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원의 여의도 포커스] 21대 대선 ⓷국힘 경선과 ‘업둥이 한덕수’ 차출론
탄핵 찬반 노선 투쟁에 ‘尹 변수’ ‘한동훈 대망론’ 얽힌 고차 방정식
#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여당 지위를 잃고 원내 2당으로 주저앉은 국민의힘에 불과 5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조기 대선은 받고 싶지 않았던 카드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세론’이 여전하고 탄핵 찬반을 둘러싼 당 안팎 책임 공방도 진행 중이다. 친윤계 일각과 강성 지지층 사이에선 “탄핵 찬성파는 대선 경선에 나와선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주로 한동훈 전 대표를 겨냥한 발언이다.
전통적 지지층 이탈을 막을 수 있는 묘수도 마땅치 않다. ‘대통령이 파면되기까지 당은 뭐했느냐’는 원망과 허탈감이 상당하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방치하면 대선 때 투표율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탄핵을 둘러싼 낙동강 벨트와 한강 벨트의 입장이 분열된 상황에서 두 그룹을 아우르는 정치력이 당 안팎에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지층 사이에서 뜨겁게 진행 중인 ‘김문수냐 한동훈이냐’ 논쟁은 그 외피다.
# 국민의힘의 이 같은 고민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비상계엄 직후 갈피를 못 잡던 지지층은 친윤 그룹이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고 윤 전 대통령이 태극기 세력과 제휴하면서 급격히 ‘계엄 불가피-탄핵 반대’로 선회했다.
갈수록 관성이 붙으면서 무려 4개월 동안이나 진행된 지지층 ‘아스팔트화(化)’는 상당수 보수 유권층을 윤 전 대통령 자장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제 와 ‘윤심’과 거리를 두기엔 너무 멀리 온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와 다른 점이 이 대목이다. 당시엔 ‘반기문 대안론’이 나오면서 여권 상당수가 박 전 대통령과 일찍 선 긋기에 나선 바 있다.
경선 후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과의 단일화 여부도 주목된다. 2022년 20대 대선에선 유세 막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극적 단일화을 선언한 바 있다.
이준석 의원은 대선 예비후보 등록 직후 "국민의힘에서 나를 모욕적 주장을 통해 내쫓았기 때문에 반성이나 사과의 기미가 없는 상황 속에서 단일화 논의는 무의미하다"고 선을 그었다. 사과하면 단일화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다.
# ‘한동훈 대망론’을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주로 중도적 지지층으로 당이 처음부터 ‘계엄 반대, 탄핵 찬성’ 스텐스를 취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한동훈을 내세우고 이준석 등 정치권의 ‘반명 세력’을 모두 모아 일전을 벌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지난 대선과 총선 전후 민주당을 이탈한 정치세력까지 모두 끌어안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탄핵 찬반으로 보수의 손발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거침없는 좌우 클릭으로 외연을 확장해 온 이재명 전 대표처럼 국민의힘도 그에 맞는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는 주문이다. 문제는 윤 전 대통령과 강경 지지층을 어떻게 설득하고 제어하느냐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온다.
영향력 있는 보수 이데올로그들도 국민의힘이 ‘이재명 포비아’만으론 절대 승리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민주당 헛발질’에 대한 반사이익도, ‘이재명 집권’에 대한 공포심 조장도 아닌 독자적인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념논쟁이나 계몽령 따위의 시대착오적 선동으론 선거 승리는 커녕 스스로의 존립도 어렵다는 얘기다. 지난 보궐선거 결과가 바로 민심에 비친 국민의힘 현주소라는 자성이다.
이 같은 입장에선 윤 전 대통령 석방이 재앙에 가깝다. 자칫 2022년 대선에 이어 사실상 윤석열-이재명 재대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늘 여러분 곁을 지키겠다’던 윤 전 대통령 최근 메시지는 그가 이번 대선 국면에서 어떻게 움직일지를 예견케 한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한국 보수(지지층)는 지금 음모론에 속는 사람과 안 속는 사람으로 분열돼 있다”며 “이걸 어떻게 하나의 연합 전선으로 모을 수 있느냐 하는 게 경선 과정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윤심 후보’의 본선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면 경선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 영향력이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불과 얼마 전 ‘짜르’ 김종인을 비대위원장으로 위촉하고 30대 이준석 당 대표를 옹립한 국민의힘 당원들 아닌가.
# 여야를 막론하고 현역 의원들의 관심사 중 하나는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을 수 있느냐의 여부다. ‘희망도 별로 없어 보이는 대선을 치른다고 공연히 헤게모니를 뺏기느니 차라리 말랑말랑한 후보를 내세우자’는 당 일각의 정서는 국민의힘 대선 레이스의 숨은, 그러나 치명적 변수다.
한덕수 영입 주장도 비슷한 맥락이다. ‘업둥이 윤석열’로 희대의 실패를 겪는 와중에 또다시 당 밖 후보를 찾으려는 시도는 당권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가공할 욕망, 그 민낯이다.
한덕수 대행이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하려면 이달 15일, 무소속 출마의 경우 5월 4일까지 사퇴하면 된다. 그가 무소속으로 출마, 국민의힘 후보와 ‘반명 단일화’를 하는 시나리오도 여권 일각에서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행을 차출하려는 측에선 그의 화려한 공직 경험과 호남 출신임을 주목하는 눈치다. 그러나 한 대행이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 북중을 졸업한 것은 사실이나 지역 연고성은 매우 미미하다. 전북 출신 언론인 모임인 ‘전언회’에 회자되는 일화가 몇 개 있다.
1995년 초대 민선 전북지사인 유종근(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럿거스대 교수)은 중앙부처 전북 출신을 찾던 중 상공부 국장 한덕수를 발견한다. 즉시 한 국장을 방문, "전북경제가 많이 어려우니 도와달라"고 부탁했으나 "나는 전북 출신 아니니 앞으로 절대 나를 찾아오지 마시오"라는 답을 들어야만 했다.
1996년 12월 한 대행은 특허청장에 임명됐다. YS 정권 말기였고 호남 출신 장차관이 아주 적던 때였다. 전북 출신 기자들이 그의 출신지를 '전북'으로 썼다. 그러자 그는 해당 언론사에 일일이 연락, 자신의 본적이 '서울'이라고 강조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 3월. 그는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발탁된다. 언론사는 1년 전의 경험이 있어 그의 본적을 '서울'로 썼다. 그러자 이번엔 한 본부장이 각 언론사에 팩스를 보냈다. ‘전주가 고향이며, 초등학교 일부도 전주에서 다닌 전북 출신’이라는 요지였다.
물론 그의 이 같은 처신에 대해선 호남차별이 극심했던 1997년 이전의 공직 풍토를 고려해야 한다는 ‘내재적 접근법’도 존재한다.
이런 모든 논의에 앞선 국민의힘의 진짜 문제는 민주주의를 유린하다 파면된 ‘1호 당원’을 그대로 안고 가는 작금의 상황이다.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내란 수괴’를 제명하지 않는 정당. 그 당 후보가 대선 토론회에서 ‘국민을 권력 쟁취의 도구로만 여기는 태도 아니냐’는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김대원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