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보림사와 천관사

[역사 속 전라도] 전라도사찰 특집㉒

2025-03-28     서일환
장흥 보림사 전경. 장흥군 제공

 장흥군(長興郡)은 전라남도 남부에 있는 군으로 광화문의 정남쪽의 나루인 정남진(正南津)이 있다. 원삼국시대에는 마한에 속했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했다. 신라 때는 보성군에 속했고 고려 때는 영암군에 속했다. 고려 인종 때 공예왕후 임 씨의 고향이라 하여 길이(長) 흥하라(興)는 뜻으로 ‘장흥(長興)’으로 명명하고 장흥부(長興府)로 승격됐다. 공예왕후는 인종의 왕후이자 의종, 명종, 신종의 생모이다.

 장흥부는 여말선초에 왜구의 침입으로 보성군으로 주민 이동했다. 조선 초에 장흥도호부(長興都護府)로 승격했다. 조선 말에 나주부 장흥군에서 전라남도 장흥군으로 변경됐다. 장흥읍, 관산읍, 대덕읍을 비롯해 3읍 7면에 4만여 명이 거주한다. 영암에서 발원한 탐진강은 다목적댐인 장흥댐에서 머물다가 강진만으로 흐른다.

 보림사, 구산선문의 가지산파 개창

 보림사(寶林寺)는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가지산 계곡에 있는 사찰로 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의 말사이다. 신라 헌안왕 때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이 초암을 대가람으로 증축하고 가지산파(迦智山派)를 개창했다.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가지산파는 제1세 도의, 제2세 염거, 제3세 체징을 개조로 삼았다.

 보림사는 인도·중국·한국의 동양 삼(三) 보림의 하나로 한국에 참선수행으로 깨달음을 얻는 선종(禪宗)이 가장 먼저 정착한 천년고찰이다.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쇠락했고 한국전쟁 당시 토벌대에 의해 많은 피해를 보았다. 보림사에는 삼층석탑과 보조선사탑 등 국보 2점과 보물 8점이 보존되고 있다.

 천관사(天冠寺)는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농안리 천관산 중턱에 있는 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의 말사이다. 신라 무열왕 때 통령화상(通靈和尙)이 창건하여 천관보살(天冠菩薩)을 모셨다 하여 천관사라고 하였다. 여말선초에 왜구의 침입으로 피해가 많았고 광해군 때 숭유억불 정책으로 폐사되어 명맥만 유지해왔다.

 천관사, 천자의 면류관 같은 천관산에

 천관산(天冠山)은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의 하나이다. 마치 천자(天子)의 화려한 면류관과 같아 이름이 붙어졌고 명승 제119호로 지정됐다. 신라 명장 김유신(金庾信)과 사랑한 천관녀(天官女)가 숨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천관산문학공원’이 조성됐고 ‘천관산 억새제’를 개최한다.

 만수사(萬壽祠)는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 만년리에 있는 사당으로 한반도에 주자학을 최초로 전파한 안향(安珦)을 배향했다. 만수사 경내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독립운동가 안중근을 영정과 위패를 모신 해동사(海東祠)가 있다. ‘海東明月(해동명월)’은 동쪽을 밝히는 밝은 달이 우리나라를 밝게 비춘다는 뜻이다.

 장흥군은 조선 8대 문장가였던 백광홍, 호남 실학파의 대가인 위규백,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부친인 한승원을 비롯해 이청준, 송기숙, 이승우 등을 배출하여 ‘문인의향’으로 불린다. 지리적 표시제로 등록된 수산물 장흥 키조개와 임산물 장흥 표고버섯에 장흥 한우를 더하여 장흥 ‘한우삼합’이 유명하다.

저자 서일환.

 서일환 언론학 박사, 행복한요양병원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