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꼬집기] 민생회복 지원금, 정치 아닌 생존의 문제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마음이 서늘해진다. 불이 꺼진 상점, ‘임대’라는 붉은 글씨가 붙은 문, 한때 북적이던 식당 앞에 길게 드리워진 정적. 퇴근길에 불빛이 꺼진 채 방치된 채소 가게를 지나고, 주말 오후마저 썰렁한 카페 앞을 스치다 보면, 단순한 경기 지표나 통계보다 훨씬 피부로 다가오는 현실의 체감지수가 있다. 코로나라는 긴 그림자가 걷힌 지 벌써 2년이 훌쩍 지났지만 골목 경제는 여전히 깊은숨을 쉬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전 국민에게 지급되기 시작한 민생회복 지원금이 화제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만나면 서로 지원금을 받았느냐고 묻곤 한다. 정치권에서는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는 반면 경기 부양책이라는 옹호도 뒤섞여 소란스럽다.
그러나 실제로 거리 한 번만 걸어보면 이 돈이 단순한 정치적 치장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골목 상권에서는 벌써 민생회복 지원금의 효과가 나타난다고 박수치는 사람도 있다. 이걸 보면, 여유 없이 버티는 사람들에게는 표심을 얻기 위한 잔잔한 이벤트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견디기 위한 최소한의 숨구멍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돈의 방향은 결국 사람이다. 지원금을 받은 사람들은 그간 미뤄두었던 외식을 한다. 아이 손을 잡고 치킨 집으로 향하기도 하고 주말에 가족끼리 국밥집에 앉아 따끈한 한 끼를 해결한다. 누군가는 동네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다듬고, 다른 이는 낡아 빠진 가방 대신 아이 학용품을 사 들고 나온다. 이렇게 흘러 나간 몇만 원이 작은 가게의 매출을 만들고, 그 매출이 또 다른 누군가의 버팀목이 된다. 경제학의 거창한 용어를 빌리지 않아도, 돈이 돌기 시작하면 생기는 온기는 지역 상권의 숨결을 되살린다.
자영업자들은 말한다. “손님이 하루 다섯 팀만 늘어도 숨통이 트인다”고. 그 다섯 팀이 바로 지원금으로 움직인 발걸음일 수 있다. 온라인 주문이 편하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동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주는 것, 식당 사장님과 눈을 마주치며 따듯한 한마디를 건네는 것, 이런 사소한 선택들이 골목 경제에는 약이 된다.
물론 지원금이 한 번의 처방으로 모든 상처를 낫게 할 수는 없다. 당장의 경기 침체를 돌려세울 마법의 열쇠도 아니다. 하지만 물이 끊기면 논은 금세 메마르듯, 지금 같은 상황에서 돈의 흐름이 완전히 마르면 서민 경제는 더 이상 버틸 힘조차 잃는다. 민생회복 지원금은 최소한 그 흐름을 잇는 마중물이다. 작은 물줄기라도 한 번 터져야 다음 비가 올 때 논이 숨을 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원금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결국 시민들의 선택이 중요하다. 대형 플랫폼에서 클릭 한 번으로 살 수도 있지만, 조금은 번거로워도 동네 가게를 찾아가서 물건을 사는 선택이 필요하다. 프랜차이즈보다 동네 식당을 먼저 떠올리고, 대형마트 대신 동네 슈퍼에서 장을 보는 마음이 모이면 이 작은 돈은 두 배, 세 배의 힘을 갖게 된다. 그렇게 쓰인 돈은 지역 안에서 다시 돌고, 또 다른 가게와 일자리를 살리는 씨앗이 된다.
민생지원금은 결국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정치 공방을 떠나 이번 지원금이 꺼져가는 상권에 한 줌의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쓰는 그 돈이 곧 우리 곁의 삶을 살려내는 숨결이 되길 간절히 기대한다.
김봉철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