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단의 무늬를 찾는 야생화 기행
[전고필의 터무니를 찾아서] 지리산 야생화 조우기
세상이 모두 연초록으로 변하더니 이제는 푸른색으로 확연하게 물감칠을 한 듯하다. 자연의 손길은 멈추는 법이 없다. 그렇게 꽁꽁 얼었던 겨울도 이제는 잊혀져 버렸고, 눈을 이기고 드러났던 변산바람꽃의 자취도 치밀어 오는 풀들에게 모습을 감춰 버렸다.
바야흐로 여름이 다가오는 듯 반소매 차림의 행인들이 거리를 누비는 계절이다. 지난 5월 8일 해년마다 야생화를 탐하여 모이는 세 명이 이번에는 한 명을 더해 구례의 천은사에서 8시30분에 만났다. 이른 새벽 영암에서 출발하여 조금 일찍 천은사 주차장에 도착한 나는 원교 이광사가 물흐르듯 써낸 일주문의 지리산 천은사라는 현판을 주시했다.
불이 많았던 이 절에 완도 신지도에서 귀양생활을 했던 그분이 글을 주고 나서 더 이상 화마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기에 한 글자 한 글자 더 또렷이 보았다. 절의 내부로 가면 지금쯤 병아리난초가 피어있을 테지만 일행과의 약속시간이 다 되니 일주문과 호수 언저리만 거닐었다. 드디어 랑데부. 한 명이 빠졌다. 맏형이 급한 일로 나중에 홀로 합류하겠다는 전갈이니 우리는 서둘러 성삼재 정상으로 차를 몰았다.
노고단 초입, 야생화와의 첫 인사
문화재 관람료나 국립공원 입장료를 징수하지 않는 고갯길은 가쁜했지만 얼마되지 않은 때까지 늘 찜찜하게 차안에서 비용을 지불해야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터져나왔다. 평일인지라 노고단 초입의 주차장은 한산했다.
등산화의 신발끈을 조이고 이제 본격적인 야생화와의 만남에 돌입한다. 묵직한 캐논 카메라와 접사렌즈가 제 역할을 충분히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가장 먼저 눈앞에 들어온 것은 봄구슬봉이다. 늦가을에 만나는 용담과 비슷하지만 뭉쳐서 피어나며 가지가 옆으로 뻗어가지 않고 외목대에서 피어난다. 그러니만큼 작은 꽃이어도 제법 소담스러워 눈길을 자꾸 유혹하는 특징을 가진다. 구슬봉이 곁은로는 별꽃들이 향연을 벌이고 있다. 하얀 얼굴 위에 연지곤지를 찍은 듯 붉은 점이 인상적이다. 아무래도 벌나비를 끌어들이기 위한 이들만의 선택이 아닌가 싶다.
식물의 일생은 어쩌면 꽃을 피우며 마침내 종자를 얻어내서 종족을 번성시키는 사명에 있지 않는가를 숲길에서 자주 느끼는 바다.
등반로의 한켠에 물고랑이 있는 곳에는 습기가 늘 촉촉하다. 그곳에는 현호색이 당연히 선호하는 자리다. 역시 3월초에 영암에서 만났던 현호색이 5월의 고산지대에서 이제 꽃을 피워올리고 있다. 이런 탐방은 생사에 대한 안부를 묻는 자리이기도 해서 각별하다. 내가 그들에게 묻기도 하지만 이들도 나를 알아봐 주었으면 싶다. 필부에 불과한 인간이지만 해 거르지 않고 그대들과 조우하러 오는 반가운 벗으로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다른 방향의 계곡쪽을 보니 노각나무의 새싹과 층층나무의 새싹이 카메라를 절로 들게 만든다. 그 귀엽고 앙증맞게 올라온 싹은 빛의 각도에 따라 송이눈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제 막 씨방을 박차고 나오는 모종 같아 보인다.
병꽃나무 곁에서 지난 시절 떠올리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칭송을 보내며 걷다보니 곳곳에는 병꽃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런 나무가 있음을 군대시절에 처음 알았으니 그 이전의 시대에 나는 자연에 대해 까막눈이었다. 그저 개천에서 물고기나 잡고, 논에서 피나 제거하는 것 외에는 꽃에 눈길 한번 주지 못하고 20살이 넘어서 버린 것이다.
야생화를 만나게 된 동기가 어느 한라산 산행에서 돌양지꽃의 소담한 아름다움에 취해있을 때 그 이름을 호명해 달라는 또래 손님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 이후부터 부끄러웠고, 군대시절 아예 식물도감을 끼고 살다시피했다. 종과 속에 대한 구분도 못하니 무조건 사진속 그림을 외우는 것으로 시작해서 부대 인근의 야생화를 화단으로 옮겨 심는 것으로 내 여가 시간을 보냈었다. 지금 예순이 곧이니 40여년간을 그렇게 실증도 없이 야생화의 매력에 빠져 이렇듯 야생화 탐방을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제 우리의 걸음은 화엄사로 물을 넘겨주는 무넹기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자연스럽게 습지가 형성되어 있고 동의나물을 비롯해서 산작약도 있는 곳이다. 등산로에서도 노랗게 피어있는 동의나물이 보일 정도니 지리산 등반을 하는 이들중 야생화를 볼줄 아는 이들에게는 약방의 감초와 같이 꼭 들여다 볼 공간이다.
