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주차 소동으로 엿본 이웃의 마음
[곰돌곰순의 귀촌일기] (114) 사람마다 모양과 색깔은 달라도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이른 아침 옥상에서 운동하고 있는데, 대문 앞에서 사람 소리가 들립니다. 앞집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출근하시나 봅니다. 대문 여는 소리, 차 문 여는 소리, 차 시동켜는 소리가 자연스레 이어지던 여느 날과는 다르게, 한참 동안 두런두런 소리가 들립니다. 아저씨가 먼저 출근하신 후, 한참 후 아주머니가 나가시던데, 오늘은 두 분이 같은 시간에 출근하시나. 그런데 이내 소리가 들려옵니다.
“차 좀 빼줘요~~.”
“….”
곰돌이보고 하는 소리인가. 옥상 지붕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봅니다.
“…. 예?”
“차 좀 빼주라고요!”
“…. 네~.”
옥상에서 내려가면서, 열쇠를 챙기면서, 대문까지 한걸음에 내달으니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곰돌이 엊저녁 늦게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는데, 모르는 차가 한 대 골목을 막고 있었습니다. 이런 적이 없어서, 아마 앞집 손님 차인가 보다 했었는데. 그 차가 앞집에 찾아온 가족이나 지인 차가 아니었던가.
그럼, 앞집에서는 그 차를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 차로 알고 있다는 거네. 그래서 이렇게 큰 소리로 우리보고 차 빼 달라고 하는 거구나.
대충, 상황이 정리됩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대문을 열고 나가면서 두 분께 인사를 합니다.
“그 집 차 아니었어요?”
“안녕하세요? 일찍 출근하시네요.”
“출근해야 하는데, 차가 막고 있으니 나갈 수가 없어요.”
약간 톤이 높은 아주머니 목소리.
“어, 그럼, 이 차가, (손바닥으로 두 분을 가리키며) 집에 찾아온 가족이나 손님 차 아니었어요?”
두 분이 놀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 차 아닌데.”, “그 집에 찾아온 손님 차 아니었어?”
서로 놀라면서도 쑥스러워 웃습니다. 곰돌이 생각에, 그 웃음에는 아마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했다는, 이상하다 그럴 사람들이 아닌데 하는, 역시 그럴 리가 없지~ 하는, 안도의 의미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곰돌이도 그러하니.
평소, 곰돌곰순이네는 대문 앞에 두 대를 주차하고, 앞집은 당신들 대문 쪽 담장을 따라, 그러니까 골목으로 들어가는 관점에서 보면, 골목 왼쪽으로 길게 두 대를 주차하고, 앞의 앞집은, 그 뒤를 이어 택시를 주차합니다(집 주인분이 올해 택시 운전을 그만두셔서 그 자리는 늘 비어 있음). 그러니 골목 오른쪽은 항상 비어 있습니다. 그래야 골목 안쪽 집인 곰돌곰순이네 차가 드나들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곰돌이 어제 늦은 시간 퇴근해 집에 도착하니, 모르는 차가 곰돌곰순이네 대문 앞으로 가는 길목 오른쪽을 떠억, 하니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앞집 차들은 평소처럼 왼쪽으로 주차되어 있고. 모르는 차 앞쪽에 곰순이 차가 있는 걸로 보아, 아마 앞집에 손님이 와서 그냥 곰순이 차 뒤로 세웠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녁 늦게 가시려고 잠깐 세워놓으셨나 보다, 싶어, 골목을 다시 나가 대로변에 세울까, 하다, 예전 택시 자리에 주차를 했습니다. 그러니 앞집에서 다음날 차를 뺄 때 문제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집에 들어와서 곰순이에게, 자기 차 뒤에 차 한 대가 있던데, 하고 슬쩍 말했더니, 곰순이도 놀라면서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점심 이후부터 거기 주차되어 있더라구요, 엥, 그럼 그 차가 이렇게나 오랫동안 있었다고요? 자기는 어떻게 들어왔어요? 밖에다 세울까 하다, 나중에 자기도 들어와야 하는데, 일단 한 대는 들어와야겠다 싶어, 왼쪽으로 해서, 오른쪽으로 돌리고, 다시 앞뒤로 왔다갔다 하면서 겨우 주차했어요.
그럼,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주차되어 있는 건데, 앞집에서 모를까? 그냥 놔둬요. 손님이 왔나 보니까. 나는 저녁에 잠깐 있다 갈 차라 생각해서 그냥 들어온 건데, 이건 좀 심한 거 아니에요? 아니, 늦은 시간이니까, 그냥 있게요.
도시에서 주택가나 아파트 단지에 살 때 주차 문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대문 앞에 세운 것도 아닌데 새벽 4시에 전화해 차를 빼라고 하고, 도색을 해야 할 정도로 차를 길게 긁기도 하고, 차가 나갈 수가 없게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워 놓거나 아예 전화를 받지 않기도 하고, 전화를 받았어도, 지금 자고 있으니 오후에 빼준다고 하고, 긁고 간 게 명확한데도 전화 한 통 없기도 하고.
곰돌곰순이는 CCTV로 확인하면 몇 호 차인지 알 수 있다는 아파트 관리소장님의 말씀에도, 상대가 잘못한 게 명백한 접촉사고에도 그냥 괜찮다고 넘어가곤 했지요. 오가며 만나는 이웃이라 생각해서.
하지만 귀촌해서 살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곰돌곰순이네 골목에는 네 집 사는데, 주차 문제로 시끄러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이주마을이라 처음 설계할 때부터 모든 골목을 차 두 대가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말을 당시 이장을 했던 마을 어르신께 들어 알고 있기도 했고.
