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기간·날씨 고려 ‘평범’ 수준으로
[좌충우돌 중국차(茶)] (76) 중국 황제는 어떤 등급 차를 마셨을까?
중국에서 진시황 이후로 역사의 흐름과 함께 명멸해간 역대 왕조와 많은 황제들 가운데서 우리가 생각하는 차와 비슷한 형태의 음료를 마셨던 왕조는 송·원·명·청 이렇게 네 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원나라는 워낙 짧았던 시기라 실질적으로는 송·명·청의 세 개 왕조뿐이었다.
우리 머릿속에서 황제하면 떠오르는 인상은 무엇인가? 사극에서 자주 보던 모습 가운데서 현대와 가장 가까운 청나라의 황제 모습을 상상하자면, 다섯 개의 발톱을 가진 용이 새겨진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문무백관을 호령하며, 자기들의 고향인 만주와 한족의 음식 108가지를 한 자리에 모아 놓은 만한전석(滿漢全席)의 산해진미를 맛보며 사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기에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라 칭하던 역대의 중국 황제들이 어떠한 차를 마셨는지를 알고 넘어가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이다.
먼저 차는 아니지만 차라는 이름을 달고 행해졌던 “청차(淸茶)”라 불리던 황실의 예법이 있었다. 황제가 궁중에서 신하들을 모아 놓고 베푸는 연회에서는 맨 처음 맑은 물 한 잔이 올라왔다. 이를 청차라 불렀으며 이는 황제와 함께하는 엄격함이 요구되는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궁중의 미주가효(美酒佳肴)에 넋이 빠져 과도한 음주로 주사라도 부리는 날에는 “그 목이 몸에서 분리되어 먼 길을 떠날 수”도 있음을 미리 경계하라는 뜻이다. 차가 아닌 것을 차로 부르며 신하들에게 미리 한잔의 물을 마시게 함으로써 경각심을 잃지 않도록 주의를 다진 사례이다.
사진의 그림 속에 들어있는 화제(畫題)는 소동파의 시에서 따온 “춘강수난압선지春江水暖鴨先知”이다. 내친김에 시를 감상해 보자.
惠崇春江晩景 (혜숭춘강만경) 혜숭이 그린 봄 강 저물녘의 정경) 蘇東坡 (소동파)
外桃花三兩枝 (죽외도화삼량지) 대나무 숲 밖으로 복숭아꽃 두세 가지 나와 있고,
春江水暖鴨先知 (춘강수난압선지) 봄 강물이 따뜻하다는 것을 오리가 먼저 아네.
萋蒿滿地蘆芽短 (처호만지노아단) 물쑥이 온 땅에 가득하고 갈대 싹 짧으니,
正是河豚欲上時 (정시하돈욕상시) 마침 복어가 바다에서 올라오기 시작할 때라네.
그렇다면 당시 황제가 일용하던 차는 어떤 등급이었을까? 논리적으로 사유해 보자면 최고 등급의 차는 날씨로 일컬어지는 하늘이 도와줘야 하고, 또 아주 적은 양의 찻잎밖에 없기에 만드는 사람에게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이 안 되는 조건이 붙는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다. 어느 과정에선가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일 것이고, 그 차를 만드는 전체 과정을 관리 감독해야 할 책임을 진 관리 이하 제다 기술자와 차를 북경까지 운송하는 운반공 등의 목이 걸려있는 문제이지 않겠는가? “어느 누가 감히 자기 목숨과 차를 바꾸려 들겠는가?”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이때 오로지 그들이 궁리하는 것은 날씨가 좀 안 좋아도 그만그만한 맛을 낼 수가 있고, 차를 만들 적에 작은 실수를 범했다손 치더라도 그 등급의 찻잎을 다시 구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정답은 바로 중간 정도가 되는 등급의 차를 바치면 어떤 기후조건에도, 혹은 어떤 기술자가 만들어도 그 맛과 향의 차이는 크지 않았기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훌륭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앞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차를 발효 정도로 나눈 6대 차류의 체계적인 분류법이 완성된 시기는 청나라 시대였다. 따라서 청대의 제다법은 현대사회의 제다법과 일맥상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청나라의 역대 12대 황제 가운데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강희제(姜熙齊), 옹정제(雍正帝), 건륭제(乾隆帝) 3대에 걸친 치세를 꼽을 수 있다. 그 가운데서 건륭제(乾隆帝)는 25세에 황제로 등극하여 한 사람의 생애라고도 할 수 있는 60년의 재위 기간에 걸쳐 여섯 차례나 북경에서 항주까지의 강남 순행을 떠날 정도로 차를 즐겨하던 황제였다.
이런 건륭제에게 보통 등급의 녹차를 바치자니 황제가 마뜩치않아 할 것은 자명하였다. 이에 다시 머리를 짜낸 결과는 화차(花茶)였다. 사실 녹차의 경우 등급뿐만 아니라, 차가 생산되는 강남에서 황제가 있는 북경까지는 아무리 말을 재촉해 달려도 한 달이나 소요되는 거리였다. 설상가상으로 이 계절은 점점 여름으로 날씨가 바뀌어가니 차를 배달하는 사람은 그 품질이 변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화차의 경우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맛과 향이 크게 변하지 않는 장점이 있었기에 황제에게 진상하기로 무난했던 제품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황제가 마시는 차가 실상은 평범한 등급이었고, 보통의 차였다는 것도 의외이기도 하지만, 결국 황제도 우리 사는 세상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류광일(덕생연차관 원장)
류광일 원장은 어려서 읽은 이백의 시를 계기로 중국문화에 심취했다. 2005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사범대학에 재학하면서 덕생연차관 주덕생 선생을 만나 2014년 귀국 때까지 차를 사사받았다. 2012년 중국다예사 자격을, 2013년 고급차엽심평사 자격을 취득했다. 담양 창평면에서 다향을 내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