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갈 수 있을 때까지

[작은책방 우리책들] 7년 동안의 잠(2015, 작가정신)

2025-08-25     호수
7년 동안의 잠(2015, 작가정신).

 우리가 여름마다 듣게 되는 매미들의 합창은 장장 칠 년에 걸쳐서 완성된 노래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칠 년이라는 세월은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길어서 새삼스럽게 되새길 때마다 혀를 내두를 뿐이지 정말로 그것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자들은 손에 꼽을 것이다. 칠 년이라는 세월 동안 매미는 시간을 포기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오랜 기다림이다. 매 순간의 열렬한 기다림. 이 열렬함에 대해 알고 있는 생명은 그것을 존중하고 돕는다. 박완서 작가의 글에 김세현 작가가 그림을 그린 ‘7년 동안의 잠’(2015, 작가정신)은 개미 마을의 도움을 받아 인간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소개한다.

 어린 일개미가 크고 싱싱한 먹이를 찾아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개미 마을에는 흉년이 계속되고 있어서, “여태까지 보아 온 그 무엇과도 비길 수가 없을 만큼 엄청난 크기”의 먹이는 귀하디 귀하다. 부지런한 일개미들이 밤낮으로 일해도 광은 점점 비어갔다. 이대로 흉년이 계속되면 대대로 내려오던 마을을 버리고 더 기름진 땅으로 떠나야 할 상황에 처했으니, 자랑스럽고 기쁜 소식이 아닐 리 없다. 어린 일개미의 말을 듣고 늙은 개미와 다른 일개미들이 함께 길을 나섰다.

 먹이를 마주했을 때 일개미들은 신이 나 그 커다란 것을 단숨에 뒤덮어버린다. 늙은 개미가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먹이는 순식간에 조각이 나 개미 마을의 광을 채웠을 것이다. 의젓함과 지혜가 있는 늙은 개미는 한 번 이 먹이를 둘러보고서는 매미라는 것을 알린다. 젊은 일개미들에게 매미라는 점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땀 흘려 일할 때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노래나 부르는 ‘팔자 좋은 놈’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늙은 개미가 아는 것은 다르다. 늙은 개미가 보아하니 이 매미는 7년은 족히 참고 기다렸을 것이다. 한여름의 노래를 위해서. 하지만 젊은 개미들은 그 시간의 의미를 모른다. 여태껏 그들이 살아온 동안의 몇 곱절이나 되기 때문이다.

 늙은 개미는 젊은 개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 매미 고치 앞을 막아선다. 젊은 개미들은 ‘우리’처럼 먹이를 위해 노력한 적이 없어 보이는 매미를 향해 투덜거리다가 한여름 일할 때 매미 소리 덕분에 고달픔이 가셨던 것, 땅 위 여름의 아름다움을 알았던 것을 떠올린다. 늙은 개미는 그 때 다시 이 귀중한 목숨을 살려주자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머리 위의 땅을 보렴.

 예전의 부드러운 천장이 아니지 않니.

 콘크리트로 두꺼운 천장이 쳐져, 저 큰 몸집으로는

 도저히 비집고 나갈 틈이 없다.

 비집고 나가 봐야 땅 위는 이제 제 어미가 알을 낳던

 예전의 들판이 아니라, 여기저기 콘크리트로 덮인 도시인걸.

 우리 마을이 몇 해째 계속해서 흉년이 드는 것도

 아마 그 콘크리트 천장과 관계가 있을 거야.

 머지않아 우리 마을도 이사를 가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니 두고 보렴.”

 ‘7년 동안의 잠’ 중에서.

 늙은 개미의 말을 들은 젊은 일개미들은 생전 처음 개미 마을과는 반대 방향으로 먹이를 옮긴다. 매미는 그 새 움직이게 되어, 개미들은 어느새 매미에게 이끌려 땅 위로 향한다. 마침 나무 밑으로 나아가게 된 그들은 매미가 나뭇가지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그곳에 자리 잡는 모습을, 그리고 매미의 갑옷 등이 부서지면서 다 자란 매미 한 마리가 빛나는 날개를 펴고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걸 지켜보던 개미들은 기쁨에 차서 매미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천장이 막히고 도시가 생존을 위협하는 시대에 매미와 개미들은 각자의 살 길을 찾아 고군분투한다. 어떤 개미 마을은 커다란 매미를 발견하고서 광을 가득 채워 살 길을 모색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늙은 개미의 말마따나, 매미로 채워진 광은 앞으로도 계속 가득 차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콘크리트 천장이 이 흉년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늙은 개미는 매미의 아름다움만을 말하지 않는다. 젊은 개미들은 매미의 노랫소리를 듣고 일하는 데에 힘을 낼 수 있었던 순간을 말하지만 늙은 개미는 매미의 생명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에 대해 말한다. 어떤 먹이는 귀중하지 않고 어떤 먹이는 귀중하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7년이라는 가늠할 수도 없는 시간 앞에서 그들은 별 수 없이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는 매미의 모습을 새삼 경이롭게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먹고 먹히는 자연의 세상에서 아름다운 노래와 반짝이는 날개에는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약육강식이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인간들은 땅 밑의 오랜 세계를 알지 못한 채 몇 년 만에 콘크리트 도로를 마구 깔아버리는 반면, 개미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시간들을 되짚으며 평생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경험을 하기로 선택한다.

 개미 마을의 광은 어떻게 됐을까? 우리는 알 수 없다. 흉년이 계속되어 결국 마을을 버리고 떠났어야 할지도, 새로운 마을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 있다. 매미가 날아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본 어린 일개미들은, 그 반짝이던 순간의 기억을 확실히 안은 채 삶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문의 062-954-9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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