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PD의 비하인드캠] (29) “축구단도 기업이다” 구마모토식 재정 안정화
시민구단 적자 늪 탈출 생존 넘어 상생으로!
K리그 시민구단들이 재정난과 지역 소멸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며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언제까지 지자체의 지원에만 기대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운영을 이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새로운 활로 모색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이러한 엄중한 상황에서 일본 J리그의 한 시민구단이 제시하는 해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평균 관중 5000여 명, 연 예산 110억 원 규모의 J2리그 구마모토 구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공격적 지역 밀착 마케팅’
구마모토 구단이 제시하는 첫 번째 생존 전략은 ‘축구단도 하나의 기업’이라는 확고한 경영 철학에 기반한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 이후 본사를 고향으로 옮긴 기계 설비 회사 HIRATA가 메인 스폰서로 참여하는 가운데, HIRATA 전무 출신의 현 구마모토 구단 대표이사는 “축구단도 기업인데, 적자를 용납할 수 없다”는 취임 일성으로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그는 곧이어 강력한 긴축 재정과 함께 ‘공격적 지역 밀착 마케팅’이라는 투 트랙 전략으로 활로를 개척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취임 이후 약 500개의 지역 기업과 후원 계약을 맺으며 지난해 구단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이는 단순히 후원 기업을 늘리는 것을 넘어, 구단 사업 전반을 ‘수익성’ 중심으로 과감히 재편한 결과다. 영업사원을 충원하고, 홈 경기 날에 기업 관계자를 초청해 후원 방법과 홍보 효과를 상세히 설명하며 후원 규모별 리워드를 제시하는 등 체계적인 영업 전략을 펼쳤다.
특히, 지역 기업들의 인재 채용 난에 착안하여 각종 구단 이벤트에 스폰서를 노출시켜 기업 이미지 개선을 돕고, 구단 SNS 계정을 통해 후원 기업의 채용 정보를 제공하는 등 ‘상생’ 모델을 구축했다. 매 경기 피치보드를 팬들의 시선 닿는 모든 곳에 배치하고, 구단 후원 기업과 선수단이 함께하는 연례 이벤트를 개최하여 후원 ‘효능감’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이는 단순히 돈을 받는 것을 넘어, 후원사가 실질적인 이득을 얻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확고한 팀 철학” - 그라운드 안팎의 생존 공식
구마모토의 두 번째 생존 전략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통용되는 ‘확고한 팀 철학’의 정립이다. 6년 넘게 감독·대표이사와 긴밀한 인연을 이어온 구단의 전력강화부장은 저예산으로 선수단을 알차게 운용하는 비결로 ‘팀 철학’을 꼽았다. 시민구단일수록 전진성·주도성·속도성 등 일관된 팀 철학을 유스 팀부터 프로 팀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팀에 맞는 유망주를 육성하고, 팬들에게 패배하더라도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 좋은 재밌는 축구’를 제공하는 기반이 된다.
감독 선임 또한 철저히 팀 철학에 부합하는 인물을 찾아야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타 선수나 감독을 언제든 영입할 수 있는 기업 구단과 달리, 재정 여유가 없는 시민구단은 ‘돈에 사람을 맞추는’ 대신, 확고한 철학 위에 선수단을 구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안정적인 철학적 토대 위에서 구단 연 매출 규모에 맞게 선수단을 운영하면 팬들도 저예산 운영을 이해하고 지지해 줄 것이라는 조언은 K리그 시민구단에 큰 울림을 준다.
광주FC의 아픈 교훈, ‘지속가능성’의 중요성
최근 광주FC의 사례는 구마모토의 전략이 왜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정효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으로 우승권 성적을 내자, 이에 고무돼 과도한 단기 투자를 감행했고, 이는 결국 재정 건전성을 위반하는 심각한 적자 경영으로 이어졌다. ACLE 시즌, 대주주인 광주시의 한시적 특별 예산 편성의 아쉬움도 남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구단의 중장기 비전과 방향성 부재 속에서 과도한 우승 욕심을 낸 것이 원인이었다.
기업으로 존재하는 한, 철저하게 재정 안정성을 다지고 팀 철학 바탕 위에 성장과 투자의 속도를 조절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인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구마모토 구단 대표이사가 “구단 사무국 직원들에게 영업 마인드를 심어주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일침을 가했듯, 시민구단은 스포츠 팀을 넘어 하나의 재정적으로 건전한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역 소멸 시대, 지역과 함께 사는 법” - 상생의 가치
구마모토 구단은 지역 소멸의 위기 속에서도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평균 관중 수가 광주와 비슷한 5000여 명 수준이지만, 160만 구마모토현 주민들과 함께 응원하고 즐길 수 있는 프로 구단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확고하다. 메인 스폰서 HIRATA가 기업 이익과 관계없이 지역 공헌 차원에서라도 구단 후원을 지속하겠다고 밝힌 점은 지역사회와 구단의 끈끈한 유대 관계를 보여준다.
구마모토 구단은 향토 후원 기업과 구마모토현 내 각 소도시의 홍보 플랫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후원 규모를 계속 늘려갈 계획이다. 단순한 영리 추구에 그치지 않고 철저한 지역 밀착 상생 전략으로 단단히 지역에 뿌리내리겠다는 전략이다. 전력 강화팀 또한 정립된 팀 철학 안에서 공격적이고 주도적인 축구로 팬들에게 보답하겠다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단순히 축구 경기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지역의 활성화와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지역 기반 시민구단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K리그 시민구단,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때
구마모토의 사례는 K리그 시민구단에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더 이상 지자체의 일방적인 지원이나 단기적인 성과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구단을 하나의 독립된 기업으로 인식하고, 철저한 재정 관리와 공격적인 지역 밀착 마케팅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는 것이 모든 활동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영리만을 추구하는 얄팍한 상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구단의 활성화된 소셜 미디어(SNS)를 활용해 온라인 홍보에 어려움을 겪는 지역 소상공인을 후원사로 유치하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모델을 만들 수 있다. 경기장 트랙의 광고판(피치 보드)을 통해 소액으로도 후원에 참여할 길을 열어줄 수도 있다. 나아가 사회 공헌에 관심 있는 기업과 연계하여 유소년 프로그램을 비롯한 맞춤형 사회 공헌 활동을 설계하는 것 역시 일본 구단들이 이미 성공적으로 시행 중인 지역 밀착 전략이다. 동시에 확고한 팀 철학을 바탕으로 저예산 속에서도 팬들이 납득할 만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지역 소멸의 시대, 프로구단이 지역민의 삶에 스며들어 ‘스포츠를 통한 지역 활성화’의 구심점이 될 때, 시민구단은 ‘생존’을 넘어 ‘상생’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구마모토가 걷는 이 길은 K리그 시민구단이 나아가야 할 ‘한국형 시민구단’의 청사진을 보여준다. 이제 K리그 시민구단들도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하지만 이 모든 개혁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구단이 정치적 외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전문 경영인을 선임한 뒤 구단 역사상 최고 매출을 기록한 구마모토의 사례처럼, 먼저 구단의 확고한 철학과 방향성을 정립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철학을 실현할 경영 전문가를 선임하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혁신은 시작될 것이다.
김태관 호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