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풀이 무성하게 자라도
[곰돌곰순의 귀촌일기] (108) 10년의 대계, 그 첫 해 봄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3월 초가 되니 마당의 풀이 얼마나 올라올까 은근히 기대 반 걱정 반이 되었습니다. 기대는, 작년 가을 큰 그림으로 마당에 호피석 정원석을 깔고, 현무암 디딤돌 일부를 텃밭 주변으로 돌려놓은 터라(98화 “10년을 위한 대계” 참조). 걱정은, 그럼에도 풀들이 감당하기 어렵게 올라오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풀 매다 무릎 다 나간다”, “풀 매다 쓰러진 노인들”이라는 말들이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하루 시간 내서 모두 뽑아내면 되지 않나 할 수도 있지만, 우리 ‘풀 선생들’께서는 결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오전 틈틈이 구역을 나누어 풀 매고 돌아서면, 며칠 지나 어느새 웃자란 풀들. 그러다 비라도 오게 되면, 어찌나 빠르게 쑥, 쑥 자라는지, 가히 ‘우후풀선생’이라.
“이 일을 며칠 내로 끝내고, 다른 일을 하자”는 건 우리 풀 선생들께 참 실례되는 말입니다. 물을 가득 머금은 흙들은 풀 뽑기에도 좋지만, 이게 또 시간을 보통 잡아먹는 게 아닙니다. 화단 꽃들 사이에, 텃밭 제비꽃들 사이에도 풀 선생들께서 공평하게 돋아나는 터라 조심스레 다루다 보면 시간이 흘러가는 만큼 일은 많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정신없이 한 구역씩 정리하다 보면, 벌써 점심 때가 훌쩍, 지나있습니다. “보이는 대로 뽑으면 되지 않나?” 할 때쯤이면 이미 지쳐 있고.
풀 선생들과 씨름하며 몇 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레 여유, 동행, 함께 살기, 손해 보기 등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어느 한쪽의 ‘선 넘지 않는 동행’이 되도록 하기 위한 쥔장들의 노고도 각별해야 함도 알게 되었습니다.
4월, 좀 과장을 보태면 풀을 매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30분 만이라 해도. 그런데 풀을 뽑으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정원석을 깔아 놓은 자리에는 풀이 자라지 않으니, 전체적으로 그만큼 풀 양이 줄어들었고, 올라온 풀들은 뽑아서 호피석이나 디딤돌 위에 놓고 햇빛에 말리니, 이게 2, 3일만 지나도 잘 말라서 꽃과 나무들에 북주기를 쉽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텃밭들 사이 고랑에는 격자무늬로 보도블럭을 깔아 놓았는데 사이사이 강자갈을 뚫고 올라온 풀들도 많았지만, 마찬가지로 좁은 고랑을 오가며 풀을 뽑아 보도블럭 위에 올려놓으니 양이 줄어서 좋고, 잘 말라서 좋고, 보기에도 좋습니다. 밭고랑 사이가 좁아 여전히 무릎걸음으로 다녀야 하지만, 호미로 한 뼘씩 조금씩 캐면서 앞으로 나가야 했던 작년까지를 생각해 보면 ‘와~ 이 정도면 해 볼 만하다~’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텃밭의 야채는 올해도 기대되고
겨울이 지나니 텃밭의 상추와 갓, 유채 등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4월 유채꽃과 무꽃이 한창 피어나기 전까지 아침에 갈아 먹는 과일야채쥬스에 유채와 무 잎들도 넣고. 4월 초순이 지나 유채와 무가 자라 꽃이 피기 시작하면 뽑지 않고 꽃 감상을 하는데요.
곰돌곰순은 제주도에 안 가도 되겠다고도 하고, 제주도에는 유채꽃만 있는데 우리 밭에는 무꽃까지 있으니 더 좋은 구경을 한다며 여행 갈 필요가 없다며 웃곤 하지요.
찾아오는 분들이 “먹지도 못하는 거 안 뽑고 머하요?”, “얼른 뽑고 다른 거 심어야제” 해도, 꽃이 시들 때까지 기다리곤 했는데요. 그래도 올해는 꽃이 아직 한창이던 4월 말 햇빛이 좋던 며칠 지나 유채와 무를 다 뽑았습니다. 다 뽑고 보니 사이사이에 제비꽃과 상추와 케일이 숨어 있었다는.
이틀 정도 지나 풀들을 뽑아 내고 삽으로 밭갈이를 했습니다. 밭 전체가 바짝 말라 삽을 깊이 넣어 한 삽 뒤집을 때마다 먼지가 풀~ 날리는데, 안쪽 흙은 축축했습니다. 이렇게 공기와 바람을 쐬어 주어야 지력이 강해진다고. 해마다 퇴비를 뿌린 후에 밭갈이를 하고 땅을 골랐는데 올해는 퇴비는 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담양 장에서 포트에 담긴 여러 모종들을 샀습니다. 텃밭에 심을 고추는 땡초, 아삭이, 꽈리, 일반 고추로 샀는데, 갈아 엎어 놓은 밭에 며칠 지나 심기로 하고 그늘에 두고 날마다 물을 주고 있답니다. 마디오이와 호박은 당장 심을 수 있으니 대나무와 아치형 철제로 만든 울타리 밑에 심었습니다.
