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원의 여의도 포커스] 21대 대선 ⓶이재명의 ‘권력의지’ 그 종착점은?

공직선거법 항소심 무죄...조기 대선 시 최대 걸림돌 제거

2025-03-28     김대원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항소심이 무죄로 뒤집혔다.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문득 지난 2016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당시 광주의 한 매체에서 국회를 출입하고 있었는데, 성남시장인가 하는 분이 SNS인 ‘트위터’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언론이 인용하든 말든 정국 현안에 대한 코멘트를 꾸준히 올렸다.

 사실 기초단체장의 중앙정치 발언에 주목하는 언론은 별로 없다. 굳이 그런 언행을 하는 단체장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뭔가를 계속 얘기했다. 내용을 들여다보니 소재와 수위가 독특했다. 그렇게 해야 언론이 가십이라도 다뤄줄 것이기에 그랬을까.

 본사에 성남시장 인터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가 광주·전남 출신도 아니고, 특별한 인연도 없지만 왠지 의미 있는 기사가 나올 것 같은 느낌에서였다.

 편집국의 허락을 얻은 후 일단 성남시에 연락은 했으나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일정에 쫓기는 단체장이 전국 단위 언론도, 경인 지역 매체도 아닌 곳에 곁을 내줄 가능성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오후 바로 연락이 왔다.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좀 놀랐다.

 간단한 질문 요지를 보내겠다고 하니, 그냥 진행하자는 것이다. 이례적이었다. 1988년 13대 국회 이래 수백 명의 정치인과 인터뷰를 해왔으나 기자 쪽이 아닌 인터뷰 대상자 스스로 사전 질문지가 필요 없다는 경우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 약속한 일시에 맞춰 시청에 도착했다. 시장실 벽은 투명유리였다.

 정치 현안과 복지정책, 지방자치, 남북문제 등 이런저런 주제로 두 시간여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런데 그의 답변은 막힘이 없었다. 달변에 논리가 정연하고 선명했다.

 질문 요지도 없던 인터뷰를 소화하는 그의 임기응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매니아들이 나올만했다. 그중 5.18 관련 언급은 지금도 기억난다.

 “대학 진학 전까지 광주항쟁은 폭도들의 반란으로 알았습니다. 나중에 진실을 접하고 영령들과 광주 시민들에게 얼마나 죄책감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나만 생각하던 이기적 청년 이재명이 다시 태어난 것이죠. 그래서 제 ‘육체적 어머니’는 안동이고 ‘정치적 사회적 어머니’는 광주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후 광주 매체 인터뷰에 선뜻 응한 이유를 물었다.

 “변방 사또 얘기를 누가 들어줍니까. 그래서 SNS를 좀 하는데… 아무래도 수도권 외엔 잘 전파되지 않더군요. 우리 정치에서 지역, 특히 호남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때 알았다. 그의 목표는 확실히 경기지사 너머에 있다는 것을.

 해당 인터뷰와 ‘이재명’이라는 이름 석 자는 지역사회에서 회자됐다. 다른 정치인들에겐 좀체 들을 수 없던 문제의식과 표현 때문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그 기사는 ‘조회 수 1위’를 한참 유지했고 다소 뜬금없는 기획을 한 당사자로서 본사에도 면을 세울 수 있었다.

 ‘오비이락’이었겠으나 그의 전국적 지지율도 인터뷰 게재 얼마 안 가 적지 않게 올랐다.

 

 # 이후 시간이 흘렀고 그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넘어질 듯 넘어질 듯하다 살아나는 이재명. 그럴 때마다 표출되는 극단의 호오 감정을 지켜보며 당시 인터뷰에서 보인 그의 꼼꼼함과 집요함이 생각나곤 했다.

 그는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까지 가서 뒤집었다. 2023년엔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는데 법원에서 구속 영장이 기각됐다. 지난해 위증교사 사건도 무죄 선고를 받았다.

 삶의 궤적은 다르지만 간난신고(艱難辛苦),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유권자들로부터 격정적 지지와 극단적 혐오를 동시에 받는 모습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방불케 한다.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에 의해 일본에서 납치돼 현해탄에 수장되기 직전, 미국의 개입으로 목숨을 구한 김대중의 일화다.

 ‘크리스찬 아카데미’를 만들어 유신독재에 저항했던 고 강원용 목사는 사지에서 돌아온 김대중의 전화를 받는다. 좀 찾아뵙겠다는 것이다. “아 이 사람이 드디어 정치를 그만두려는 것이구나. 하기야 어느 누가 저 꼴을 당하고도 정치를 계속하고 싶을까.”

 그러나 김대중은 천만뜻밖의 말을 꺼낸다. “목사님, 저는 반드시 이 정권을 끝장내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말문이 막힌 강 목사는 그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느냐는 표정으로.

 보통의 정치인 같으면 벌써 포기할 법한데 김대중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재명도 정말 끈질기게 버텨왔다. 그의 이 같은 무서울 정도의 집념은 어떤 유권자들에겐 자기 동일시와 열광을, 또 다른 유권자들에겐 경멸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기어이 21대 대선의 상수(常數)가 된 이재명의 정치 인생 종착지는 과연 어디쯤일까.

 #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바로 대선 정국이다.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이 대표에 대한 여러 재판 중 이번 선거법 사건은 대선 전 대법원판결 가능성이 있던 유일한 건이었다. 혹시 파기 환송되더라도 다시 확정판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사실상 이 대표를 옥죄던 최대 걸림돌이 제거된 것이다.

 야 성향 평론가들은 “애초에 낙선자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이처럼 집요하게 수사하고 기소한 것 자체가 정치 보복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명 피선거권 박탈을 기대하며 대통령 탄핵 선고가 최대한 늦춰지길 바랐던 여권은 낙심 당황하고 있다. 어찌보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보다 ‘이재명 악마화’와 ‘정치의 사법화’, 그리고 아스팔트 태극기부대에 기댄 업보라고도 할 수 있다.

 한 보수 매체 칼럼은 “탄핵 반대층이 전면적인 헌재 불복 운동에 들어가고 여기에 윤 대통령이 가세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국민의힘은 대선 후보 경선조차 정상적으로 치르지 못할 수 있고, 치른다 해도 지지율 상승의 컨벤션 효과는 힘들어질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극우 태극기부대와 그에 부화뇌동하는 적지 않은 여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의 기각 혹은 각하로 윤석열 대통령이 귀환하기만을 학수고대하는 것일까.

 ‘버거 보살’ 노상원의 수첩에 적혀있던, 이재명과 한동훈에 이어 차범근까지 제거 대상으로 거론된 비상계엄. 아무리 이재명이 밉더라도 그 비상계엄의 최초 발안자이자 최고 책임자인 ‘뒤끝 작렬’ 윤 대통령의 복귀를 원한다는 것인가? 진심으로?

 그것이 ‘이재명 집권’을 막을 수 있는, 80여년 전 나치의 표현을 빌면 소위 ‘최종 해결책’이라고 여기는 듯한데 우리 사회도 참 다양한 이들이 공존하는 것 같다.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