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아찔, 그 설렘 잊을 수 없어
[김영선 박사의 남도 풀꽃나무] (70)기암절벽서도 촛불 밝혀라, 석곡 바위 틈에 뿌리 내려 붙여진 이름
신안군 흑산면 영산도는 육지에서 멀기도 먼 섬이다. 목포에서 84㎞, 진도에서 60.4㎞ 떨어져 있고 대흑산도·소흑산도·대둔도(大屯島)· 다물도(多物島)·대장도(大長島) 등과 함께 흑산군도를 이루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아름다운 섬이다. 이런 외딴 곳에서만 멸종위기종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안타깝고 애석하기만 하다.
석곡을 만나기 위해 이장님과 지역주민의 안내를 받아 운무가 낀 바위를 따라 절벽을 내려가는 길이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흑염소가 다니는 좁은 길을 몸을 낮춰 내려갔다. 정신없이 길을 따라가다 보니, 파도 소리가 들리는 절벽 아래에 다다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석곡은 기암절벽 사이에서 촛불처럼 소나무와 돈나무 사이에서 건강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꽃향기에 취해 운무가 걷히는 줄도 몰랐다. 운무가 걷히고 나서야 그곳이 깎아지른 절벽 위라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영산도 바다 경관은 장관이었지만, 그 절경만큼이나 첫 만남은 아찔했고, 그 순간의 설렘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다.
석곡은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석란’이라고 부리며, 줄기에 마디들이 대나무처럼 생겨 ‘죽란’이라고도 부른다. 난초과에 속하는 이 식물은 극히 일부지역에서만 자생하며, 멸종위기식물(Ⅱ급)로 한국적색목록(위기(EN)종)에 등재돼 있다. 또한 식물구계학적 특정식물 Ⅴ등급으로 매우 희귀한 지역에만 분포하는 특성이 있는 식물이다. 한국에서는 제주도와 전라도 지역에 자생한다.
생태적 특징은 상록성 여러해살이풀이며 바위나 나무에 붙어사는 착생식물이다. 잎은 2~3년 살며, 어긋나고, 짙은 녹색, 윤기가 있다. 잎이 떨어진 다음 3년째에 꽃을 피운다. 꽃은 2년 전에 나온 줄기 끝에 1~2개씩 달리며, 흰색 또는 연한 홍색, 향기가 좋다. 뿌리줄기는 짧고, 많은 뿌리가 나온다. 줄기는 녹갈색이며, 높이 10~30cm이다. 바위나 나무에 자생하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영산도는 흑산도로부터 약 2km 떨어진 작은 섬으로 마을 주민들 외에는 거의 외부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영산도의 석곡은 40여 년 전에는 바위에 많은 양의 부처손과 석곡이 분포했다는 지역주민들의 말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석곡의 생육지는 사람들 손길이 미칠 수 없는 절벽에 내몰린 개체들만 확인될 뿐이다.
지역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영산도에서 석곡 채취는 자연자원의 가치와 보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시절, 섬 주민들의 손에 의해 남획됐다고 한다. 이후 영산도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게 되면서 지역주민들은 석곡을 포함해 영산도 자연자원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집에서 키우던 석곡을 마을 선착장의 바위 절벽에 심어 복원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영산도는 국립공원의 명품 마을이자, 환경부의 생태관광마을로 거듭날 수 있었다.
영산도 주민들은 풀 한 포기, 돌 한 개라도 함부로 가져가지 않도록 서로 지키며 자연을 보호하고 있다. 그 덕분에 영산도 지역주민 전체가 지킴이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 마을의 생태자원을 지켜내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 경제도 활성화되고 있다. 주민들 스스로가 자원을 지키며 환경을 보존하는 모습을 보면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석곡과 같은 자생식물의 중요한 이유도 잘 이해하고 있다. 영산도를 포함한 남부 지역에서 자생하는 아름다운 식물로, 그 희귀성과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자연을 대표하는 중요한 존재라는 점. 과거 남획과 환경 변화로 위기를 겪었지만, 지역주민들의 지속적인 노력 덕분에 다시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되찾았다는 점 등.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값진 일이었다. 이와 같은 복원 작업은 단순히 한 식물의 보존을 넘어서, 지역의 생태계를 보호하고 주민들에게 자연을 지키는 데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영산도의 생태관광은 석곡을 비롯한 자연자원 보호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이루는 중요한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관광객들에게 지역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전달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하루 관광을 중심으로 자연을 직접 체험하고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러한 방안을 통해 외부인들의 방문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며, 자연자원의 보호와 관광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결국, 석곡과 같은 희귀식물의 보존 노력은 단순한 식물 보호를 넘어서, 지역주민들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드는 과정이다. 영산도의 석곡 보전사례는 자연과 인간이 상생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며, 향후 많은 사람들이 이 섬의 아름다움과 자연을 보호하는 데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 문헌
https://species.nibr.go.kr/index.do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http://www.nature.go.kr/kpni/index.do/ 국가표준식물목록
글·사진= 김영선
환경생태학 박사
광주전남녹색연합 상임대표
한국환경생태학회 부회장
부산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