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청백리(淸白吏) 열전] 야산에 묻혀 있는 정자산(鄭子産) 4

“불에 타 죽는 사람은 아주 적다. 그러나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은 많다”

2025-04-30     김영수

 공직사회가 엉망이 되었다. ‘나라 잘 되는 데는 열 충신으로도 모자라지만 나라 망치는 것은 혼군(昏君)이나 간신(奸臣) 하나면 충분하다’는 옛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실감하고 있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왕조체제를 벗어난 지가 10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그 때보다 못한 일들이 나라와 공직사회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나라의 기강이 무너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망국의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길 밖에 없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이 난국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한 역사적 성찰로서 역대 중국의 청백리들을 소개하여 반면교사로 삼고자 한다. 많은 격려와 질정을 바랄 뿐이다.

 글쓴이 김영수(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는 지난 30년 넘게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司馬遷)과 그가 남긴 중국 최초의 본격적인 역사서 3천 년 통사 《사기(史記)》를 중심으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그 동안 150차례 이상 중국의 역사 현장을 탐방했으며, 많은 저역서를 출간했다. 대표적인 저서에는 ‘간신 3부작’ 《간신론》 《간신전》 《간신학》, 《사마천 사기 100문 100답》, 《성공하는 리더의 역사공부》 등이 있다. (편집자주)

인구 천 만의 정주시에서 금수하의 옛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자산의 고귀한 정신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자산의 정치는 간결했다. 정치와 그에 따른 정책의 초점을 백성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완전히 초월하여 오로지 공심(公心)으로 일했다. 따라서 관련한 그의 어록 또한 그 메시지가 쉽고 명쾌했다.

 그는 “정권을 잡으면 반드시 인덕(仁德)으로 다스려야 한다. 정권이 무엇으로 튼튼해지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권의 기반이 결국이 백성의 믿음이라는 진단이다. 그러려면 어진 덕정을 베풀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실제 통치는 ‘너그러움과 사나움을 서로 섞는’ ‘관맹상제’로 임해야 한다고 했다. 너그러운 정치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덕망이 높고 큰 사람만이 너그러운 정치로 백성들을 따르게 할 수 있다. 물과 불을 가지고 비유하면 적절할 것이다. 불이 활활 타오르면 백성들은 겁을 먹는다. 그래서 불에 타 죽는 사람은 아주 적다. 그런데 물은 성질이 부드럽기 때문에 백성들이 겁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물과 불의 정치, 전제는 덕망이 놓아야

 자산은 너그러운 정치와 통치를 원했다. 물과 같은 정치를 하고 싶었다. 물의 영향력이 불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다만 덕망이 높고 큰 사람이어야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사납고 엄한 정치가 더 많다면서 너그러움과 사나움을 섞으라고 했던 것이다.

 아무튼 자산은 덕망이 높고 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물과 같은 정치를 추구했고, 그렇게 하려고 평생 애를 썼다. 그의 정치관이 이러했기 때문에 “백성과 나라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생사를 그 일과 함께 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자산은 법을 공포하면서 “내가 듣기에 좋은 일을 하려면 그 법도 함께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법의 제정은 세상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했고, “천도는 멀고 인도는 가깝다(천도원天道遠, 인도근人道近)”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천도란 천명과 같은 뜻인데 미신 따위를 가리킨다. 귀족들이 툭하면 ‘천도’를 거론하면서 점을 치자는 둥 미신에 집착하자 정자산은 이렇게 딱 잘라 말했다.

 “(그들이) 천도를 어찌 안단 말인가? 말이 많다보면 어쩌다 맞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우리가 싸우는 것은 용이 보지 못하는데 용이 싸우는 것을 왜 우리가 봐야 한단 말인가? 우리가 용에게 요구하는 것이 없으면 용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렇듯 자산의 사고방식은 대단히 실용적이었다. 흔히 하는 말로 ‘실사구시(實事求是)’였다. 무려 2600년 전의 인물이 이런 실용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보수의 가치로 ‘실사구시’의 정신을 제안해본다.

 또 권력을 쥔 사람은 함부로 휘둘러서 안 된다면서 “여러 사람들의 분노는 건드리기 힘들다. 전권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자산의 어록 가운데 백미는 단연 다음과 같은 말이다.

 “높은 자리와 큰 봉읍은 자신을 비호하는 수단이 됩니다. 저는 배운 다음 비로소 관직을 맡을 수 있다고 들었지 관직을 맡은 다음 공부하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된 다음에 벼슬을 해야지, 벼슬 한 다음 사람이 되기란 어렵다는 말이다. 왜? 사람이 덜 된 상태에서 권력과 부를 가지면 자신의 잘못을 덮는 수단으로 악용하기 때문이다. 인격이 먼저 갖추어져야, 즉 사람이 되어 있어야 부와 권력을 가져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코끼리는 상아 때문에 죽는다”라는 자산의 어록을 소개한다. 그렇다. 코끼리는 몸 밖으로 튀어나온 상아 때문에 사냥꾼의 화살과 창을 피하지 못한다. 상아가 몸 안에 감추어져 있다면 그렇게 죽지 않는다. 이를 나라에 비유하면, 힘없고 작은 나라가 조금 힘이 생겼다가 까불면 큰 나라에 얻어터지기 십상이다. 본색을 감출 줄 알아야 한다.

 자산이 외교무대에 나가서 자존심을 지키며 큰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것은 내부가 단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전폭적인 신뢰에 공실 등 귀족들도 화해했다. 그래서 자산이 집권하는 동안에는 단 한 번도 다른 나라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자산 이전에는 2년에 한 번 꼴로 침공을 당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부단결이 관건이고, 이를 위해 상아를 섣불리 드러내서는 안 된다. 자산의 이 어록이 던지는 만만치 않은 메시지다.