애기똥처럼 그렇게 노랗게 윤기도는 꽃을 지천으로 피워낸 사이로 걸어본다. 멋진 정경 사이로 혼자 자라고 있을 작약의 안부를 물었다. 사라졌다 한다. 누군가가 캐 같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건너온다. 몹쓸 사람. 아무리 약이 되는 식물이라고 하지만 그 한그루가 피워내는 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환호하게 하는지를 앗아간 사람 아닌가. 80년대 말의 지리산이 기억난다. 노고단 근처에는 이곳의 기를 몸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수양자와 도사들이 많았다.
골짝골짝 텐트를 치고 장박을 하며 때론 등산꾼들에게 구걸을 하기도 했던 이들은 생계를 위해 지리산의 산야초를 채집해서 일용품을 구매했던 날들을 보냈다. 국립공원에서 그것이 가능했던 시절은 이후 정해진 야영장이 아니면 투숙할 수 없게 되고, 공원내의 임산물은 일체 채취가 금해졌다. 비로소 국립공원다운 관리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 20여년 밖에 되지 않은 기억이다. 그럼에도 불과 2년 사이에 이런 야비한 일이 벌어지다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한탄과 푸념과 원망을 하다 우리는 무넹기로 물을 보내는 수로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개감채와 괭이눈, 고산의 보석들
개감채라는 야생화를 만나기 위함이다. 영광 불갑사의 숲이 이른 봄 중의무릇을 내어놓는다면 지리산의 고도에서는 개감채를 키워낸다. 부추의 잎 같은 엷은 줄기 위로 꽃대를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여리기 그지없다. 야생의 상황이기에 이해가 되지 집안의 화단이라면 꽃대가 부러질까 키우는 이들이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조금 더 나아가니 이번에는 큰괭이눈이 보석함을 움켜쥐고 있다. 모두들 습한 곳을 좋아하는 식물이다. 이런 고산에서도 군락을 이루고 있으니 외롭지는 않겠다 싶어져 위로가 된다. 이제 등반로 길 위로 올라섰다. 병꽃나무들이 사열하는 가운데 듬성듬성 노랑제비꽃이 피어있다. 늦은 봄의 야생화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한껏 색상을 가다듬는 것 같다. 생식에 대한 강력한 요구들이 냄새와 색상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간혹 고깔제비꽃도 보이고, 족도리풀도 보인다.
길을 걸으며 노고단의 정상 안부를 향함에도 돌 틈이나 나무 사이로 온갖 야생의 것들과 눈을 맞춰 보려는 것이 탐사하는 이들의 동일한 행동이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과 생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이들의 차이는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지만 금방 변별이 된다. 꽃의 주변부가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 사진과 주변부가 어지럽지만 꽃대나 대궁이가 포커싱된 사진이 이를 증명한다. 여러개의 계단을 거쳐 노고단 대피소에 이르렀다.
노고단 정상, 진달래와 꽃마리의 향연
진달래꽃이 만개해 있다. 3월에 만나는 진달래가 이곳에서는 5월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아고산대라 칭하는 고산지역의 특징이다. 물론 일반 진달래는 아니고 털진달래라고 불리는 종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노고단 정상으로 오르는 길, 어여쁜 꽃마리가 반겨주고 있다. 꽃대끝이 말아져서 피어난 꽃이라 꽃마리인데, 선분홍빛의 꽃받침에 화룡점정처럼 노란 꽃이 중앙부에 있다. 농가에서도 흔하게 만나는 풀인데 꽃받침이 대부분 하늘색인데, 이곳 지리산의 것은 큰꽃마리 혹은 참꽃마리라고 부른다. 반갑게 마주하다 먼저 간 일행을 보니 뒷 못모습이 고산의 동굴 터널을 지나가는 듯하다.
멋진 정경에 뒷 모습만 사진에 담고 이제 고갯마루에 들어섰다. 돼지평전, 임걸령으로 가는 길 20미터만 가면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꽃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처녀치마. 하지만 이 친구는 30여년전 철원에서 만났던 그 꽃과는 좀 다르다. 숙은처녀치마라고 불리는 종이다. 상록식물인 처녀치마는 땅에 닿아있는 잎이 여인들이 입은 치마와 같아서 붙여진 것이고, 숙은이라는 말에는 수그리고 있다를 뜻한다. 이유없이 이름을 붙이진 않았던 옛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이런 식물의 이름에도 전해져 온다.
고산지대의 철쭉과 참나무 사이에 이끼가 물을 머금고 있는 자리를 이들이 생육지로 하고 있다. 마치 성지순례를 하는 듯 나는 이곳을 찾는데 정성을 기울인다. 5월초 이꽃이 왕성하게 만개할 무렵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언덕사면에 몸을 기대고 한컷 한컷 정성을 기울여 카메라에 담았다. 마치 다시는 만나지 못할 누군가의 장수사진을 찍는 것처럼 말이다. 한참의 시간을 뒹굴다 허기를 참지 못해 다시 고갯마루로 올랐다.
노고단의 환호, 미세한 무늬의 감동
노고단 정상으로 가는 길, 진달래꽃의 군집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솟구친다. 이렇게 아름다운 대자연의 일부가 되었다는 감동을 그들은 참아내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들이 거대한 산릉을 만날 때 나와 벗들은 아주 미세한 산의 무늬들을 만났다. 김밥 한 줄을 먹고 있으니 큰형이 불쑥 나타난다. 나는 영암으로 내려오고, 형은 늦었으니 더 많은 것을 보겠다는 말씀을 끝으로 나의 산행은 종결 지었다.
글·사진=전고필(여행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