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만용 교수, 한국 과학과 과학 한국] 우주항공청 개청 1주년
우주로 향하는 한국의 오랜 발걸음
2024년 삼일절에 공개된 SF 영화 ‘우주인’은 체코계 미국인 작가 칼파르시의 소설 <보헤미아 우주인>을 원작으로 한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 전반부에 우주선에서 포착된 낯선 언어가 한국어였냐는 질문과 함께 한국이 우주개발에서 체코를 거의 따라잡았다는 대사가 나온다. 영화 말미에 주인공이 한국 우주선에 의해 구조되었고, 그가 입고 있는 우주복에 ‘대한민국우주협회’라는 마크와 함께 선명한 태극기가 나온다.
한때 할리우드 영화에 한국 자동차가 등장하는 것이 뉴스가 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우주를 다룬 영화에서도 한국이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신기한 마음에 원작 소설을 찾아봤지만, 여기에는 한국 얘기가 없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한국 시장을 염두에 둔 제작사가 추가한 결과이겠지만 한편으로 우주개발에서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우주를 향한 우리의 노력은 상당히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천체 관측 기록이 현재의 초신성 연구에 활용되고 있으며, 18세기에 작성된 ‘성변측후단자’는 혜성 관측 결과를 담고 있어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이는 한국에는 오랫동안 우주를 기록해 온 주목할 만한 공공 관측기록이 있음을 보여준다.
20세기 들어 하늘에 대한 관심은 더욱 전문적 영역이 되었다. 한국 최초의 이학박사는 천문학자 이원철이다. 그는 1926년 독수리자리 에타별에 대한 연구로 미시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해 모교인 연희전문의 교수가 된 이원철은 학교 교육과 YMCA의 대중 강연을 통해 후학들을 천문학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길로 이끈 한국 천문학의 선구자였다.
세계 7번째 미사일 개발국
우주를 향한 여정은 한국 전쟁 이후 로켓 개발 노력으로 이어졌다. 1958년 국방부 과학연구소는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발한 로켓을 시험 발사했으며, 이원철이 초대 학장으로 선임되었던 인하공과대학 학생들은 1960년대에 자체적으로 로켓을 연구하기도 했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큰 화제가 되었고, 이를 생중계할 때 해설자 역할을 했던 천문학자 조경철은 ‘아폴로박사’라는 별명과 함께 이후 과학 대중화에 중요한 인물로 활동했다.
1971년 설립된 국방과학연구소(ADD)는 ‘항공공업육성계획’이라는 위장 명칭 아래 최초의 국산 미사일 백곰 개발을 추진했다. 1978년 성공적인 발사 시험으로 한국은 세계 7번째 미사일 개발국의 자리에 올랐다. 미사일과 우주발사체는 목적이나 기술에서 분명 차이가 있지만, 다단 로켓 설계 등 공유하는 기술도 상당하다. 따라서 사거리를 제한한 한미 미사일 지침과 1980년대 초 ADD 미사일 연구팀의 해체는 한국 우주개발 노력에 큰 난관이 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천문우주를 담당하는 연구소를 세우고 항공우주산업촉진법을 통과시켜 우주개발에 필요한 정책적 토대를 마련했다. 우리의 젊은 과학도들은 영국을 찾아 인공위성 개발 기술을 익혔고, 1992년 한국이 만든 첫 인공위성인 우리별1호가 탄생했다. 이때 익힌 기술을 토대로 이후 연이어 등장한 우리별 시리즈와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의 개발로 한국 위성 기술은 단순한 국가적 자긍심을 넘어 새로운 산업으로 부상했다.
북한의 잇따른 로켓 개발 소식 속에서 한국도 우주발사체 개발에 도전했고, 한국 우주개발의 핵심 자산인 나로우주센터를 건설했다.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두 차례의 발사 실패를 딛고 2013년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인 나로호(KSLV-I)를 우주로 내보냈다. 해외에 나가 위성 개발을 배운 다음 빠르게 학습을 통해 기술 자립을 이루어 자체적인 위성을 개발한 것처럼 한국은 우주발사체도 선진 기술을 재빠르게 습득한 다음 독자적인 기술개발로 나아갔다. 결국 2022년 100% 국내 기술로 개발된 누리호(KSLV-II)를 성공적으로 발사함으로써 한국도 우주개발 기술의 자립 기반을 확보했다. 곧이어 한국의 첫 번째 달 궤도선인 다누리가 4개월의 여정을 거쳐 달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함으로써 이후 달 착륙선 개발의 기반을 마련했다.
2032년 달 착륙 목표 연구 추진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2024년 5월 27일 우주항공 행정을 총괄할 우주항공청(KASA, Korea AeroSpace Administration)이 설립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정부는 매년 5월 27일을 ‘우주항공의 날’로 지정했다. 현재 우주항공청은 누리호의 후속으로, 성능이 3배 이상 향상된 차세대 발사체를 개발하고, 2032년 달 착륙을 목표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NASA를 비롯한 해외 기관과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은 장차 민간 우주 기업을 육성하여 국내 우주 산업의 생태계 조성까지 나아갈 것이다.
사실 우주항공청은 경남 사천이라는 지방에 자리잡고 있고, 신설 기관이기에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다. 많은 과학기술 연구가 그렇지만 특히 우주개발에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우주개발에서 점차 민간의 몫이 늘어가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아직은 우주항공청과 같은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우주개발에 대해 국민들의 동의를 얻는 것도 필수적이다. 우주항공청이 항공우주산업의 발전이라는 기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외에도 할 일이 많다는 뜻이다.
아울러 사천은 관련 인력들이 정주할 수 있는 생활 인프라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1973년부터 건설이 시작된 대덕연구단지도 건설 시작 후 10년 넘게 지날 때까지 제대로 된 거주환경을 갖추지 못해 우수 인력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연구단지 주변이 1993년 대전 엑스포 개최지로 결정되고 도시 인프라 구축을 위한 투자가 이어지면서 1992년에야 준공식을 열었다. 이를 볼 때 수도권에서 더욱 먼 사천에 세워진 우주항공청은 특별한 관심이 없다면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주항공청이 ‘지방소멸’이 현실화되고 있는 한국 상황에서 어떻게 지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랜드마크가 될 것인가라는 측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그러한 기대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국민 모두 각별한 시선을 갖고 항공우주청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문만용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 K-학술확산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