산꼭대기에 있는 자산의 무덤이다.

 청백리의 가치를 더욱 빛낸 죽음

 청백리의 가치는 죽음으로도 담보된다. 그래서 사마천은 “사람은 한 번은 죽는다.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는 천고의 명언을 남겼다.

 태생이 보수였던 자산의 정신적 가치와 그의 청렴을 더욱 빛내는 것은 죽음이었다. 그의 죽음은 청백리의 진정한 가치가 결국은 고귀한 만큼 책임과 의무를 실천하는데 있다는 점을 함축적으로 상징적으로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자산의 죽음과 관련한 또 하나의 전설도 마찬가지다. 자산이 죽고 장례 치를 돈이 없어 야산에 묻으려 하자 백성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너나할 것 없이 돈이며 패물을 들고 와서 자손들에게 번듯하게 장례를 치러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자손들은 그 돈을 받지 않았다.

 백성들은 돈이며 패물을 차마 되가져 가지 못하고 자산의 집 앞에 흐르는 시내에 던졌다. 그 후 시냇물은 햇빛을 받으면 영롱하게 반짝였다. 사람들은 그 시내를 금수하(金水河)라 부르기 시작했고, 오늘날 하남성의 성회인 정주시 한복판에 흐르고 있다.

 자산의 고귀한 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눈에 보이는 그의 무덤과 금수하 뿐만 아니라 그의 죽음을 백성들이 어떻게 애도했는지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기록은 이렇게 전한다.

 “자산이 세상을 떠나자 부모를 잃은 듯했다.”

 “자산이 죽자 상인들이 통곡을 했는데 마치 부모를 잃은 것 같았다.”

 “자산이 우리를 버리고 세상을 떠났으니 백성들은 장차 누구에게 의지한단 말인가?”

 “자산이 죽자 남자들은 차고 다니던 옥 장식을 모두 버렸고, 여자들은 귀걸이 장식을 버린 채 골목골목에 모여 석 달을 통곡했으며, 여흥과 모든 놀이가 중지되었다.”

 한 사람의 죽음을 얼마나 슬퍼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명언명구로 되새기는 청백리 자산의 가치

 자산의 어록을 중심으로 명언명구를 통해 청백리 자산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기도록 하겠다.

 “천도원(天道遠), 인도이(人道邇). 비소급야(非所扱也), 하이지지(何以知之)?” 이 대목으로 풀이하면 이렇다. “하늘의 도는 멀고 사람의 도는 가깝다. 인간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천도니 천명이니 하늘을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앞에서 설명했다.

 “구리사직(苟利社稷), 사생이지(死生以之).” “참으로 사직(나라)에 이익이 된다면 생사를 함께 할 것이다.” 이 대목도 언급한 바 있다. 나라 일에 임하는 자산의 자세다.

 “아문충선이손원(我聞忠善以損怨), 불문작위이방원(不聞作威以防怨).” “나는 충정과 선함으로 원망을 줄인다는 말은 들었지만 위협으로 원망을 막는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백성들을 위한다면 항상 충정과 선함으로 그것을 계속 유지해야 원망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사실 정치와 정책이 모든 것을 100% 다 만족시킬 수 없다. 하지만 진정성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계속해서 그 정책을 유지해야 그 진의가 파악되고 믿음을 얻는다. 처음부터 100% 환영받는 정책은 없다. 멀리 정확하게 내다보고 설득하고 진심을 다해서 그 정책을 밀고 나가되 약속을 지켜나가면 진정성을 알아준다. 자산은 정책이 갖고 있는 한계점과 그리고 정책의 본질이 무었인가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그 다음 강조한 바 있는 “위정필이덕(爲政必以德), 무망소이립(毋忘所以立)”이다. 원문으로 알아두면 더 좋겠다. “정치는 반드시 덕으로 해야 하며 정권이 무엇으로 안정되는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자산거아사호(子産去我死乎), 민장안귀(民將安歸)?” “자산이 우리를 버리고 세상을 떠났으니 백성들은 장차 누구에게 의지한단 말인가?” <순리열전>에 자산이 죽고 난 다음에 백성들이 보인 반응이다.

 다음으로는 《회남자》에 보이는 명구 두 구절이다.

 “거사이위인자(擧事以爲人者), 중조지(衆助之); 거사이자위자(擧事以自爲者), 중거지(衆去之).” “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하면 여러 사람이 돕고, 자신을 위해 일을 하면 사람들이 떠난다.” 공사구분하라는 말이다.

 관련한 또 다른 구절은 “중지소조(衆之所助), 수약필강(雖弱必强); 중지소거(衆之所去), 수대필망(雖大必亡)”이다. “여러 사람이 도우면 약해도 강해질 수밖에 없고, 여러 사람이 떠나면 커도 망할 수밖에 없다.” 모두 민심을 중시했던 자산의 노블레스 오블레주와 관련이 있어 보여 뽑아 보았다.

 《설원》에 따르면 “자산은 18년 재상을 지내는 동안 단 두 사람만 처형했다”고 한다. ‘관맹상제’를 앞세운 그였지만 그가 얼마나 물과 같은 정치를 실천하려 애를 썼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인물지(人物志)》를 남긴 유소(劉○)는 자산에 대한 인물평에서 “인격(덕)과 엄격한 원칙(법), 정치 수완(술)을 모두 갖춘” 사람이라고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으로 무장한 보수가 덕과 법과 술을 두루 갖춘다면 천하무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태생이 보수였던 자산에게 우리 보수는 얼마든지 무엇이든 배워야 할 것 같다.

 김영수 사마천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