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보다 팔천 봉 더 거느린 땅끝 금강산
[김희순의 호남의 명산] 해남 금강산(482.8m) 암릉미 뛰어난 만대산 연계, 남도밥상처럼 맛깔 산행
땅끝 해남의 대표적인 산이 두 개 있다. 명찰 대둔사(대흥사)를 안고 있는 두륜산(700m)과 등뼈 같은 암릉의 달마산(489m)이다. 그외엔 대체로 500고지 이하의 올망졸망한 크기의 산 들이 많다. 그중에 예부터 전통적인 명산으로 유명한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金剛山 1638m)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산이 해남에도 있다하니 호기심을 아니 가질 수 없다. 해남 금강산(金剛山 482,8m)이 대채 얼마나 아름답기에 그런 이름을 가졌을까? 더욱 당돌한 것은 좌우에 만대산(萬垈山 493m. 443m)을 두 개나 거느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垈)는 봉우리를 의미한다. 만대(萬垈)를 풀어보자면 1만 개의 봉우리고 2개를 안고 있으니 2만봉 이라는 뜻. 고성군 금강산 일만이천 봉보다 팔천 봉 더 많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해남사람들은 자랑한다. 해남 금강산은 화원지맥 첫머리에 있다. 팔을 벌려 능선들을 안고 있는 듯한 형세다. 땅끝기맥 덕룡산 첨봉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지는 화원지맥은 덕음산과 해남의 관문인 우슬재(牛膝峙 150m)를 거쳐 해남읍내를 감싸안는다. 만대산, 금강산, 옥매산을 거쳐 화원면 매월리 바닷가까지 도상거리 76.5km에 달한다.
금강산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뭘까? 그럴만한 내력을 찾아보지만, 막상 근사한 이름처럼 쭉쭉 뻗은 암릉이 있기는 고사하고 포물선 형태의 작은 육산에 불과하다. 암릉미로 치자면 오히려 만대산이 더 대접을 받는다. 다만 산 마루금에 올라서면 좌우로 보이는 수많은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어 탁 트인 풍광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다. 금강산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면 두륜산, 흑석산, 강진 주작산, 장흥 천관산, 진도 첨찰산까지 남도의 명산들이 죄다 보인다. 또 다른 매력은 1km에 가까운 금강계곡을 들 수 있다. 해남 팔경으로 사계절 계곡물이 넘치는 암반 계류는 큰 산에 있는 계곡 못지않다. 금강계곡을 해남천의 발원지로 보는 사람이 많다. 계곡을 타고 골짜기로 흘러내려 금강저수지로 합류해 해남천으로 흘러내린다. 해남의 젖줄이며 주민들에게는 여름철 최고의 휴식처다.
해남을 지킨 자존심, 금강산성
금강산은 해남 읍내의 뒷산, 즉 해남의 진산이다. 그래서 산을 오르는 길이 여럿 있지만 산을 전체적으로 잘 보려면 금강저수지 옆 해촌서원(海村書院)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다. 해촌서원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과 함께 3대 중국 견문록으로 꼽히는 <표해록>의 저자 최부를 비롯해 석천 임억령, 미암 유희춘, 귤정 윤구, 고산 윤선도, 취죽헌 박백응 등 해남과 인연이 있는 6명을 모신 사당으로 ‘육현사’라고도 한다. ‘미암일기’로 잘 알려진 미암 유희춘은 금남 최부의 외손자다.
해촌서원 앞에 있는 금강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2.5km의 둘레길도 있다. 주변에는 여러 가지 운동기구를 갖춘 공간이 있어 지역민들의 건강지킴이 구실을 한다. 금강저수지 끝부분에 공중화장실과 약수터가 있어서 산행 전에 몸을 추스를 수 있다. 이곳이 금강산으로 오르는 본격적인 들머리다. 우렁찬 계곡물 소리와 커다란 암반들로 인해 금강계곡 입구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아치형 구름다리를 건너면 임도 따라 100여 m 거리 왼쪽으로 우정봉(牛頂峯 309.5m) 들머리가 나온다. 초반부터 가파른 암릉이 버티고 있다. 오르는 도중에 잠깐씩 숨을 돌릴 수 있는 쉼터가 여럿 있고 정수리처럼 톡 튀어나온 우정봉 까지는 20여 분 바짝 올라야 한다. 우정봉에선 금강저수지와 해남읍내 너머 평야 지대와 고산 윤선도의 유적이 있는 덕음산도 가까이 보인다.
