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 현장] 젖병 세척기 파손 유해성 논란
“제품 내부 흰색 분말 묻어나온다” 불안 일부 부모들 “미세 플라스틱 의심…아이 건강 걱정” “일부 제조사, 하자 인정했지만 구체적인 조치 없어” 국가기술표준원 “인증 기준 없어 안정성 평가 협의중”
시중에 판매된 ‘유아용 젖병 세척기’에서 미세 플라스틱으로 의심되는 이물질이 잇따라 발견되자, 광주·전남지역 부모들의 불안감도 커져가고 있다.
본보에 이같은 사실을 제보한 복수의 부모는 “세척기를 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젖병 근처에 회색 가루가 묻은 걸 발견했다. 제품을 열었더니, 긁히거나 마모된 흔적이 있었다”며 “업체는 특정 기간에 구매한 제품만 환불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투명한 조사도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제조사 A 업체는 “물을 사용하는 제품은 주기적인 청소·관리가 필요하고, 조사 결과 미세 플라스틱이 아닌, 분유 찌꺼기나 부유물로 확인된다”며 “사용에 불안한 고객에 한해서는 제품 일부를 교체하겠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제조사 B 업체는 “지난 2024년 12월부터 생산된 제품이 사출 성형되는 과정에서 내부 제품이 파손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불편을 겪은 소비자에게 깊은 사과를 드린다”며 “파손이 확인된 제품(거치대)은 수급하는 대로 환불 또는 교환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본보 취재 결과, 현재까지 제조사의 브랜드 2곳을 사용해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은 7월 26일 기준, 약 3600명이다.
광주, 전남 광양·담양뿐만 아니라 서울, 부산, 포항 등 전국에서 피해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한목소리로 주장하는 대표적인 제품 하자는 △‘내부 PP 플라스틱’ 부품 마모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회색 분말과 조각, 부스러지는 현상 △젖병 거치대 손상 및 마모 △열탕 소독 시 발생하는 플라스틱 실타래(플라스틱 섬유질 추정) 등이다.
전남 광양에 거주하는 이혜린(31) 씨도 피해 호소인 중 한 명이다. 이 씨가 처음 세척기를 사용한 건 지난해 8월 말, 출산하고 조리원에서 옮긴 직후다.
“젖병 세척이 쉽고,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온라인 광고를 보고 구매한 이 씨는 어느 날 세척기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세척한 젖병 입구에 흰색 가루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처음에는 유아 전용 세제가 잘 닦이지 않아 묻은 줄 알았다. 그래서 세제를 쓰지 않고, 사용했는데도 여전히 가루가 묻어 있었다”며 “이후 젖병을 삶는 열탕 소독용으로만 썼는데도 가루가 나와 제품을 열어 보니, 작대기처럼 보이는 부품에 뭔가 녹아 있었고, 안쪽이 긁힌 흔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상함을 느낀 이 씨가 업체 고객센터에 문의했더니, 돌아온 건 “특정 기간에 생산된 제품만 교체가 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이 씨는 “제가 사용한 제품은 교체가 안 되고,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구매된 제품만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며 “교체가 가능하다는 건 이미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환불보다 더 중요한 건 구체적인 사과인데 사과도 없었다. 1년 가까이 썼는데, 아이에게 무슨 악영향이 있을까봐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를 호소한 아이 아빠 임영우(가명) 씨도 제품에 “흰색 가루가 다수 나왔다”고 호소한다.
임 씨는 “올해 4월 아이를 낳고, 당근마켓에서 중고로 제품을 샀다. 제품을 두 달 썼더니, 실타래 같은 플라스틱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며 “환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 입으로 들어가는 제품을 잘못 만들면 어떡하냐. 진정성 있는 사과도 없고 너무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임 씨처럼 다수의 피해자들은 “수차례 각 제조사 고객센터에 문의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못 받았거나 연락을 받지 않는다”며 제조사의 무책임한 태도를 질타했다.
이에 피해 젖병 세척기 피해자 공동 모임(공동 대표 김수희·김현우·정지민·김지수·강현석·백지원)은 분말이 나왔다는 다수의 제보를 토대로 민사와 형사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들은 하자가 있는 제품을 리콜(회수)과 함께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는 제품을 판매하지 않기를 요청하고 있다.
피해자 법률 대리인 이교범 변호사는 본보와 통화에서 “일부 업체는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생산된 제품 하자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에 아이가 이물질을 섭취했을 개연성이 있다”며 “다만, 향후 아기에게 발생할 수 있는 질환과의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운 측면이 있어 법리를 검토한 후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어도, 인체에 얼마만큼 유해한지는 입증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한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본보와 통화에서 “육안으로 분말이 보일 정도면, 눈에 보이지 않은 5mm 미만의 미세 플라스틱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동물 실험상으로는 고농도 미세 플라스틱에 노출됐을 때 세포 손상이 일어난다는 보고가 됐지만, 현재까진 인체에 유해한 지 여부는 과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정부가 해당 제품에 실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는 지 면밀히 조사하는 것부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소비자원과 어린이용 생활제품 안정성을 평가하는 국가기술표준원은 다수 민원이 제기되자, 해당 제조사들을 대상으로 공동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국가기술표준원 제품안전정보과 관계자는 본보와 통화에서 “현재 국가기술표준원에는 젖병 세척기 관련해 KC 인증 기준이 없어 내부적으로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지 협의 중”이라며 “공신력 있는 기관 선정부터 평가 방식까지 내부 협의 중으로, 결과가 나오면 밝히겠다”고 말했다.
최문석 기자 mun@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