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걸음으로

[작은책방 우리책들] 공 좀 주워주세요(2022, 북극곰)

2025-07-28     호수
공 좀 주워주세요(2022, 북극곰).

 어떤 우화들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토끼와 거북이 또한 그러한 우화 중 하나다. 느리지만 꾸준히, 열심히 목표에 임하는 거북이와 게으른 토끼를 보여주며 삶의 미덕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교훈을 담고 있다. 치야다 작가의 ‘공 좀 주워주세요’(2022, 북극곰)는 이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비틀어 새로이 바꾼 동화다.

 파란 토끼는 새 공을 샀다. 하루종일 그 공을 가지고 놀려고 했는데… 앗! 하고 놀라는 사이 공이 담벼락 밑으로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내려가는 길은 너무 멀고, 귀찮다. 파란 토끼는 누군가 담벼락 아래를 지나면서 공을 주워다 주기를 바라게 된다. 그 때 느릿느릿 보행기를 끌고 거북이 할아버지가 나타난다.

 할아버지, 공 좀 주워 주세요!

 뭐라고?

 공 좀 주워 달라고요.

 뭐, 곰이 온다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공 좀 주워주세요’ 중에서.

 거북이 할아버지는 아주아주 천천히 걷는다. 그가 페이지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많은 행인들이 오간다. 병아리 꼬마, 사자 청년, 기린 아줌마, 코뿔소, 하마, 그리고 악어 군인까지. 그들은 모두 파란 토끼에게 공을 전해주려다 실패한다. 공 대신 신발을 벗어던지기도 하고, 실수로 앞서가던 거북이 할아버지를 맞춰 모자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담벼락 위까지는 다다랐지만 파란 토끼를 맞추고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게끔 하기도 할 뿐이다.

 결국 누구에게도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한 토끼는 직접 담벼락 아래로 내려가기로 한다.

 흥!

 정말 아무도 도움이 안 돼요.

 내려가는 길은 너무너무 멀어요.

 그리고 사실은….

 너무너무 귀찮아요!

 ‘공 좀 주워주세요’ 중에서.

 하지만 담벼락 아래에 공은 없었다! 어디 갔는지 찾는 와중 거북이 할아버지는 어느새 담벼락 위로 올라가 계신다. 누가 가져갔을까, 구덩이에 빠졌을까, 토끼가 헤매는 와중 담벼락 위에 올라간 거북이 할아버지가 공을 발견한다. 군인들이 발로 차 올려줬을 때 수풀에 들어갔던 것이다. 영영 공을 못 찾을 것 같아서 상심한 토끼에게 이내 공이 굴러온다. “내 공이다! 그런데 너 어디 있었니? 이제 집에 가자.” 거북이 할아버지는 한마디 감사인사도 받지 않은 채 천천히, 천천히 걸어서 제 갈 길을 가신다. 달빛은 아까 떨어졌던 거북이 할아버지의 모자만을 비춘다.

 그리고 새벽 지나 아침, 해가 뜰 즈음, 거북이 할아버지는 다시 담벼락 밑으로 향해 모자를 주워올린다. “휴, 여기 있었군! 이제 집에 가자.” 땀 흘리는 거북이 할아버지가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모습은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그냥 들었을 때보다 더한 울림을 준다.

 ‘공 좀 주워주세요’는 토끼를 악역으로, 거북이를 선역으로 간단히 두지 않는다. 토끼는 공감할 수 있을 많큼 귀찮아하고 게으름을 피운다. 스스로 움직이는 데에 성공하지만 결국은 거북이의 조용한 도움을 받아 공을 찾게 된다. 거북이는 어떠한가. 토끼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다른 동물들이 공을 찰 때 괜히 그것에 얻어맞기도 한다. 이런 부분들이 있음에도 아주 느리게, 아주 힘겹게 움직여서 토끼의 공을 찾아준 것으로도 모자라, 잃어버렸던 모자까지 다시 찾는다. 거북이는 꾸준하고, 불평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때 해가 뜬다. 그 아름다운 순간을 토끼는 보지 못할테지만, 또 모를 일이다. 나이 든 토끼에게도 그런 순간이 다가올지.

 문의 062-954-9420

 호수(동네책방 ‘숨’ 책방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