우정봉 이후부터는 커다란 기복 없이 평탄한 길의 연속이다. 푹신한 촉감의 낙엽길을 가다 보면 소나무와 굴참나무 경사면 따라 보춘화(춘란)가 지천이다. 우정봉 삼거리에서는 이정표를 잘 살펴야 한다. 자칫하면 금강샘 방향으로 들어설 수도 있다. 우정봉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돌아서면 500m 길이의 허물어진 성터를 만난다. 일부 지도에는 금강산성(金剛山城)을 죽산성(竹山城)으로 표기하기도 하지만 <동국여지승람> 등의 자료를 근거로 금강산성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는 지역 학자들의 주장이다. 13세기 중반 진도 용장산성과 함께 축조돼 14세기 왜구 침입기를 거쳐 해남 읍성과 함께 세종 16년 폐지될 때까지 입보용(入保用) 산성으로서 기능을 유지한 것으로 보여진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금강산성은 발을 디딜 때마다 달그락 달그락거려 걷기에는 상당히 불편하다. 너덜지대 돌무더기처럼 보이지만 해남 사람들이 오랜 세월 지켜온 산성이다. 단단했던 석성(石城)이 사나운 적들과 왜구는 막아냈지만 세월의 흐름을 막아내지는 못하는가 보다.
금강산성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100m 거리에 실질적인 정상이 있다. 한반도 모양의 작은 정상석이 있다. 삼각점을 정상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서쪽 통신탑 방향으로 조금 더 가야 한다. 정상엔 성인 30~40명 이상이 쉴 수 있는 널찍한 전망테크에서 국보급 조망을 즐길 수 있다. 높이에 비해 사방으로 시야가 트여있다. 만대산으로 가려면 다시 금강산 삼거리로 되돌아와서 헬기장 방향으로 들어선다. 금강재까지 1.9km 거리다. 중간에 은적사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고 다시 10여 분 진행하면 화원지맥으로 갈라지는 길이 있다. 완만한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되며 소사나무군락지를 끼고 계속 걷게 된다. 무덤의 상석이 열십자로 쪼개져 있는 곳을 조금 지나면 금강재다. 금강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기도 하다.
바위 경연장 펼쳐지는 만대산 암릉지대
금강재 갈림길 이후부터 만대산으로 접어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2km 가까이 굴참나무, 소사나무군락과 조릿대 길이 이어진다. 커다란 전망테크에 만대산 정상석이 있다. 전망데크 구석진 곳에 있는 정상석은 팥떡 한 덩이 놔둔 것처럼 볼품없다. 20여 분 거리에 있는 깃대봉을 지나면서부터 조망만큼은 압권이다. 흑석산을 비롯해 땅끝기맥의 덕룡산, 주작산, 두륜산, 달마산의 옹골찬 암릉들이 한눈에 보인다. 또한 탑바위, 바둑돌 바위, 식빵바위 등 유별난 모양의 바위들이 밀집해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헬기장에서는 전라남도학생교육원에서 설치한 이정표로 인해 잠시 혼동할 수 있다. 학생들 수련을 위해 설치한 이정표이므로 개의치 말고 능선을 따라 금강저수지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면 된다. 바위지대인 삼봉(三峯262.9m)은 가히 절경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해남읍내 전역을 완전하게 들여다보며 땅끝기맥 연봉들과 멀리 바다까지 아스라이 볼 수 있다. 목교를 지나 10분이면 금강저수지다. 다시 되돌아봐도 금강산처럼 화려한 맛은 없지만 그래도 담백하게 차린 남도의 밥상 같은 곳 임에 틀림없다.
▲산행 길잡이
*주차장-해촌서원(금강저수지)-금강계곡 입구-우정봉-금강산성터-금강산 정상-금강재-만대산정상-깃대봉-삼봉-금강저수지 입구-주차장(10.3km 4시30분)
▲맛집&볼거리
해남읍에서 두륜산 가는 길목에 닭 코스요리 전문점이 8곳 있다. 가슴살 회에서부터 매콤한 닭볶음, 닭곰탕, 백숙, 닭죽 등이 차례로 나온다. 코스요리 1마리(8만 원) 4명이 먹을 정도로 푸짐하다. 1975년 처음 문을 열었던 원조 장수통닭(061-535-1003)은 현재 리모델링 공사중, 돌고개 가든(061-537-7100) 도 30년 맛집이다. 인근에 해남 출신 고정희 시인, 김남주 시인 생가와 해창주조장이 있다.
글·사진= 김희순 山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