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마케팅 이야기] 변화에 실패하면 도태한다
‘마케팅 마이오피아’ 기업의 성공과 실패 갈림길
제록스(Xerox)라는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제록스가 복사기, 복사 그 자체를 뜻하는 보통명사가 될 정도로 유명하다. 한때 인쇄 산업의 선구기업으로서 오랜 기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아왔으며 꾸준히 성장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기술력과 자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록스는 이러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결국 설립 115년만에 회사를 매각한다. 기존 복사기 기술에만 집중한 반면, 디지털 인쇄 및 문서 관리 솔루션에 대한 수요 증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자사의 제품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고객의 니즈와 시장 트렌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변화하는 시장에서 뒤처지게 된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요구가 달라질 때, 어떤 기업이든 변화에 적응하고 그에 맞게 운영할 수 있도록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록스는 엄청난 기회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수익을 내고 있는 사업에 집중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제록스의 경쟁력은 점점 약화되었다.
제록스와는 상반된 사례로는 스타벅스를 들 수 있다. 스타벅스의 경우는 자신의 비즈니스 영역을 단순하게 ‘커피 판매’로 한정하지 않고 ‘휴식과 편안함을 제공하는 서비스 공간’으로 넓게 정의하였다. 스타벅스의 초기 전략도 경쟁 상대는 영화관·도서관 등 편안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모든 공간으로 정했다. 단순한 커피만을 판매하는 커피 전문점이 아니라 집이나 직장보다 더 자유롭고 편안한 공간, 즉 제3의 공간으로 설정하였다.
제록스는 ‘마케팅 마이오피아(Marketing Myopia)’에 빠져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반면에 스타벅스는 마케팅 마이오피아에 함몰되기 않고 성공한 사례이다.
마케팅 마이오피아는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는, 이른바 근시안(myopia)적 마케팅을 일컫는 용어로, 1975년 테오도르 레빗(Theodore Levitt) 하버드대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마케팅 마이오피아는 흔히 잘 나가는 기업, 전성기의 브랜드에서 발생한다. 스스로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지나치게 맹신한 나머지 고객의 진정한 니즈를 간과하기 때문이다.
‘고객 니즈’ 제록스와 스타벅스의 차이
마케팅 마이오피아로 인해 크게 실패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철도회사이다. 1970년대 당시 미국 철도회사들은 승객과 화물에 대한 수송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운송업 (Transportation Business)으로 보지 않고 철도업 (Railroad Business)으로만 국한해 자동차나 항공기와 같은 다른 교통수단에 고객을 뺏겨 위기를 맞이한다. 고객 지향의 ‘운송 (Transportation)’이 아니라 메이커 입장만 강조하는 ‘철도 (Railroad)’ 지향으로 사업 방향을 잘못 잡아 변화하는 고객의 니즈를 놓치게 된 것이다. 이처럼 근시안적 시각을 가진 조직 또는 기업은 오래갈 수 없다. 마케팅 마이오피아에서 탈피해 미래시장에 주목하고 기존 사업 영역을 넘어 새로운 분야로 확장을 모색해야 한다.
소니는 워크맨 성공에 안주하며 디지털 음악 시장 변화를 간과했다. 자체 포맷(ATRAC)과 폐쇄적 시스템을 고집했다. 반면 애플은 MP3와 iTunes를 활용해 편리한 디지털 음악 환경을 제공하며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다. 결국, 소니는 변화하는 소비자 니즈를 반영하지 못해 아이팟에 밀려났다.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필름회사로 좁게 정의했다. 머뭇거리는 사이 소니와 캐논같은 경쟁사들이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빠르게 진출했다. 코닥은 뒤늦게 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이미 경쟁사들이 시장을 장악한 후였고 코닥의 매출은 급격히 하락했다.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드는 시점에 고객들이 원하는 스마트한 연결성이라는 핵심가치를 놓치고 말았다. 결국은 스마트폰 시장을 삼성과 애플에게 내주고 말았다. 근시안적인 관점과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이 기업을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제품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마케팅 마이오피아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는 고무적인 한국발 성공 사례가 있다. 글로벌 스타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로 잘 알려진 ‘하이브‘이다. 하이브는 연예인을 발굴, 육성하는 연예 기획사를 넘어 솔루션과 플랫폼까지 확보해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있다. ‘연예 기획사’라고 하는 좁은 개념의 비즈니스를 규정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 비즈니스 방향을 재정립한 것이다. 미래를 바라보며 제품 중심에서 벗어나 시장과 소비자를 중심으로 해서 탄생한 하이브의 비즈니스 전략이다. 이로써 글로벌 음악시장의 주도권을 우리나라가 가져올 수는 가능성을 열었다. 앞으로는 AI 기술과의 융합,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라이브 공연 등의 새로운 시도와 서비스를 통해 케이팝 업계를 지속적으로 선도할 것으로 기대한다.
마케팅 마이오피아는 비즈니스 세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개인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다. 삶이 재미없고 생산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인생의 마케팅 마이오피아의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들도 기존의 삶과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이 자극을 주는 목표와 삶의 원동력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기업에서나 인생에서나 근시안적인 시각으로는 그 생명력이 오래 가지 못한다.
‘Great civilizations are not murdered. They commit suicide (위대한 문명은 살해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살한다)’는 역사학사 토인비 (Arnold Toynbee)의 어록이다. 마케팅 마이오피아는 토인비의 어록과 맥락을 같이 한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기존 체제와 전통을 고수하다가는 몰락한다. 과거의 성공에 취해 혁신을 멈추고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된다. 기업이건 사람이건 미래를 예상하지 못하고 코앞에 닥친 상황만 고려하면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기본에 충실하고 원점으로 돌아가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양경렬(Yang Gyung Yeol)
나고야 상과대학 (NUCB) 마케팅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