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계엄 시대, 이성의 절규
이웃집 아주머니가 악마와 성관계를 맺고 아이를 잡아먹고, 병을 퍼뜨린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가 10만 명, 화형 등 실제 목숨을 잃은 이는 5만 명에 이르렀다. 1400년~1775년 사이 유럽과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벌어진 마녀재판 이야기다.
교회 시대, 마녀재판은 한 사람의 영혼의 죄를 단죄하는, 나름 신성한 의식이어서 법적 절차가 명확했고 기록도 철저히 남겼다. 너무 위중하고 밝혀내기 어려우므로 ‘예외적 범죄’로 취급해 고문이 허용됐다는 게 비극의 씨앗이었다. 고문을 못 견뎌 스스로 마녀라고 자백하고, 이웃집 누군가를 다시 마녀로 지목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간 사냥이 지속됐다. 근대적 사법 체계가 전근대적인 야만의 도구로 전락한 유럽 문명의 잔혹사다.
1789년 ‘자유·평등·박애’의 보편 인권을 주창한 혁명의 나라 프랑스, 100여 년 뒤 1894년 그 이념에 배치되는 사법 파동을 겪었다. 드레퓌스 사건이다. 프랑스 육군 참모본부 소속 드레퓌스 대위가 ‘정보를 적국인 독일에 넘기려 했다’는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건데, 증거는 서류상 필체가 비슷하다는 것뿐이었다. 드레퓌스가 유대인이어서 희생양 삼기에 적합한 조건이기도 했다.
군사법원은 비공개 재판을 열어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그를 외딴섬으로 유배보냈다. 몇 년 뒤 진짜 스파이가 드러났지만 군부와 법원은 자신들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법이 방기한 진실, 프랑스는 다시 재판을 할 것인가를 놓고 내전에 가까운 혼란에 휩싸였다.
진실의 행진,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야만의 시대, 이성의 절규가 왜 없었겠는가?
마녀사냥을 종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물 중 프리드리히 슈페가 있다. 고문을 비판하는 ‘범죄의 담보’를 써 허구와 날조를 지적했다.
“왜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마녀와 마법사를 찾으러 다녀야 하지요? 이봐요 판사님들 어디 가면 그런 사람이 많은지 알려드리죠. 수도회, 예수회 같은 곳에 가서 수사들을 죄다 잡아다가 고문하세요. 자백할 겁니다. … 만일 더 원하신다면 제가 당신을 고문할 테니 당신도 저를 고문하세요. …이로써 우리 모두는 마녀가 되는 겁니다.”(‘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중)
이 같은 이성 회복에 기반해 마녀사냥을 권능적으로 끝낸 건 사법 시스템이었다. 지방법원의 마녀 혐의 유죄 판결을 고등법원이 무죄로 바로잡으면서 광기가 진정됐다.
드레퓌스를 무죄로 구한 것도 이성의 절규였고, 이를 담아낸 언론의 힘이었다.
프랑스 저명 작가 중 한 명인 에밀 졸라가 1898년 신문에 발표한 그 유명한 ‘나는 고발한다’가 대표적이다. 그는 드레퓌스를 범인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려 한 장군들과 군사재판을 꾸짖었다.
“… 진실이 행진하고 있으며 아무도 그 길을 막을 수 없다. 진실이 땅속에 묻히면 자라나 더 무서운 폭발력을 축적한다. 이것이 폭발하는 날에는 세상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 것이다.”
파장은 컸다. 프랑스는 드레퓌스의 유죄를 주장하는 가톨릭교회·군부·보수 언론과 무죄를 주장한 개신교·지식인·소수 언론으로 분열돼 대립이 극에 달했다. 신변 위협을 느낀 에밀 졸라는 영국으로 망명했다가 1899년 다시 귀국해 사건이 종식될 때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1899년 고등법원이 재심을 결정하고, 1906년 대법원이 마침내 드레퓌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12·3 비상계엄-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사태로 사상 초유의 혼란에 휩싸였던 우리나라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이는 역사다. 탄핵 반대 측에서 ‘부정 선거론’ ‘중국인 간첩설’ ‘법원 습격’ 등 음모론과 비이성적 광기가 난무한 가운데, 광장에 나와 “민주주의 회복”을 부르짖은 시민들 외침은 이성의 절규에 다름 아니었다.
이처럼 나라가 두 동강 난 채로 122일, 혼란은 사법적 판단으로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헌법재판소가 인용한 대통령 파면, 퇴행하는 민주주의를 멈춰 세운 보루라 할만하다.
이번 헌재의 결정문엔 이성의 절규에 화답한 문장이 곳곳이다.
“…국회가 제 기능을 충실히 실현할 수 없도록 하는 것으로서 대의민주주의와 권력 분립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고….”
“…헌법 제정권자인 국민은 우리의 헌정사에서 다시는 군의 정치 개입을 반복하지 않고자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에 명시하였으나, 국군 통수권자인 피청구인이 정치적 목적으로 그 권한을 남용함으로써….”
“…포고령을 발령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침해한 일련의 행위는 법치국가 원리와 민주국가 원리를 구성하는 기본 원칙들을 위반한 것으로서 그 자체로 헌법 질서를 침해하고 민주 공화정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해를 끼쳤으므로….”
국민의 핏값으로 쟁취한 우리 민주주의가 독재자 한 명의 광기에 스러질 정도로 허약하지 않음을,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피 토하듯 꾹꾹 눌러쓴 ‘고갱이’로 읽힌다.
덧붙여 헌재는 공들여 작성한 결정문 ‘결론’ 첫머리에 헌법 1조 1항을 인용해 이를 명토 박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채정희 편집국장 goodi@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