동네 대숲에서 길을 넓히는 공사로 베어진 대나무들을 잔가지들을 쳐내고 가지고 와 대추토마토와 오이가 타고 올라갈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퇴근한 곰순이 이를 보고 너무 높다고 낮추자고 했습니다. 아니, 올해는 위에서 줄을 길게 내려서 해 보자며 설득했겠지요. 다음날 되니 곰순이 아무리 봐도 높다고, 대문에 들어서면 좀 위화감이 든다고.
대부분 곰순이 의견을 따랐던 곰돌이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동안 낮게 해서 줄기들이 좀 빡빡한 감이 있었으니, 올해는 좀 높여서 해 보자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높이 올려서 좀 여유있게 하자고, 많이 열리면 여기저기 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우리 마음대로 하는 거니, 올해는 이렇게 실험을 해 보자고.
며칠 지나면서 보니 높긴 합니다. 멀대같이 높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하고,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듯도 하고. “아내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 했는데, 지금이라도 낮춰야 하나.
장판 새로 깐 정자 신혼방인 듯 간질이더라
귀촌한 지 7년여가 되어 가니 정자 장판도 색이 바래고 비닐이 벗겨졌습니다. 쓸고 닦기를 몇 번이나 해도 비닐 가루들이 묻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어 새 장판을 덧방하기로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쿠션감이 좋아질 것도 같고.
치수를 재고, 주문했더니 이틀만에 택배가 왔습니다. 혼자 들기도 어려운 장판을 둘이서 풀어서 펼쳐 잡고, 귀퉁이를 맞추고, 자르고, 오려내다 보니, 얼추 모양이 나옵니다. 깨끗이 닦는 김에, 겨우내 천장에 묶어 두었던 해먹도 풀어서 먼지를 털기도 하고 찍찍이로 제거도 했습니다.
새로 깐 장판 위에 누워보니 기분이 참, 묘합니다. 흔들거리는 해먹 위로 천장의 철근들, 그 사이로 보이는 넥산 지붕과 그 위의 태양열 전지판. 서늘하니 솔솔 불어오는 바람, 들릴 듯 말 듯 한 댓잎 사각거리는 소리, 눈을 감으면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소리. 등이 간질거리고, 이내 풍덩, 파문이 번지듯 온몸 여기저기 간질거림이 시작되는 게, 꼭 신혼방에 누워 있는 거 같습니다.
냥이 소리에 눈을 뜨니 정자 밑에서 삼이랑 까망이가 간식주라 조르고 있습니다.
3월 봄소식을 알리는 수선화를 시작으로 패모, 팬지가 피어나기 시작했고, 4월에는 철쭉, 제비꽃, 금낭화, 돌단풍, 남경화, 튤립 등이 피어났습니다. 하루하루 갈수록 팬지 꽃잎은 점점 더 커지고, 꽃잎들도 더 많아졌지요. 팬지는 여름까지 가는데, 봄꽃이라며 사온 데이지, 마가렛의 싱싱함이 결코 따라올 수 없는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월. 지금도 절정인 팬지와 페츄니아(페츄니아는 가을까지 가지요)의 화려함을 이을 꽃들이 마당/정원 여기저기에서 준비하고 있는 게 보입니다. 진즉에 피기 시작한 불두화가 날이 갈수록 커다란 눈송이처럼 새하얀 탐스러움이 더해갑니다. 토방 앞쪽과 대문 선반 옆 담장의 장미넝쿨에도 붉고, 하얀 장미꽃들이 한 송이씩 피어나기 시작하고, 붉은병꽃나무와 인동덩굴에서도 작지만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화중지왕’이라는 목단과 그 화려함이 왕(목단) 못지않다는 작약이 살짝, 만지기만 해도 꽃망울을 터트릴 듯합니다. 낮달맞이꽃과 달맞이꽃, 아이리스(붓꽃), 창포, 백합, 클레멘티스, 당아욱, 찔레, 피라칸사스, 수국, 돌철쭉, 맥문동, 바늘꽃, 옥잠화, 자란, 비비추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게 보입니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서운해하고 있는 들꽃들과 들국화를 닮은 고들빼기꽃까지.
새로운 걱정과 기대 속에서도 이렇게 계절의 질서와 리듬은 흘러가고 있으니 여기에 맞추어 꾸준하면서도 일정한 하루하루 삶을 루틴을 정해서 하듯 규칙적으로 반복해야 하겠지요. 육체와 정신과 의지와 감정이 이제 더 이상, 좋았던 그 시절 과거에 머물고 있지 않으니. 역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 ‘10년의 대계’ 그 첫 해 봄, 시작이 좋습니다.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 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