그러니 차가 드나들 수 없도록 골목이 차 두 대로 막혀 있는 경우는 처음인데다, 좀 당황스럽기도 하지요. 보통 이런 경우는 감정적인 행위로밖에 볼 수 없을 텐데, 불편함을 각오하고 하는 행위이기도 하니까요.
몇 년이 지나도록 항상 사이좋은 이웃으로 지내왔는데, 혹시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걸까. 애로사항을 말씀하실 때마다 항상 받아들이고, 원하는 대로 해 드렸는데. 혹시 우리도 모르는 새 앞집에 불편을 주는 행위들이 있었나. 이런 생각들이 두 분을 만나기 전까지 이어졌으니.
“그럼, 이 차는 도대체 왜 여기다 이렇게 주차를 했데요?”
“그러니까.”
“혹시, 여기 번호로 전화해보셨어요?”
“안 했제. 그 집 차인 줄 알았다니까.”
“제가 해 볼게요.”
서로 이어지는 말 속에 긴장이 풀려 있는 게 느껴집니다. 앞집의 아저씨, 아주머니도 어제 저녁 이후 얼마나 곰돌곰순이네와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까요. 이심전심이라, 곰돌이 마음이 환해집니다.
“어제 차가 한 대도 없어서 세웠는데, 제가 왜 빼야 하나요?”
“여보세요?” 젊은 여성 목소리. “네~, 여기 차 좀 빼주셔야겠는데요.”
“아, 네, 음, 거기 뒤에 파란 거 보이시죠. 그쪽으로 전화해 보세요.”
엥, 이건 또 머~다냐. “에? 어디요? 아, 여기, 아니, 차 안에 번호가 두 개 있으면, 가족 아니세요?”
“그게, 그러니까, 그쪽으로 전화하시라니까요!”
“아니, 옆에 있으시면, 그냥 말씀해 주시면 되잖아요? 가족, 아니 남편분 아니세요?”
“아, 그냥, 거기에 전화하시라고요~!”
“…. 네.” 부부싸움을 했을까. 보통 같은 가족이나 부부가 차 안에 번호를 공유하지 않나. 전화를 받으면 알겠다고 자기들끼리 말하거나 전화해서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나. 참, 요즘 MZ 부부는 이런가?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앞집 아저씨가 한마디 하십니다.
“놔둬 버려. 그냥 우리가 빼게.”
아주머니 차가 빠지고, 곰돌이 차를 대문 앞으로 주차하고, 아저씨가 차를 다시 주차한 후, 곰돌이 뒤의 번호로 전화를 합니다. 20~30대의 젊은 남자 목소리.
“여보세요? 네, 차 좀 빼주셔야겠는데요.”
“에? 어제 거기 차가 한 대도 없어서 세운 건데, 거기 세우면 안 되는 건가요?”
“차가 없을 때는 괜찮은데요, 여기 골목이 세 집에서 저녁에 퇴근하면 각자 자기 집 앞에 차를 주차하거든요. 어제 늦게 들어온 차는 주차를 못하기도 했어요.”
“어제 낮에는 골목에 차가 한 대도 없었어요. 제가 먼저 세웠는데요. 제가 왜 빼야 하나요?”
어이구야, 이러기도 하는구나. 계속 통화를 하는데, 곰돌이 생각한 평범한 대화가 되지는 않네요. 어째, 좀 전에 통화한 여성(아내?)에게서 느껴지던 게 똑같이 느껴지는지. 어쩔 수 없기도 해서, 알았다고 그냥 끊을까 하다, 궁금해서 곰돌이 묻습니다.
“아니, 보통 자기 집 앞이나 근처에 차를 세우잖아요? 혹시 어디 사는 분이신데, 여기다 차를 세우셨을까요?” 갑자기 젊은 남성 목소리가 주저하면서 띄엄띄엄 들립니다.
“아니, 저, 거기 사는 게 아니고, 거기, 그, 앞집에 볼 일 보러 간 건데요.”
“앞집이요? 어디요? 앞집이면, 아~, 골목 입구에 ○○○씨 댁이요?”
“네, 거기 ○○○씨요.” 풀이 팍, 죽은 목소리.
“네네, 그렇구나. 알겠어요. 그럼, 바로 나오셔서 잠깐 빼주시고 다시 들어가셔도 되는데?”
“아니, 그, 지금, 제가 거기 없어서요.”
“아, 네네, 알겠습니다. 이제 차가 나갔으니까요, 괜찮습니다, 네네.”
통화를 끊고 나니, 앞집 아저씨가 묻습니다.
“어디라고? 저 집이라고? 그냥 놔둬 버려. 우리는 (곰돌이를 가리키며) 그 집 차인 줄 알았다니까.” 웃고 들어가는 아저씨의 뒤에 대고 곰돌이도 인사를 합니다. “네, 들어가세요.”
사는 모습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지만 서로 믿고 배려하려 노력하는 건 비슷하나 봅니다.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아마 MZ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도 그러지 않을까요. 그 사람 관점에서는 텅 빈 골목에 차들이 주차할 수 있게 오른쪽에 주차했는데, 나름 처음 온 곳이라 골목의 집들을 배려한 주차였을 테지요. 그가 골목 안의 문화를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모르면 알려주면 되고, 실수하면 넘어가면 되고, 사정을 알게 되면 이해하면 되고, 억지스러우면 그 또한 사람의 색깔이려니 하면 되고. 그렇게 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 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