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만용 교수, 한국 과학과 과학 한국] 왕벚나무 원산지 논쟁과 벚꽃놀이

日 ‘잡종설’과 ‘제주도 기원설’의 간극

2025-03-25     문만용
2022년 봄. 벚꽃 명소인 제주시 전농로 왕벚꽃거리에 만개한 벚꽃들. 뉴스1

 지난주 때아닌 눈이 내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완연한 봄이 되었다. 전문 업체의 예보에 의하면 광주지역은 3월 26일경 벚꽃이 개화한다고 한다. 최근 몇 년간 벚꽃이 예상보다 일찍 피는 바람에 벚꽃이 없는 벚꽃축제를 열어야 했던 여러 지자체들이 올해는 겨울 한파로 개화 시기가 늦어지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간화국(看花局)이라는 이름 아래 진달래·살구꽃·복사꽃 등을 구경하는 풍습을 갖고 있었고, 진달래꽃을 넣어 만든 화전을 부쳐 먹는 화전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조상들의 꽃구경에 벚꽃놀이는 들어 있지 않았다. 팔만대장경 경판의 64%가 산벚나무일 정도로 우리도 여러 벚나무 종류를 갖고 있었지만 대체로 실용적 목적으로만 이용했다.

 벚꽃놀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왕벚나무(일본어로 소메이요시노)를 한반도에 식재하면서 시작했다. 인류학자 오누키 에미코는 “일본이 아시아 제국의 식민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시기에 벚꽃 묘목을 이식한 것은 침략지에 일본 제국령이라는 상징적 도장을 찍는 행위”였다고 주장했는데,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창경궁에 심어진 벚꽃을 보려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가수 김정구가 1938년 발표한 ‘앵화폭풍’이라는 노래는 “창경원 앵화꽃이 막 피어났네. 늙은이 젊은이 우굴우굴 우굴우굴”이라고 묘사했다.

 왕벚나무 자생지, 제주와 해남 

 소메이요시노라는 이름이 학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01년 도쿄대의 식물학자 마쯔무라가 Prunus yedoensis라는 학명으로 보고하면서부터이다. 이미 에도(도쿄)의 원예가들이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었지만, 식물학계에는 공식으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마쓰무라는 자신의 이름을 학명의 명명자로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자생지가 발견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많은 벚나무가 자라던 일본의 이즈반도를 자생지로 기록했다.

 1908년 제주에서 활동하던 에밀 타케 신부가 야생 벚나무를 발견하고, 그 표본을 독일의 분류학자 쾨네에게 보냈다. 이를 확인한 쾨네는 소메이요시노의 변종임을 확인해 학계에 알렸다. 타케 신부는 표본의 하나를 일본에 있던 동료에게도 보냈고, 이를 발견한 일본 학자 고이즈미는 “소메이요시노의 자생지는 제주다”라는 짧은 글을 발표했다. 당시 한반도 식물에 대한 최고 권위자였던 나카이는 이 표본을 확인하고 일본으로 어떻게 전파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소메이요시노가 맞는 것 같다고 했다.

 1916년 미국 식물학자 어니스트 윌슨은 소메이요시노가 오시마벚나무와 올벚나무의 잡종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일본 학계의 주목을 끌지 못했고, 1932년 고이즈미는 제주에서 직접 야생 벚꽃을 발견한 다음 “제주는 정말로 소메이요시노의 원산지이다”라는 주장의 논문을 발표했다. 나중에 “벚꽃 박사”라는 별명을 받았던 다케나카는 제주를 방문해서 야생 벚꽃을 확인한 다음 제주도가 소메이요시노의 자생지가 맞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여러 학자들이 일본에서 전체 벚꽃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흔한 소메이요시노의 원산지로 제주를 기재했다.

