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다시 ‘무미이지’ 고요함의 세계로
[좌충우돌 중국차(茶)] (68) 차의 순환 주기
지금까지 우리가 공부해 온 과정을 보자면 차는 없음에 가까운 맛을 상징하는 무미이지(無味而至)에서 시작하여, 굳셈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강유병제(剛柔竝濟)에 이르는 과정까지를 설명해 왔다. 이를 다시 설명 하자면 무미이지는 녹차에 해당한다고 할 수가 있으며 차의 향과 맛이 모두 부드럽게 나오는 것이 좋은 제품이고, 강유병제는 부드러움 속에서 힘을 상징하는 단단함이 나오는 맛이라고 할 수가 있다. 6대 차류 가운데서 오룡차, 다시 오룡차 가운데서도 무이암차에서 나오는 강유병제가 뚜렷하게 보인다. 이처럼 좋은 차를 마실 때 느껴지는 무미이지와 강유병제 이 두 가지의 감각을 잘 깨우치면 어디 가서도 “차를 모른다.”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앞서 연재된 내용을 잘 읽은 사람이라면 차의 등급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은 극품(極品)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극품은 말 그대로 품질이 극(極)에 달하여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는 뜻이니 품질에 비례하는 차의 가격 역시도 극에 달해있다고 보면 된다. 무이암차는 일반적으로 정암, 반암, 주암, 외산의 단계로 등급을 나누지만, 시장에서는 정암차의 등급을 극품과 특급으로 더 세분화한다.
무이암차 가운데서 극품이 속해있는 정암차는 전체 생산량의 5% 남짓에 불과할 정도이고, 극품은 정암차 가운데서 한 자리 숫자의 점유율이니 그 양이 매우 적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양이 적다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곧장 가격으로 반영된다. 이는 초심자들이 조바심에 접근하는 것도 문제지만, 시중의 선무당들이 함부로 아는 체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이 글을 쓰면서도 곡해의 염려가 가시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서 차를 모르는 사람에게 극품 무이암차를 주면 엉뚱한 해석을 할 수밖에 없기에 금전적인 낭비라는 것이다. 자기 수준에 맞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차는 원래 한가지씩 마시면 느끼기 어려웠던 부분들도 두 가지의 차를 동일한 조건으로 우려내 동시에 마셔보면 그 차이가 뚜렷하게 보인다. 무이암차 가운데서 대홍포를 예로 들자면, 극품 대홍포와 특급 대홍포 역시 그 맛과 향 및 차의 기운을 말하는 차기(茶氣)에서 차이를 보인다. 우선 차의 맛과 향에서는 극품은 강유병제 안에서도 특급은 따라올 수 없는 부드러움을 선사한다. 향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고삽미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특급 정암 대홍포라고 할지라도 조금은 남아있던 쓰고 떫은 맛이 극품에서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오룡차를 설명할 때 비록 다 성장한 찻잎을 사용하여 만들었지만, 그 제다의 복잡성과 오랜 시간 제다로 “녹차의 단점인 쓴 맛과, 홍차의 단점인 떫은맛이 없는 차”라고 했었다. 이는 엄밀히 이야기했을 때 보통의 오룡차는 도달할 수 없는 또 다른 경지를 일컫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와 함께 좋은 무이암차가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요건인 ‘암운(巖韻)’ 역시도 극품이 더 조용하고 차분하게 다가온다. 차를 우려내는 내내 보여주는 한 없는 부드러움과 회감에 더하여, 힘이 있으면서도 그 힘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은 마치 문무를 겸비한 인재가 보여주는 극도로 절제된 자기완성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것이 바로 차기(茶氣)이다. 차기는 일반인들이 알아차릴 수도 없거니와 차를 오래 마셔온 사람들마저도 제대로 모르면서 엉뚱한 것을 갖다 붙이는 것이다 보니 잘 못하면 떠돌이 약장수로 오해 받기 좋은 항목이기도 하다. 한겨울 더운 방에 앉아서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기준으로 차기라고 말하며 우열을 가리는 사람이 대부분인 국내에서는 특히 더한 실정이기도 하다. 바로 말하자면 등줄기의 땀은 차기(茶氣)가 아니라 열기(熱氣)이다. 차기의 깨달음은 제대로 된 차와, 제대로 된 수행이 동시에 뒷받침이 되어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모든 차 가운데 그 기운이 제일 뛰어난 차가 바로 무이암차이다. 물론 보이차나 여타의 오룡차에서도 약간은 보이지만 무이암차에는 비견할 바 못 된다. 차기에서 강유병제의 특급 정암 대홍포가 머리 위로 솟구치는 힘을 가졌다면, 극품 정암 대홍포는 그 기운마저도 잔잔하게 나와 전신을 휘감는다. 즉 차의 기운도 차를 마시는 사람을 가장 편안하게 해준다는 말이다. 이러한 과정을 다시 문자로 표현하자면 ‘무미이지’에서 시작하여 ‘강유병제’로 나아갔다가 다시 ‘무미이지’의 고요함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녹차의 ‘무미이지’와 무이암차의 ‘무미이지’의 혼동은 금물이다. 녹차는 일차원적인 단순한 부드러움을 말하는 것이라면, 무이암차는 ‘강유병제’를 뛰어넘은 ‘무미이지’이고 이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순환된다.
이러한 무미이지에서 시작하여 강유병제로 발전했다가 다시금 무미이지로 돌아가는 큰 순환 주기는 보이차에서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다.
류광일(덕생연차관 원장)
류광일 원장은 어려서 읽은 이백의 시를 계기로 중국문화에 심취했다. 2005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사범대학에 재학하면서 덕생연차관 주덕생 선생을 만나 2014년 귀국 때까지 차를 사사받았다. 2012년 중국다예사 자격을, 2013년 고급차엽심평사 자격을 취득했다. 담양 창평면에 중국차 전문 덕생연차관(담양군 창평면 창평현로 777-82 102호)을 열고 다향을 내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