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짱(長)’들의 개인기 리더십 이면

2025-07-04     채정희 기자
채정희 편집국장.

 광주엔 ‘행정의 달인’이라는 시장이 몇몇 있었다. 강운태 전 시장도 그 중 한 명이다. 김영삼·김대중 정부에 걸쳐 두 차례 장관을 지냈고 국회의원 재선 이력이니, 유권자들이 광주 발전에 건 기대감이 컸다. 그 시절 크고 굵직한 사업들이 진행됐지만 눈에 띄지 않아 흐릿하다. 오히려 ‘희대의 사기극’이라는 오명을 남긴 ‘갬코’ 사태가 더 각인돼 있다.

 ‘행정의 달인’이란 별칭은 칭송이기도 하고, 반대이기도 했다.

 재임 당시 강 시장은 금요일마다 순회하며 주민들과 대화 마당을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상당수 민원을 속속 해결해줬다. ‘달인’답게.

 후폭풍이 있었다. 본보 취재에 따르면 당시 민원인들은 공무원들에게 노골적인 냉대를 서슴지 않았다. “니들 필요없어. 시장 만나면 다 해결된다”는 식이랄까. 법과 제도를 금과옥조로 민원 해결 시 몸을 사렸던 공무원들이 주된 타깃이었다.

 단체장을 임명에서 선거로 바꾼 지방자치제도의 본령이 제도와 규범에 얽매이지 말고 유권자인 주민 한 사람 한 사람 말에 귀 기울이라는 것이니, 강 시장의 ‘달인급’ 행정은 그 취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리더십 관점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리더가 개인기에 의존해 행정 시스템을 스스로 무력화했다’는 지적이다.

 ‘행정의 달인’ 이라는 그를 향해 내부에선 “강 주사(하위직 공무원)”라고 뒷담화했으니, ‘리더십’의 본질을 곱씹어 보게 되는 일화다.

 광주 타운홀 미팅 후폭풍

 지난달 25일 광주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타운홀 미팅 후폭풍이 거세다. “광주·전남지역 단체장들이 준비가 부족해 차려진 밥상도 걷어찼다”라는 비판이 대세인 듯 하다.

 이 자리에선 광주·전남지역 최대 현안인 군공항 이전 문제가 주요하게 논의됐다. ‘구성원들이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회의’라는 형식에 맞게 대체로 격의 없이 의견이 오고 간 자리였다. 이날 미팅엔 대통령과 광주 전남 광역·기초단체장, 국회의원,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당시 광주·전남 일부 단체장들이 “무능”으로 낙인찍힌 건 이 대통령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게 컸다. 대통령은 “광주와 전남이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지, 어떻게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이 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과 청사진”을 물었다. ‘말만 하면 다 해주겠다’는 뉘앙스였다. 그러나 시·도지사의 발언은 총론에만 머물렀고, 급기야 대통령으로부터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업 계획서처럼 명확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달라”는 추궁(?)을 당해야 했다.

 광주·전남지역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선물’을 주겠다는데, 그 ‘무엇’을 제시하지 못하니 보는 이들이 답답해 했다. 전국에 생중계된 이날 타운홀 미팅의 뒤끝은 시·도 단체장에게 작렬했다. AI 중심도시 핵심 인프라 유치나 국립대 의대 유치 등 광주·전남이 그토록 갈구했던 보따리를 풀어보지도 못했냐?는 것이다. 광주시장·전남지사를 향해 “준비 부족”, 나아가 “무능”이라는 혹평이 이어졌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반대로, 정부는 준비돼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백년지대계’라고 할 지역 개발 전략이 선물 주고받듯 결정돼도 되는 건가?라는 ‘시스템 일탈’에 대한 우려다.

 그날의 타운홀 미팅은 이재명과 강기정, 김영록, 김산의 개인기 경연장으로 각인됐다. 정부와 광주시, 전남도, 무안군이라는 공적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한 탓이다.

 이날 대통령이 주문했던 ‘광주·전남이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한 전략은 지자체라는 공적 시스템이 심도 있게 고민해 발굴하고, 정부가 미래 전략 차원에서 취사·선택해야 할 중차대한 작업이다.

 이미 지난 대선 국면에서 이와 같은 고민의 결과물이 ‘지역 공약’이라는 타이틀로 제안되고, 민주당 그리고 이재명 후보가 채택한 바 있다. 현재는 인수위격인 국정기획위원회가 이재명 정부 국정 과제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정 프로세스가 작동하고 있는 바, 리더의 개인기 따라 좌우될 단계는 이미 넘어선 것이다.

 조직이 일하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

 개인기 리더십의 한계는 명확하다. 왕정시대가 딱 그랬다. 요행히 유능한 왕을 만나면 백성은 태평성대를 누렸겠으나 때론 폭군이 나와 삶이 참혹 지경이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와 같은 백성들의 ‘복불복’ 시대를 타파한 게 현대의 공화정이다. 리더의 개인기가 아닌 시스템 국정으로의 전환인 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개인기 리더십의 폐해를 목도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비상계엄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윤석열 리더십에서 극명하게 체감한 바 있지 않는가.

 새 정부 한 달, ‘허니문’이라고 하나 지지자들 사이 찬양 수준인 ‘대통령 찬가’가 왕권 시대 버금이어서 우려스럽다. 개인기 리더십을 부추길 수 있어서다.

 이재명·강기정·김영록·김산이 아닌, 정부·광주시·전남도·무안군이 작동해야 한다.

 조직이 일하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 그것이 진짜 리더십이다.

  채정희 편집국장 goodi@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