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숲에서 백만평 광주숲을 꿈꾸다
고층 아파트 사이 ‘녹색’ 쉼터 도심 숨구멍 수원지·경마장·골프장이 ‘모두’의 숲으로 “광주에도 시민이 머무는 도심 숲을” 공감대
서울 성동구의 중심, 고층 아파트와 도로로 둘러싸인 땅 한가운데 거대한 숲이 펼쳐진다. 바로 ‘서울숲’이다.
5월 연휴가 시작된 주말 기자가 찾은 서울숲은 꽃이 핀 들판과 울창한 숲, 아이들의 웃음소리, 도시락을 펼친 가족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시민들이 걷고 머물며 웃는 풍경 속에서, 광주 군공항 종전부지 250만 평 중 100만 평을 숲으로 조성하자는 ‘백만평 광주숲’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서울숲은 단순한 녹지를 넘어 도시의 문화와 공동체, 건강한 일상을 품은 기반이 될 수 있음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여유롭게 웃고 떠들며 숲을 누비는 시민들이 눈에 띈다. 유모차를 끈 부모는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펼치고, 아이들은 잔디밭을 뛰어다닌다. 청년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벤치에 앉아 오후 햇살을 즐기고,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이들도 많다.
식물원과 갤러리 등 문화시설이 자연스럽게 숲과 어우러져 있어, 연인과 친구들의 데이트 공간으로도 사랑받는다. “여기 오면 마음이 놓여요. 사람은 많지만 시끄럽지 않아요. 다들 각자 여유를 즐기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서울숲을 자주 찾는다는 직장인 최모 씨의 말이다.
숲은 단지 쉼터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동체의 장이 되고 있었다. 반려견을 매일 산책시킨다는 시민은 “같은 시간대에 자주 보다 보니 이름은 몰라도 견주들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고 전했다.
가족 단위 방문객도 많았다. 6살, 9살 자녀와 함께 왔다는 김유진 씨는 “광장만 있는 공원은 아이들이 금방 지루해하지만, 여긴 숲과 놀이터, 나비, 사슴 등도 있어서 지루해할 틈이 없다”며 “도시 안에 이런 자연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서울숲은 과거 임금의 사냥터였고, 1908년에는 서울 최초의 상수원 수원지였다. 이후 경마장과 골프장으로 사용되다가, 2005년 서울시와 시민단체, 기업, 전문가 등이 협력해 약 116만㎡(35만 평)의 대규모 도심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수천 명의 시민이 기금을 마련해 만든 ‘시민의 숲’은 이제 시민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산책로, 인공습지, 곤충식물원, 연못, 체육원, 스케이트파크, 체험학습 공간, 갤러리, 물놀이터, 습지생태원 등 서울숲은 단발성 관광지가 아닌 일상 속 ‘생활형 숲’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꿀벌 체험장에서는 벌통을 관찰하며 생태를 배우고, 사슴 방사장에서는 아이들이 꽃사슴에게 손을 흔들며 자연을 경험한다. 나비정원, 조류 관찰대 등 다양한 생태 공간은 남녀노소 누구나 자연과 가까워지는 기회를 제공한다.
잔디밭 주변 넓은 나무그늘 아래 마련된 평상은 이른 아침부터 자리를 잡으려는 시민들로 붐볐고, 커다란 나무 아래 조용히 누워있는 이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서울숲은 단순히 ‘걷는 곳’을 넘어 ‘머무는 곳’으로, 도심 속 쉼터이자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공간이 되고 있었다.
인근 아파트와 학교, 상업시설과도 연결돼 있어 도심의 허파이자 커뮤니티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 이러한 서울숲의 모습은 ‘백만평 광주숲’ 조성 제안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더욱 실감 나게 만든다.
광주는 전국 5대 광역시 중 하나지만, 대규모 도심공원은 부족하다. 공항 이전으로 생기는 광활한 종전부지는 도시 중심에 새로운 숲을 조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도로와 아파트 단지로 채우기보다, 숲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숲처럼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이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시민 참여형 조성 과정을 통해 소유감을 높인다면 ‘백만평 광주숲’은 광주의 일상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세계 주요 도시들은 도심숲 확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 런던의 하이드파크, 도쿄의 요요기 공원 등 도시 중심에 숲을 품으려는 흐름은 세계적 추세다.
광주 시민들 또한 “우리도 일상에서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편 ‘백만평 광주숲’ 시민운동은 2023년 추진위원회를 공식 출범하고, 이후 정책 토론회와 캠페인 등을 통해 도심 숲 조성의 필요성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박현아 기자 haha@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