 그러나 1945년 이후 일본에서 소메이요시노의 잡종설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학자들은 에도에서 원예가가 개발했다거나 제주의 야생 벚꽃과 일본의 소메이요시노는 다른 분류군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다케나카도 1951년부터 오시마벚나무와 올벚나무의 잡종 실험을 시작했다. 오시마벚나무는 한국에 살지 않기에 이 잡종설은 소메이요시노가 제주와 무관함을 뜻한다. 일본 학자들이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던 잡종 개념이 전후 한국과의 관련을 끊는데 유용한 도구가 된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일본 학자들은 DNA 분석 등 새로운 연구 방법을 도입하여 소메이요시노의 잡종설을 뒷받침했고, 학명에 잡종을 뜻하는 ‘x’를 삽입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1962년 제주에서 또 다른 야생 벚나무가 발견되었고, 이때부터 왕벚나무라는 공식 이름이 붙었다. 몇년 뒤 해남 대둔산에서 새로운 야생 왕벚나무가 나타나면서 왕벚나무의 제주도 기원설은 더욱 강화되었다. 곧이어 한국 정부는 제주와 해남의 왕벚나무 자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밤 벚꽃놀이는 한국인이 즐기는 문화로 자리 잡았고, 이순신 장군 추모제가 열리던 진해에서는 군항제의 중심으로 벚꽃축제가 떠올랐다. 또한 1960년대 후반부터 재일 교포나 일본인들이 애향심이나 양국 간 우호 증진을 위해 왕벚나무를 기증했다. 일제 강점기에 소메이요시노가 ‘제국의 상징’으로 한반도에 들어왔다면 이제는 왕벚나무가 ‘우호의 증표’가 된 것이다. 비록 식재된 대부분의 왕벚나무가 일본에서 온 묘목에서 나왔지만, 한국인들은 왕벚나무의 제주도 기원설 덕분에 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줄일 수 있었다.

 ‘제국의 상징’서 ‘우호의 증표’로

 하지만 2007년 4명의 한국 학자가 엽록체 DNA 분석 결과 제주도 자생 왕벚나무와 소메이요시노는 다른 분류군일 가능성이 높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후 여러 연구가 발표되었고, 2018년 왕벚나무의 유전체를 완전하게 해독한 결과 자생 왕벚나무와 도쿄와 워싱턴에 있는 소메이요시노는 뚜렷하게 구분된다고 결론내렸다. 이에 따라 국립수목원이 운영하는 국가표준식물목록은 기존 왕벚나무와 달리 제주도에서 발견된 자생 왕벚나무에 제주왕벚나무라고 별도의 이름을 붙여 두 식물이 다른 분류군이라고 인정했다. 물론 이러한 결론에 대해 동의하지 않은 일부의 의견도 아직은 존재한다.

 사실 식물의 원산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도 아니며, 쉽게 밝혀지지도 않는다. 무궁화의 학명은 Hibiscus syriacus로, 원산지로 여겨진 시리아가 학명에 들어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무궁화가 국화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이와 달리 왕벚나무는 일본에서 각별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벚꽃놀이라는 문화와도 관련이 있어서 유독 주목을 받았다. 일본 학자들이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1950년대 들어 잡종설을 주장하게 된 배경이나 역으로 한국에서는 상당 기간 제주도 기원설이 주장되었던 기저에는 그러한 영향이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일찍부터 연구 샘플 공유 등 공동연구를 시작했다면 왕벚나무의 제주도 기원설은 훨씬 일찍 마무리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식민 통치를 경험한 양국 사이에 그러한 협력관계는 쉽지 않았다. 이는 과학기술 연구에서 국제협력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올해도 왕벚나무는 흐드러지게 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은 왕벚나무의 제주도 기원과 상관없이 벚꽃놀이를 즐길 것이다. 이미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된 벚꽃축제를 논란이 되었던 과학적·역사적 근거에 얽매여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일본과 맺어졌던 질곡의 역사는 바꿀 수 없지만 지금의 문화는 우리 손으로 가꾸고 새로운 의미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만용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