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광주 퀴어 동사무소 에세이] 광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 ‘써머’ 님

2025-07-28     석영

 성소수자는 여기에도,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연재는 광주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과 목소리를 조명합니다.

 연재의 타이틀인 ‘퀴어 동사무소’는 퀴어 시민이 지역사회에서 ‘보이는 존재’로 자리 잡고, 목소리를 내며, 서로를 기록하고 돌보는 공공 공간을 상상하는 의미입니다. 성소수자들은 단순한 정체성 이상의 존재이며, 다양한 차별과 연대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이 에세이들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또 누군가에겐 이해와 변화의 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광주 퀴어 동사무소 에세이, 이번 회차에서는 광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이며, 연구자이며, 즐겁고도 유익한 활동을 기획하시는 써머 님을 만나봅니다. 소개를 부탁드려요.

 △ 안녕하세요, 광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써머입니다. 반갑습니다:) 성격은 계속 바뀌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알파벳 네 개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겠지만… MBTI로 소개하면 깔끔하겠죠? INTJ입니다. 지금의 저를 표현하기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대학원에서 지리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대학원에 진학하자고 결심한 계기는 사회학 수업을 들으면서입니다. (하하) 지식사회학 수업을 재미있게 들으면서 당연하게 보이는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 시각과 접근 자체에 흥미를 느꼈어요. 몇몇 이론과 이론가들에 엄청나게 매료되기도 했었고요. 하여튼 사회학을 열심히 공부하다, 어찌저찌 제 주전공이었던 지리학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리학이라고 하면 지도나 자연, 혹은 풍수지리(?!)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사실 지리학에서는 엄청나게 다양한 것들을 다룹니다! 공간과 장소에 대한 학문이라고 하면 이해될까요? 지금은 현장을 중심으로 철학-사회학-인류학-과학학을 횡단하는 인문학적 연구를 하고 있어요.

 -연구 이야기만 해도 관심사가 폭넓으시다는 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세상의 일부만 잘라서 들여다보게 되기 쉽지만, 세상 모든 것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니 그 연결을 무시할 수 없을 텐데요. 써머님의 관심사들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저는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이라 특히나 먹는 것에 관심이 많은데요,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식재료를 배송해주는 채소 박스를 구독하고 있어요. 직접 장보기에는 너무 바쁘기도 하고 1인 가구라 다양한 채소를 구매하는 것도 부담스럽거든요. 채소 박스를 구독하니까 비건 하기가 너무 용이해진 것 같아 만족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배달 음식도 한 달에 한두 번 시켜 먹을까 말까 해요. 아직 모종을 심지는 못했지만(곧 심어야만 함) 생태 텃밭 분양을 받아서 열심히 가꿔 보려고 하고 있어요.

 비건 외에도 성소수자 인권, 페미니즘,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기본적으로 저는 페미니스트고,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모든 존재들의 권리와 해방을 위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이 모든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또 지역에서 벌어지는 미시적인 실천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광주퀴어문화축제에 함께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서울,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문가, 고등교육기관, 정부 등 ‘위’나 ‘중심’으로부터의 것, 주류 권력에 대한 저항감이기도 해요. 저는 언제나 큰 것을 바꾸기보다 작은 공동체들과 틈새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그렇게 작은 공동체를 만들고 주류 권력에 틈새를 만드는 일을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권력에 의한 혐오와 차별에 관련된 경험이나 생각도 궁금합니다.

 △ 매일 혐오와 차별을 확인해요.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학생 때 일이에요. 저는 여고를 나왔는데, 친한 친구들이 “여고에는 레즈가 많대”, “내 주변에는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서 별 다른 대처를 하지 못했어요. 당시에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던 터라, 오히려 동조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제가 학교를 다닐 때 광주에서는 ‘인권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민주화’의 성과를 전달하는 데 상당히 치우쳤던 기억이 나요. 학생들도 권리에 대한 비대칭적인 지식을 가지게 되는 거죠. 성 정체성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정보를 파편적으로 접하고 그에 대한 왜곡된 신념과 인상을 가지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었고, 제가 경험했던 일은 그 결과였던 것 같아요. 제 주위에의 퀴어·앨라이들도 청소년기에 SNS를 통해서 퀴어에 대한 지식을 접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성인이 되고 난 후 대학 사회에서 관련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알고 있어요. 참 문제라고 생각해요.

 학부 때에는 대학 성소수자인권모임에 가입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의식적으로 스스로 ‘인권운동’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좀 어색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 밖에도 ‘동물권 운동’, ‘여성 운동’이라고 생각되는 활동들을 기획해 왔는데요, 모두 엄청난 책임감이나 당사자성을 계기로 시작한 것들은 아니었거든요. 내가 여성이자 성소수자이고, 지구공동체의 일원이면서 이들의 권리가 신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제 활동의 동력은 아니었습니다. 저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은 ‘재미’에요. 마침 제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활동의 공통점이 권리, 환경 의제였던 거죠. 또 운 좋게도 저는 가족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소수자와 권리 의제에 친화적인 집단에서 지내 왔고, 관련된 이야기를 비장하게 꺼내놓지 않아도 되는 집단의 일원이었던 점도 제가 권리 활동에 쉽게 뛰어들 수 있도록 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앞에서 생태 텃밭을 가꾸려 하신다고 얘기해주셨는데, 써머님이 생태 텃밭을 가꾸시면서 또 무엇을 느끼고, 텃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른 의제에 어떻게 연결하게 되실지 궁금합니다. 계획하고 계신 미래의 활동은 어떤 것들인가요?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기를 바라시나요?

 △ 어떤 권리에 대한 이슈이든 다양한 주제, 활동과 접합했을 때 더 풍성한 논의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경로로 성소수자 권리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도 있고요. 틀에 갇히지 않는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중에서도 제가 기획자를 맡게 된다면 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일회성보다는 중장기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안전은 당연하거니와 대안적인 공간을 만들어 보는 일에요. 예를 들어 아마추어 퀴어 창작 공동체를 만들어서 기획부터 전시까지 협업을 통해 성취해보는 일일 수 있고요, 자잘하게는 함께 밥도 지어 먹고 소소한 일상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더링의 형태일 수도 있겠죠.

 제가 바라는 세상은 ‘주눅 들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차이가 차별이, 혐오가 되는 세상에서 소수자들은 주눅들 수밖에 없어요. 자꾸만 포기하게 되죠. 포기하는 이유가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장애인이기 때문에,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에, 저소득층이기 때문에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강제성 있는 법적 제도와 복지 정책같은 구조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저는 담론 자체를 바꾸는 일이 절실하다고 봐요. 단순히 머리로 안다고 해서,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바뀌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광주퀴어문화축제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방된 공간에서 존재를 드러내고, 거리를 점유하고, 당사자는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드러내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문제 상황’과 직접 대면하고 마찰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외부에 의한 강제가 아니라 몸으로 획득하는 앎, ‘체현’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당사자에게도, 연대인 또는 그 밖의 존재들에게도 전환을 위한 Baby Steps인거죠.

 -내가 내게 관련된 일들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그 결정이 존중되도록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 뿐 아니라 담론, 개인의 생각을 바꾸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주의깊게 여겨야겠습니다. 써머 님이 기획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즐거움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해내는 체험을 하고, 그것이 참여자들의 삶에 연결되기를, 그리하여 그 삶들이 ‘주눅 들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세상’을 함께 가꾸어낼 수 있게 되기를 바라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석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