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령사 시선 훔치는 봄의 빛
[김영선 박사의 남도 풀꽃나무] (73) 봄의 대명사 철쭉 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봄꽃
한겨울의 날카로운 찬바람이 지나고 따스한 햇살이 대지를 데우기 시작하면, 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은 봄꽃이다. 그중에서도 철쭉은 산과 들, 도시의 공원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봄의 전령이다. 연분홍, 진분홍, 보랏빛, 때로는 하얀빛으로 피어나는 철쭉은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고, 마음을 열게 한다. 특히 5월 중순 무렵이면 무등산국립공원 서석대 암벽 사이로 산철쭉과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탐방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철쭉의 이름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한자 ‘척촉’은 ‘질척거리며 걷다’ 또는 ‘머뭇거리다’는 뜻으로, 철쭉의 독성 탓에 이를 먹은 동물이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실제로 철쭉의 잎과 꿀에는 그레이아노톡신(grayanotoxin)이라는 독성 물질이 있어, 섭취 시 구토나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다. 이처럼 이름 속에는 식물의 생태적 특성과 인간의 관찰이 담겨 있다. 현재 철쭉은 국외반출 승인대상 식물로 지정되어, 잎 한 장도 정부 허가 없이 해외로 반출할 수 없다.
생태적 특징은 진달래과 진달래속에 속하는 식물로, 주로 산지의 능선이나 숲 가장자리에 자라며 보통 2.5m 정도 성장한다. 이른 봄 새잎이 돋을 무렵 가지 끝에 연분홍색 꽃이 3-7송이씩 우산 모양으로 피고, 꽃 안쪽에는 붉은 갈색 반점이 있어 멋을 더한다. 간혹 흰 꽃이 피기도 하는데, 이를 ‘흰철쭉’이라 부른다. 철쭉꽃은 꿀이 풍부하여 봄철 곤충들의 중요한 먹이가 되며, 군락을 이룬 숲은 다양한 생명의 보금자리가 된다. 한국 원산의 식물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분포하며, 중국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까지 자생지가 확장되어 있다.
철쭉과 혼동되는 꽃으로는 진달래가 있다. 진달래는 잎보다 먼저 꽃이 피며 식용이 가능한 반면, 철쭉은 잎이 난 후 꽃이 피고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다. 꽃의 크기나 잎의 모양에서도 차이를 보이며, 이러한 차이로 인해 옛부터 진달래는 ‘참꽃’, 철쭉은 ‘개꽃’으로 불리며 구분되었다. 철쭉 외에도 산철쭉, 만병초, 흰진달래 등 다양한 진달래속 식물이 존재하며,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총 24종의 진달래속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푸르른 5월, 철쭉이 만개한 무등산국립공원 정상부의 서석대와 최근 상시 개방된 인왕봉 일대는 유난히도 아름답다. 비바람이 심한 아고산 지대에서 철쭉은 높은 활착력과 적응력을 바탕으로 뿌리내리며 독특한 경관을 형성한다. 이곳은 아고산식생(Subalpine vegetation)이 발달한 지역으로, 해발 고도가 높아 저온과 강설, 짧은 생육기간이라는 극한 조건 속에서도 특수한 생존전략을 지닌 식물들이 살아간다. 침엽수림, 왜소한 관목, 고산 야생화 등이 이 지대를 구성하며, 기후변화에 민감하고 고유종 및 희귀종이 다수 서식한다. 아고산 생태계 보호 기능까지 갖춘 이 지역은 보전이 우선인 생태 핵심지대이다.
2023년 9월 23일, 광주광역시와 국립공원공단은 무등산국립공원 정상부 상시개방을 시작했다. 시민의 오랜 염원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그러나 강풍으로 3m 높이의 가림막 시설이 두 차례 파손되었고, 2025년 5월 현재 안전상의 이유로 다시 출입이 제한되었다. 단순한 시설 보완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현재 무등산국립공원 정상부는 천연기념물 서석대와 명승지 인왕봉이 위치한 생태·문화적 보물이다. 이곳에 임시 안전시설만을 설치한 채 상시개방을 지속하는 것은 탐방객의 안전뿐 아니라, 아고산 생태계에도 심각한 위협이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출입 허용'이 아닌, 정상부의 생태복원이다.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당시, 국가는 정상부의 군부대를 이전하고 복원해 광주시민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그 약속을 이행할 시간이다.
철쭉이 만개한 이 계절, 무등산국립공원 정상부는 시민 모두가 안전하고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공공의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등산국립공원은 단지 한 지역의 산이 아니라, 한 세대의 기억이며 다음 세대를 위한 유산이다. 이곳만은 개발이 아닌 보전이 원칙이다. 국가는 이제,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참고 문헌
https://species.nibr.go.kr/index.do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http://www.nature.go.kr/kpni/index.do/ 국가표준식물목록
글·사진= 김영선
환경생태학 박사
광주전남녹색연합 상임대표
코리아생태연구소 부소장
부산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