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매력의 고깔제비꽃

[곰돌곰순의 귀촌일기] (107) 제비꽃, ○○ 후배를 추억하며

2025-04-15     백청일, 오숙희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마당 샘 옆 화단의 제비꽃(2025.4)

 마당 샘 옆 화단에 “이름 모를 소녀”같은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습니다. 어찌 된 사연인지 모르겠습니다. 마당 꽃들은 대부분 곰돌곰순이 사서 심은 것들인데. 가끔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기도 한데 민들레처럼 씨가 날아와서 정착했나 보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팬지라고 착각했네요. 팬지를 사 왔는데, 화단과 마당 흙 정리를 하다 뿌리가 섞여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자라났을 거라고.

 가만 보니, 팬지하고는 모양과 색깔이 다릅니다. 잎은 처음에는 고깔모자처럼 나오다 펼쳐지면 모서리에 부드러운 톱니모양이 있습니다. 꽃잎은 다섯 장인데, 가운데는 진보라색이고 끝으로 갈수록 연보라색이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은은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어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고깔제비꽃’이라고 나옵니다. 아, 이 꽃이 ‘제비꽃’이었구나. 내친김에 조사를 더 해 봅니다.

 제비꽃은 종류도 아주 많아서 806종이나 되는데 한국에서는 50여 종이 넘게 확인되고 있답니다. 고깔제비꽃 외에도 팬지라고 알려진 삼색제비꽃, 흰제비꽃, 노랑제비꽃, 남산제비꽃 등. 들에서 흔히 자라는데, 씨앗에 개미 유충에게 좋은 영양분이 되는 지방산 덩어리 엘라이오솜이 붙어 있어 개미 덕분에 씨를 널리 퍼트릴 수 있다고 하네요. 유럽에서는 여신 아테네를 상징하는 꽃이고, 중세 때는 장미, 백합과 함께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꽃이기도 했답니다. 꽃말은 색깔에 따라 다르지만 대게 겸손이 많습니다. 제비꽃이 낮게 피니 구경하려면 허리를 굽히거나 쪼그리고 앉아야 해서(제비꽃, 나무위키).

 곰돌이에게 ‘제비꽃’은, 한 사람을 떠오르게 합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대학교 1년 후배였던 ○○이.

 가슴 저리게 “제비꽃”(조동진)을 부르던, ○○이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선배들의 권유로 몇 명의 동기들과 학과 노래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다음 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학과 동아리 소개를 할 때 신생 동아리로 소개를 했습니다. 오리엔테이션 후, 걱정반 기대반의 마음으로 시간이 지나가는 걸 견디고 있었는데, 한 여학생이 곰돌이 앞으로 다가와서 대뜸 물었습니다.

 “노래동아리 들어가고 싶은데, 오디션 봐야 하나요?”

 “(헉-) 아니, 아니, 괜찮아요. 오디션 없어요. 바로 돼요.”

 다행이라고 안심을 하는 여학생. 동아리 소개를 들으면서 걱정을 좀 했다고. 무슨 걱정을, 괜찮다고, 하고 싶으면 그냥 들어오면 된다고 했더니, 기타는 아주 조금 치는데, 노래를 잘못한다고.

 그런데 기타 치며 노래하는데, 중저음의 허스키보이스에 호소력 짙은 진한 감성이 가득 묻어나는 노래에, 리듬과 분위기를 잘 살려내는 기타 연주까지. 함께 온 여학생은 합창반 활동을 했다는데, 맑고 고운 소프라노 목소리. 와우, 복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다는 건 바로 이 말이구나. 곰돌이 천군만마를 얻은 듯 했겠지요.

 이후 2, 3년여를 학과 행사부터 외부 공연까지 함께 활동하면서, 준비하는 순간부터 공연 마무리하고 뒤풀이 자리까지 셋이 항상 함께 했습니다. 그때 곰돌이 자주 하는 말이 “내가 왼쪽에 ○○이, 오른쪽에 △△이만 있으면 잠실경기장에서 콘서트도 한다”였습니다. ‘좌청룡우백호’를 흉내 내어, “좌○○우△△”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나중에는 “수만 명이 모인 잠실경기장에서 셋이 30분 콘서트 하자”고 의기투합하기도 하였습니다.

 졸업 후 ○○이는 같은 과 선배와 결혼하였고, △△이는 결혼해서 얼마 후 외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인 결혼식이나 장례식에서 가끔 ○○을 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일을 겪고 바쁘게 살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빛바랜 사진첩을 들여다볼 때처럼 그 시간들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겠지요.

 그런데 귀촌해서 27년여 만에 기타를 다시 잡게 되고,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다 보니 아무래도 대학 시절의 그 인연들과 시간들이 생각이 안 날 수가 없었습니다. 날마다 기타를 잡기만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이와 △△이었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지요. 왜, 문득문득, 수시로 떠오르는지. 바로 어제 일 같고, 다시 만나면 그 시절의 열정이 다시 살아날 거 같은.

