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원의 여의도 포커스] 21대 대선 ⓵국민의힘과 ‘반 이재명 파시즘’

보수의 재구성...'박근혜 탄핵' 후 8년 째 미완(未完)

2025-03-14     김대원 기자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 입구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 1980년대. 민주주의와 인권의 나라로 믿었던 미국이 전두환의 광주 진압 작전을 승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재야와 학생운동권은 좌절했다.

그들의 눈앞엔 폭력적인 5공 군사 정권이 있었고 그 뒤엔 최강국 미국이 있었다. 쓰레기차에 실려 망월동으로 간 소년들의 넋, 그들의 안식처는 어디에도 없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방황했다.

그 틈을 타 1953년 휴전 이후 남한에서 사라진 ML주의 혁명이론이 학생들의 지하서클로 퍼졌다. 80년대 중반엔 평양발 ‘주체사상’까지 대학가를 파고들었다.

1987년 6월 항쟁이 발생하고 몇 년 후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졌다. 절차적 민주화가 이뤄지고 현실 사회주의의 실체가 드러나자 운동권 이념 편향은 급속히 와해됐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80년대 대학가의 주체사상은 전두환 군사독재가 낳은 사생아”라고 정리했다.

당시 그들은 ‘법과 법원은 군사파쇼 및 부르주아 국가의 억압 기구’라고 인식했다. 그럼에도 법원에 쳐들어가 쌍욕을 해대며 특정 판사를 찾아다니거나 기물을 파손하진 않았다. 아니 감히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좌경 용공 세력'으로 불렸던 그들도 그랬다.

# 법원에 대한 공격이 1월 19일 새벽 발생한 서부지법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1958년 7월 ‘진보당 사건’으로 기소된 조봉암에게 재판부가 징역 5년과 일부 무죄를 선고하자, 반공 시위대 수백 명이 대법원에 난입했다. 이승만 정권에서 토지개혁을 성공시켰던 조봉암은 결국 건국 후 첫 사법살인 희생자가 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88년 12월엔 전남대와 조선대생 수백 명이 ‘전두환·이순자 구속’을 외치며 광주지법을 습격했다. 이듬해 6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중이던 이철규 학생이 변사체로 발견되자 조선대생 수백 명이 광주지법 옥상에서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쳤다. 그러나 이 두 사례는 서부지법에서 벌어진 집단 난동과 달리 단순 점거에 그쳤다.

기왕에도 판결에 불만을 가진 개인이 판사에게 상해를 가한 적은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다수의 폭도가 법원에 난입, 집기를 때려 부수고 행패를 부린 것은 헌정사 초유의 일이다.

문제는 이 같은 사법부에 대한 테러가 일부 군중의 일탈 차원이 아니라는 데 있다. 국민의힘은 체제 수호 의무가 있는 제도권 정당이다. 그럼에도 ‘공수처, 선관위, 헌법재판소를 때려 부숴야 한다’고 주장한 서천호 의원에 대해 ‘개인 발언’이라며 넘어갔다.

대통령 윤석열은 서울 구치소를 나서며 “저의 구속과 관련해 수감되어 있는 분들도 계신다”며 “조속히 석방이 되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도 변호인을 통해 “불법 탄핵 심판을 주도한 문형배·이미선·정계선을 처단하라”고 선동했다. 전광훈 목사는 “헌재가 딴짓을 하면 국민저항권을 발동해서 한 칼에 날려버릴 것”이라고 외친다.

윤 대통령과 일부 여당 정치인, 그리고 거리의 ‘자칭’ 목사들 발언은 레닌의 극좌 볼셰비즘과 히틀러의 극우 나치즘을 방불케 한다. 탄핵정국 들어 국민의힘은 종종 파시즘과 유사 ‘혁명 정당’의 모습마저 보인다.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도 비슷한 얘기를 했지만 현존 정당 중 이들과 멘탈리티가 가장 유사한 곳은 바로 ‘조선노동당’이다.

# 윤 대통령이 석방되면서 여권 내 차기 대권 구도도 흔들리고 있다.

김문수 장관이나 홍준표 시장, 원희룡 전 장관 등은 줄곧 탄핵을 반대해 왔다. 한동훈 전 대표와 오세훈 시장,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은 결이 다르다.

특히 비상계엄 사태가 터진 뒤 탄핵 찬성을 주도한 한 전 대표의 상징성은 크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석방은 그 한 전 대표와 오 시장 등마저 강경 지지층의 눈치를 보게 만들고 있다.

최종적으론 박빙 접전이 될 수 있는 이번 대선 역시 중도층 기류는 승패의 결정적 변수다. 윤 대통령은 그 성정상 탄핵이 인용되면 조만간 광화문에 나타나 마이크를 잡을 수 있다. 여권의 후보 선출과 선거 과정을 주도하려고도 할 것이다.

원로 언론인 조갑제의 말마따나 ‘나를 밟고 가라’는 게 아니라 ‘업고 가라’는 격이다. 국민의힘엔 재앙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돌아보면 대한민국 보수는 박세일 전 여의도연구원장이 2006년 ‘선진화론’을 주창할 때가 별의 순간, 변신의 최적기였던 것 같다. 산업화 민주화 다음으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지향점으로 그가 내놓은 담론이 바로 ‘선진화’였다.

이명박 정부 초기까지만 해도 보수가 우리 정치사의 새 패러다임을 열 것이란 기대가 적지 않았다. 보수는 그러나 ‘소고기 촛불’ 이후 오른쪽으로 급변침 하더니 박근혜라는 이미 유효기간이 끝난 ‘박정희 향수’를 내세웠다 탄핵을 당했다.

그리곤 또다시 전혀 검증 안 된 인물을 영입, 헛발질만 계속하다 2연속 탄핵을 자초 중이다. 보수의 재구성은 여전히 미완의 진행형이며 그 결과는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끝 모를 내리막과 민주당의 나태와 정체, 이로 인한 국운의 총체적 하락이다.

# 보수에게 미래는 보이는가? 서울 도심 천덕꾸러기였던 태극기부대가 대주주 자리를 꿰차려 하고 극우 유튜버들의 코인 팔이 소재였던 부정선거 음모론 서사가 맹위를 떨친다.

현직 대통령은 ‘국내 정치세력과 국제적 협력에 의한 총체적 부정선거’ 운운하고 나섰다. 최근엔 2030 세대의 ‘차이나 포비아’와 맞물린 실속 없는 혐중 정서까지 부추겨 우리 외교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본인이 그 시스템으로 당선됐고 선거관리 책임이 있음에도 총선 참패가 이해 안 된다며 군대를 동원한 사례가 세계 선거사에 또 있을까? 보수가 계엄과 탄핵, 그리고 부정선거에 대한 입장까지 다중 분열 상태인 것은 그 업보다.

조악한 부정선거론은 윤석열 개인의 일시적 위기 탈출 꼼수일 순 있으나 보수 장기 침체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부정선거인데 투표는 해서 뭐하겠는가.

보수가 낮이나 밤이나 ‘반 이재명 파시즘’에만 매달리는 이유는 이처럼 외통수에 몰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를 반대하는 것만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할 순 없다.

여당이 윤석열의 구심력을 뚫고 ‘계엄 반대, 탄핵 찬성’의 기본적 민주주의 양식을 가진 대선 후보를 내세울 수 있을까?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선 어쩌면 두 달여 후 선거 결과보다 이 질문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보수정당 국민의힘이 극우에 완전히 포획된 상태로 상시적 집권 가능성을 가진다? 그건 보수에도 대한민국에도 악몽이다. 보수 유권자들의 집단 지성에 가느다란 기대를 걸어본다.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