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천은사와 원교 이광사
[역사 속 전라도] 전라도사찰 특집31
구례군(求禮郡)은 전남 북동단에 있는 군으로 북쪽으로 전북 남원, 동쪽으로 경남 하동과 도계를 이룬다. 백제 때 구차례현, 신라 때 구례현으로 불렸다. 고려시대에 남원부에 속했다가 1143년 감무가 파견되어 독립했다. 1896년 전북 구례군으로 개편됐고 1906년 전북에서 전남으로 이관됐다. 현재 전남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군으로 1개 읍과 7개 면에 2만 5000명이 거주한다.
구례군은 소백산맥의 한 줄기인 노고단, 만복대, 천마산, 도솔봉 등으로 둘러싸인 분지이며 섬진강이 구례 분지를 지나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지리산은 해발 1915m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공원이다. 예로부터 지리산은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으로 꼽혀왔다. 지리산에는 화엄사, 연곡사. 천은사 등 천년고찰이 즐비하다.
감로사에서 천은사로
천은사(泉隱寺)는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지리산 차일봉(遮日峰) 남쪽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의 말사이다. 천은사는 신라 흥덕왕 때 인도 승려 덕운선사(德雲禪師)가 창건하고 극락보전 앞뜰에 있던 이슬처럼 맑은 샘이 있어 감로사(甘露寺)라고 하였다. 고려 충렬왕 때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으로 지정됐고 조선 광해군 때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되자 혜정선사가 중창했다.
숙종 때 조유선사(祖裕禪師)가 감로사를 중수할 무렵 이무기가 나타나서 공사를 방해했다. 젊은 스님이 이무기를 잡아 죽이자 샘물이 끊기고 알 수 없는 화재가 자주 일어나자 ‘샘이 숨었다’라는 뜻으로 천은사(泉隱寺)로 개칭했다. 원교 이광사가 일주문에 마치 물이 흘러가는 수체(水體)로 ‘지리산 천은사(智異山 泉隱寺)’라는 편액을 붙이자 다시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한다.
천은사 극락보전(極樂寶殿)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하여 정면 3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의 건물로 국가 지정 문화재 보물로 지정됐다. 또한, 천은사의 아미타후불탱화, 괘불탱, 금동불감, 삼장보살도,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및 대세지보살좌상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수홍문(垂虹門)은 천은사 계곡에서 호수로 흐르는 감로천(甘露川)에 무지개가 드리워 내린 듯 아름답다.
원교 이광사의 편액 전해져
원교 이광사는 영조 때 노론이 소론을 탄압하는 경신처분으로 생부 이진검과 백부 이진유가 처형되자 연좌되어 23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였다. 유배 중에 우리나라 고유의 서체인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완성했다. 이광사는 해남 대흥사, 구례 천은사, 강진 백련사, 고창 선운사, 장성 백양사, 부안 내소사 등 전라도의 많은 사찰에는 편액을 남겼고, 아들 이긍익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을 남겼다.
구례는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석주관에서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왕득인, 이정익, 한호성 등 7인의 의사를 기리는 칠의단(七義壇)이 건립됐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일제와 싸우다가 연곡사에서 순국한 의병장 고광순을 기리는 순절비가 건립됐다. 경술국치로 주권이 박탈되자 절명시를 남기고 순절한 애국지사 황현을 기리는 매천사가 건립됐다. 한국전쟁 전후에 일어나 빨치산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서일환 언론학 박사, 행복한요양병원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