 몇 년째 혼자서 기타 연습을 하고 동아리 공연을 하다 보니 그동안 가져왔던 기타/음악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아따, 기타도 치고, 먹고 살만 한갑다.”, “그렇게 여유 있게 사는 거 보니, 돈 많이 벌었는갑네.”

비를 맞고 있는 제비꽃(2025.4).

 결혼식이나 장례식에서 오랜만에 만난 옛 인연들을 만날 때면 농담조로 던지는 말들에 어째 가시가 꽂혀 있는 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더라도 굳이, ‘빵과 장미’(문학동네)에서 파업 중이던 로사 어머니가 동료들과 선명한 구호를 만들 때 “우리에게는 빵뿐 아니라 푸치니의 오페라 같은 장미도 필요해요”라고 했던 말을 해줄 필요는 없었겠지요.

 날마다 기타 연습을 하다 보니, 꼭 누가 들어주지 않아도 기타 연습하는 이 시간이 좋고, 연습하다 보면 생각과 마음에 일었던 상념들이 사라지면서 그 순간에 푹, 빠질 수 있었습니다. 거칠고 서툰 소리가 하루하루 지날수록 아주 조금은 듣기 좋으면서 익숙해지는 소리로 들리는 거 같은 기분도 느끼게 되면서, 뿌듯함, 성취감과 함께 어떤 새로운 기대를 하게 만드는 마력같은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타/음악과 함께 하는 생활/삶은, 매일 아침 운동을 거르지 않고 하는 거와 똑같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삶의 세계와 영역이 커지고 섬세해지면서 풍성해지는 듯한. 마치 사람이 하루 세 끼 식사를 하는 거처럼 영혼의 풍요로움을 위한.

 영화 속 주인공들이 왜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바이올린을 껴안았는지, 피아노를 보면 연주하고 싶어했는지,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조동진의 노래들을 자주 불렀던 ○○이가 더 생각났습니다. 기타를 치지 않았다면 모를까, 누구보다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걸 좋아했던, 그리고 노래를 하면 주변의 공기를 진한 감성의 세계로 바꿀 줄 알았던 ○○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러다 이런 우연이 있을까 싶게, □□병원에서 ○○이를 만났습니다. 치료 중이라고. 몇 차례 남았는데 지금까지 잘 진행되고 있다고. 그 뒤로 1년에 한두 번 정도 문자와 통화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치료가 끝났다고 통화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웠던지,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정말 축하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출퇴근 길 차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어느 날 조동진의 ‘제비꽃’이 흘러나왔습니다. 살면서 완곡을 듣는 건 처음이라 ○○이가 즐겨 불렀던 노래였지, 하며 그 시절을 추억하기도, ○○이를 생각하기도 하면서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2절로, 3절로 가면서 입술을 깨물어도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자, 큰 숨을 몰아쉬다가, 자꾸 하아~, 하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대학 시절 ○○이는 어떻게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 중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부르는 걸 들었을 때, 그때도 가슴이 쿵, 내려 앉는 경험을 했었는데. 어떻게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와 목소리로 그런 감성을 노래로 승화할 수 있었는지.

 다음날 오전 거실에서 유튜브로 ‘제비꽃’을 찾아 다시 들어보았는데, 도저히 끝까지 들을 수가 없어서, 끄고 마당에 나와 심호흡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감성의 노래였구나, 나이가 들면 의지가 약해지고 눈물이 많아진다더니.

 노래하면서 자기가 울면 ‘삼류’고, 자기도 울고 관객도 울면 ‘이류’고, 자기는 안 우는데 관객이 울면 ‘일류’라던데, 나는 이 노래를 할 때마다 울 테니, 삼류인가. 아니, 노래 자체를 할 수가 없으니, 삼류도 못 되겠구나. 그래서인지 새삼, 이 노래를 부르던 ○○이의 마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느껴졌습니다. 이미 대학 시절 ‘일류’였던. 언제가 되든지 꼭 기타를 다시 잡고 노래하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얼마 뒤 다른 후배에게서 문자를 한 통 받았습니다.

 장문의 문자라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고, 믿기지 않던.

 모두가 힘들었던 혹한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마당에 은은한 매력을 뽐내고 있던 아름다운 꽃을 발견하고 그게 제비꽃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가장 먼저 ○○이가 떠올랐다고 했지요. 이제 그는 가고 없지만 해마다 봄이 되면 피어나는 제비꽃을 보면서 곰돌이는 ○○이를 생각하겠지요. 기타를 잡을 때마다 생각나는 거에 더해서.

 수억 년이나 되는 별의 나이에 비하면 우리 인간의 나이는 ‘찰나’와 같기에,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이를 만날 수 있겠지요. 이곳에서 잠실경기장 콘서트는 함께 하지 못했어도, 그곳에서 ‘제비꽃’은, 꼭, 함께 부를 수 있겠지요. 그때가 되면 곰돌이도 좀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

 시간이 조금씩 지나 이제 제비꽃 가사도 찾아보게 되고, 조용히 음미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직접 부르거나 원곡을 찾아 들어볼 정도는 되지 않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니, ‘제비꽃’ 가사도 다가옵니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 때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 너머 먼 눈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 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