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꼬집기] 읽는 도시를 넘어, 쓰는 도시 광주로

2025-07-07     이명노
이명노 광주광역시의원.

 한강 작가의 북카페 조성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한강 작가 노벨상의 쾌거에 너무나도 기뻤고, 이 기회가 얼마나 큰지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삭감을 주장했다. 그저 한두 해 사진 찍기 적당한 스팟으로 전락하길 원치 않아서, 제대로 된 사업을 요구하는 바람이었다.

 광주시는 한강 작가의 어릴 적 거주지를 매입해 기념 사업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했으나, 현재 소유자의 매도 의사가 없어 인접 부지를 매입하고 사업을 준비했다. 25미터 떨어진 나대지를 찾았고, 당초 예정지의 감정가에 상응하는 예비비를 들여 토지를 매입했다. 지금은 인조잔디 매트와 컨테이너 하나 덩그러니 놓인 공간으로, “골목길 문화사랑방”이라는 십수억의 건물이 들어서길 기다리는 참이었다. 

 한강 북카페 예산 삭감한 까닭

 “한강 북카페”라는 이름을 당당히 걸지 못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한강·한승원 작가 부녀는 여느 기념 사업처럼 이름값에 편승하는 이미지를 소모하는 사업을 원치 않았다. 다만 인문학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정책들을 반기는 뉘앙스를 비쳤을 뿐이다. 시는 이를 인지하고, 표면적으로는 한강을 숨기되 내용적으로는 한강을 담은 사업을 기획했던 것이다.

 2022년 개관한 중흥도서관과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공간, 한강 작가의 어릴 적 거주지도 아닌 그곳과 그저 가깝기만 한 개연성 없는 공간에 우리 시는 한강의 이름도 걸지 못하는 공간 조성 사업으로 광주를 한강의 도시로 만들고자 했다.

 광주가 아닌 어디라도 괜찮으니 제2의 한강이 나오길 바란다. 노벨문학상의 영예가 앞으로도 이어져,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이 세계적으로 평가받길 희망한다.

 그래서 대안을 제시했다. 독립서점 책방지기 몇분으로부터 받은 자문과 고민을 토대로, 광주를 ‘읽는 도시’를 넘어 ‘쓰는 도시’로 만들어 보자는 제안이었다. 실제 노벨문학상 작품이 쓰였고, 그런 영감을 준 도시가 광주인 거지, 시민들이 『소년이 온다』를 많이 읽어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게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쓰는 도시 광주’의 내용은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다. 출판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 지망생들을 지원하는 사업, 시민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도록 컨설팅해 주는 사업, 전국·세계 규모의 한강 문학대회(문학상), 우수 작품 출판 지원, 출판 박물관 또는 출판 테마 도서관 건립 등. 거기에 덧붙여 “책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광주로 오세요.”라는 등 건설적인 메시지도 더해봄직하다.

 실제 우리 광주는 1980년 5월 비상계엄 속 출판과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던 시기에도, 진실을 알리기 위해 지하실에 숨어 전단과 호외를 찍어 낸 역사를 가진 도시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도 공공의 역할로 만들어진출판 박물관이 없는 걸 알고 있다면, 고문헌과 사료들을 수집해 그것을 기리는 것의 가치는 기대해 볼만하다. 옛 팔만대장경을 보존한 것과 같은 역사를 새로 만드는 길이 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정책은 역사를 기억하고 미래를 봐야

 이번 예산 전액 삭감에 대해, 광주시는 시정 전반에 대해 조금 더 진중히 고민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정책은 역사를 기억하고 미래를 봐야 한다. 그 역사를 상업적으로 접근한다면 딱 그 정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미래를 그리는 일로 접근한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을 1980년 광주가 살린 것 같은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의 인생은 표현하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쓰여지지 않은 책이 무궁무진하다. 그 책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일, 그리고 그걸 거들어 줄 수 있는 도시 광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제안은 충분히 전해 보았다. 페이스북과 기사 댓글에 수많은 공감이 있었던 만큼, 앞으로 이 제안을 구체화할 포럼 등을 열어 ‘쓰는 도시’의 정체성을 강화해 볼 생각이다. 이제 받아들일지 말지는 어디까지나 행정 지도부에 맡겨진 일이다. 노벨문학상 이후의 광주, 어떤 도시로 만들고 싶은가.

 이명노 광주광역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