더 넓은 강으로 흐르듯 다시 수많은 사람에게 흘러 들어가니, 이것이 바로 ‘배움의 세계’이자 ‘세계 그 자체’가 아닐지.

 마지막 수업을 하고 떠나 보낸 희수를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는 없습니다. 훈희처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우연하게 다시 만날 수도 있고, 많은 학생처럼 오랜 시간 못 볼 수도 있고, 어쩌면 평생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며 사는 거겠지요. 그럼에도 ‘함께’ 보낸 시간들이 여전히 ‘관계’ 속에 남아 있으니, 그 ‘관계 속에서 성장하기’는 멈추지 않겠지요. 우리 모두가 그러는 거처럼.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 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