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얼과 품격 ‘존재’ 일깨워
[김영선 박사의 남도 풀꽃나무] (80) 광복 80주년 여름에 피다, 무궁화 ‘무궁(無窮)’, 끝이 없다는 뜻에서 유래
올해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매년 8월이 오면, 우리 국토 곳곳에 피어나는 무궁화를 보며 자연스레 광복절의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특히 광주시의회 건물 외벽에 그려진 무궁화 로고와 그 앞 광장에서 일렬로 피어난 무궁화 꽃은 누구의 시선도 쉽게 머물게 만든다. 지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시의회 로고에 무궁화가 담겼다는 사실은, 이 꽃이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얼과 품격을 지켜온 존재이자 오늘날에도 시민과 함께 숨 쉬는 상징이라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듯하다.
무궁화(無窮花)라는 이름은 한자어 ‘무궁(無窮)’, 즉 끝이 없다는 뜻에서 유래한다. ‘무궁화’는 ‘끝이 없는 꽃’, 곧 지지 않고 오래 피어나는 꽃을 의미한다. 실제로도 무궁화는 한여름부터 가을까지 매일 아침 새로이 꽃을 피워내며 끈기 있게 그 자리를 지켜낸다.
무궁화의 학명은 Hibiscus syriacus이다. ‘Hibiscus’는 부용속(芙蓉屬)에 속하는 식물들을 뜻하며, ‘syriacus’는 라틴어로 ‘시리아의’라는 뜻을 지닌다. 유럽에 이 꽃이 전파되던 시기, 시리아를 거쳐 들어왔다는 경로상의 오해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실제로 무궁화는 중국과 한반도에서 오랜 시간 재배되어 왔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정원, 담장, 서원 등 곳곳에 심어져 민가와 궁궐 모두에서 친숙한 존재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 상징종으로 보급 운동이 일어났고, 우리 민족의 정신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잡게 되었다.
무궁화의 생태적 특징은 아욱목 아욱과에 속하는 관속식물이다. 정원, 길가 등에 관상용으로 심어 기르는 낙엽 활엽 떨기나무이다. 줄기는 곧추서며, 가지가 갈라지고, 높이 2~3m다. 잎은 어긋나며, 난형, 넓은 난형, 3갈래로 얕게 갈라지고, 가장자리에 거친 톱니가 있다. 잎 양면에 털이 난다. 꽃은 8~10월에 가지 위쪽의 잎겨드랑이에서 한 개씩 피며, 붉은 보라색 또는 흰색이다. 꽃잎은 5장, 아래쪽이 서로 붙어 있다. 수술은 많고, 수술대가 붙어서 한 뭉치로 된다. 열매는 둥근 난형, 익으면 5갈래로 갈라진다. 조경용, 생울타리용, 분재용으로도 널리 이용되며, 병충해에 강한 품종 개발도 지속되고 있다. 중국과 인도 원산으로 전국에서 원예품종으로 심어 기른다. 동아시아, 유럽에서는 귀화하여 분포한다.
무궁화의 개화 방식은 조용하지만 강한 인내심을 상징한다. 하루에 한 송이씩 피고 지는 특성상 많은 꽃이 오래 피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끈질긴 생명력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꽃말 역시 ‘일편단심’, ‘인내’, ‘끈기’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상징성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도 깊이 닮아있다. 일제강점기, 무궁화는 독립운동가들에게 희망의 꽃이었다. 남궁억 선생과 같은 애국지사들이 전국 곳곳에 무궁화를 심으며 나라 사랑의 뜻을 퍼뜨렸고, 이를 억누르려던 일제는 무궁화를 ‘불온한 상징’으로 여기고 신문사 로고에서 삭제하거나 도안을 금지시키는 등 탄압을 일삼기도 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무궁화를 더욱 특별한 상징으로 만들었다.
광복 이후, 무궁화는 공식 법률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대한민국의 국화로 자리 잡았다.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이 등장하며 국민의 마음속에 나라꽃으로 각인되었고, 태극기 깃봉에도 무궁화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정부 기관, 군대, 경찰 등의 문장과 휘장에도 무궁화는 빠지지 않는 상징이다. 무궁화는 생물학적으로도 강인한 특성을 지녔다. 공해에 강하고 뙤약볕에도 끄떡없이 꽃을 피우는 그 모습은, 지구 온난화와 이상기후로 흔들리는 오늘날에도 꿋꿋이 살아가는 생명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무궁화는 스스로를 지키면서도 우리에게 위안과 희망을 건네는 조용한 교훈을 준다.
8.15 광복절에 활짝 핀 무궁화를 바라보면,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치열한 시간 끝에 얻어진 것인지 되새기게 된다. 특히 기후재난의 시대, 무궁화는 단지 나라꽃이 아니라 회복력 있는 생태와 공존의 가치를 일깨우는 생명의 상징이다. 꽃 한 송이, 그늘 하나가 만드는 생명의 연결망 속에서 우리는 자연과 함께하는 새로운 광복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https://species.nibr.go.kr/index.do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http://www.nature.go.kr/kpni/index.do/ 국가표준식물목록
김영선
환경생태학 박사
광주전남녹색연합 상임대표
코리아생태연구소 부소장
부산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