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평화의 상징 비둘기
[동물과 삶]
최근 ‘피카소’ 전시회를 찾았다. 이름 모를 새 조각과 그림이 많아 궁금함에 물었더니, ‘비둘기’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은 너무 흔해 ‘유해 조류’ 취급까지 받는 비둘기가, 당시에는 한 예술가의 사랑을 받으며 명성을 누렸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결국 동물은 가림막 없는 눈으로 봐야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떠올리게 됐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 된 데는 피카소의 영향도 크다. 비둘기는 세계 2차대전 당시 연합군 측 회담의 대표 깃발에 새겨졌었고 전후 그 역할이 확장되어 올리브 잎을 문 비둘기가 유엔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비둘기가 물어온 올리브 잎은 노아의 방주에서 인류와 동물을 구원한 상징이기도 하다.
1949년, 피카소는 공산당이 주최한 파리 평화회의 포스터를 의뢰받고 주저 없이 흰 비둘기 한 마리를 그렸다. 이 비둘기는 ‘평화’라는 이름으로 유럽 전역에 퍼졌고, 한국전쟁 당시엔 판문점 입구에 조각으로 새겨져 휴전 협정의 상징이 되었다. 그 평범한 ‘닭둘기’에 이토록 많은 상징과 역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도시 곳곳에 넘쳐나는 ‘닭둘기’는 원래 야생의 바위비둘기에서 유래했다. 기르기 쉽고 귀소 본능이 강한 특성 덕에 축제나 행사 때 자주 방사되었고, 관리되지 못한 채 도심에 정착하게 됐다. 이는 전 세계 도시에서 비슷하게 벌어진 일이다. 그렇게 평화를 상징했던 존재는, 정작 평화가 온 뒤에는 제거 대상으로 몰렸다.
비둘기가 도시에 정착해 살아갈 수 있는 건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이기도 하고, 다리나 건축물 같은 인공 구조물에 잘 적응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건물 틈새나 다리 위에 엉성한 둥지를 틀고 수없이 번식하면서 살아간다. 비둘기들이 아무렇게나 사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 무리의 규칙이 있고 근친을 피하려고 우두머리 수컷이 다른 수컷들을 강제로 추방하기도 한다. 각 무리마다 텃세권과 문화가 존재한다. 비둘기 한 마리가 날면 모두가 따라서 나는 건 다 그런 이유가 있어서다.
일사불란함과 사람과의 친근한 관계하기는 그들이 도시에 적응하는 데 필수 조건이다. 도시의 오물은 비둘기가 일정 부분 책임진다. 초식성이던 비둘기는 이미 잡식화되어 사람의 모든 음식물을 재순환 할 수 있다.
요즘은 흔하게 발목 잘린 비둘기를 많이 본다. 사방에 널린 모든 실과 끈들이 그들의 가느다란 다리를 언제든 자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둘기에게 실과 끝 같은 것들이 널려있는 도시는 ‘발목 지뢰’와 같다. 그러고도 이 도시에 살아야 하나?하는 안타까움이 생긴다.
비둘기는 워낙 집비둘기가 많아서 그렇지 우리 주변엔 몸집이 작고 무늬가 수수한 멧비둘기들도 많이 산다. 최근엔 울산대공원에 나타나 화제가 된 녹색비둘기도 간혹 존재한다. 이 녹색비둘기는 인간에 의해 멸종당한 대표적인 동물인 ‘도도새’와 함께 도도아과에 속한다. 어쩐지 도도가 비둘기 새끼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날지 못하는 큰 비둘기였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한때 노예들에게 흔하게 보이던 여행비둘기를 마구 잡아서 식량으로 제공하다 결국 1914년 완전히 멸종시키고 말았다. 유고 전쟁 당시에 고립된 사라예보에선 도시의 비둘기가 유일한 단백질원이었다. 미국과 중동 지역 국가에서는 비둘기 요리를 즐겨 먹기도 한다.
비둘기는 평생 한 짝과 해로하며, 포유류처럼 새끼에게 ‘피죤 밀크’를 토해 먹이는 모성이 강한 동물이다. 그러니 새끼들도 거의 죽지 않는다.
최근에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면 벌금이 부과되기도 한다. 동물 학대라고 보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현재 무분별한 비둘기 번식을 막는 유일한 대안이기도 하다. 어렵게 먹이를 구하게 되면 번식률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때 전 인류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갔던 세계 1.2차 대전의 종식을 알렸고 노아의 배에 세상의 평화를 알렸던 위대한 동물이 바로 비둘기였음을 혹시 미워하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 보자.
최종욱 <수의사>
▲비둘기(鳩, dove, Pigeon)
- 학명 : Columbidae
- 분류 : 척삭동물 > 조강 > 비둘기목 > 비둘기과 > 289종
- 크기 : 평균 크기는 33cm, 240~300g
- 식성 : 잡식성(작은 씨앗, 곡류, 작은 벌레)
- 수명 : 10~20년
- 서식지 : 극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 도시의 새, 강, 호수, 농경지, 교량, 건물, 석회암 굴속
- 번식 : 한배에 1~2개의 알, 품은 지 12~17일 정도가 지나면 부화. 새끼는 피죤밀크로 키움
- 천적 : 인간, 까마귀, 족제비, 청설모, 삵, 고양이, 매나 부엉이 같은 맹금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